[권상집의 인사이트] 왜 세계 1위 K-콘텐츠는 넷플릭스에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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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왜 세계 1위 K-콘텐츠는 넷플릭스에서 나올까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2.02.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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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대한민국 콘텐츠의 자부심 '오징어게임'이 세계 1위를 찍고 정복한 영토가 징기스칸 또는 전성기 시절 대영제국의 영토보다 더 넓다는 우스개 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우리 고유의 콘텐츠가 전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학습한 PD 및 감독들은 그 이후부터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려 K-콘텐츠의 영역을 더 넓게 확장시키고 있다. 

'오징어게임'의 열기가 식기 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K-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 하루 만에 TV쇼 부문 1위를 차지한 후 현재까지 세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25개국에서 1위로 출발한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한 때 59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열풍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고 있다. 현재도 53개국에서 해당 콘텐츠는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드라마의 성과지표는 시청률이었고 영화의 성과지표는 관람객 숫자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는 국민 드라마로 불렸고 1000만 관객을 차지한 영화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업계에서 인정받았다. 지상파 3사에서 종편, 케이블, OTT까지 무수히 많은 플랫폼이 탄생하며 이제 성과지표는 글로벌 흥행지수로 전환되고 있다.

넷플릭스, K-콘텐츠의 핵심 플랫폼이 되다 

'오징어게임'에 이어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지옥' 그리고 이재규 감독이 연출한 '지금 우리 학교는'까지 연이어 세계 1위에 오르자 넷플릭스는 지난해보다 10편 더 많은 25편의 신규 콘텐츠를 올해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아시아 시장의 핵심 거점으로 선정한 넷플릭스는 지금도 전략적으로 다수의 국내 제작진, 배우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초 CJ, 롯데, 쇼박스, NEW 등 주요 콘텐츠 기업이 2022년 개봉할 영화 라인업을 공개했을 때 넷플릭스도 때 맞춰 국내 배우와 연출진이 만든 콘텐츠 라인업을 공개했다. 넷플릭스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공교롭게도 콘텐츠와 관련된 주요 커뮤니티에서 네티즌들이 관심을 가진 라인업은 국내 영화 배급사의 작품이 아닌 넷플릭스의 작품이었다.

국내 A급 PD 및 감독이 넷플릭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선계약 후공급’ 원칙 때문이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때 소요되는 제작비와 예상되는 일부 수익까지 먼저 지급하고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주력하기에 연출하는 입장에선 스토리와 무관한 PPL 삽입 없이 온전히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경쟁력은 스토리'라고 강조한다. 

국내 드라마의 핵심 역량은 그 동안 두 가지로 요약, 정리된다. 첫 번째는 PPL을 통한 제작비 절감 및 수익 확보, 두 번째는 시청자의 반응을 즉각 반영하는 밤샘촬영이었다. 방송된 초기부터 시청자의 반응을 신속하게 반영한다는 명분으로 드라마는 늘 사전제작이 아닌 초치기 밤샘촬영으로 진행되었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예산 초과는 PPL을 통해 만회했다. 

밤샘촬영과 PPL에 대한 불만은 현장에서도 꾸준히 이어졌으나 드라마 중 상당한 시청률을 거둔 흥행작 모두 그 두 가지를 통해 수익과 시청자 만족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기에 불만은 업계를 모르는 순진한 아마추어의 생각으로 그 동안 간주되었다. 콘텐츠의 경쟁력은 수익 창출에서 나온다고 강조한 국내 제작사는 그 결과 넷플릭스에 압도당했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콘텐츠를 위한 투자가 수익을 만든다

북저널리즘의 김현성 에디터는 국내 제작사는 콘텐츠를 광고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반면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몰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연출자에게 전권을 주고 스토리의 몰입을 극대화하여 소비자를 유인한다고 밝혔다. '오징어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 작품을 만든 감독 모두 넷플릭스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강조하는 건 바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다채널 시대에 소비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공을 들인 콘텐츠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정확히 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기업 이전에 자사를 빅데이터 기업이라고 규정한다. 빅데이터의 핵심은 시청자의 반응과 판단이다. 수익 창출을 위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콘텐츠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결국 수익과 경쟁력을 창출한다는 진리를 넷플릭스는 알고 있다. 

1990년대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고 2000년대 통신사들이 뒤이어 참여했지만 이들이 해당 사업에서 발을 뺀 이유는 콘텐츠를 수익 창출의 도구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각 기업의 임원회의에서 “왜 이 영화는 돈이 안되냐”는 얘기가 일상처럼 들렸다고 한다. 자동차, TV, 휴대폰과 콘텐츠는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다. 

문화사업은 고위험, 고수익이 본질이기에 인내심을 갖고 투자한 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CJ는 20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거두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콘텐츠에 투자하여 완성도 높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신화를 만들었다. 넷플릭스나 디즈니는 재미있는 스토리와 콘텐츠를 위해서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국내 제작사 및 방송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제작자 보상과 관련해서 넷플릭스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수익 창출을 전제로 선불금을 지급했기에 작품이 글로벌 흥행을 창출해도 추가 보상이 어렵다는 점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으로 1조원을 벌었지만 별도의 추가 보상을 내놓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고객인 시청자의 반응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또 다른 고객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반응과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다.

기본적으로 플랫폼 경쟁력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내놓는 작품에 있다. 넷플릭스는 이 중요한 교훈을 놓치고 있다. 국내 제작사 및 방송사에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동국대 재직 중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9월부터는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로 일하고 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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