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역사] ② '바뀌지 않는 사고원인'..27년전 삼풍백화점 붕괴원인도 '비용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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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역사] ② '바뀌지 않는 사고원인'..27년전 삼풍백화점 붕괴원인도 '비용절감'
  • 유태영 기자
  • 승인 2022.01.31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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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망 502명…최악의 붕괴사고 기록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 1129명 사망…무허가 건물, 무단증축
1995년 6월 29일 붕괴된 서울 삼풍백화점 모습. 사진=연합뉴스
1995년 6월 29일 붕괴된 서울 삼풍백화점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이 산업화하면서 건축 기술도 함께 발전했다. 고층 건물은 물론이고 수십킬로미터에 달하는 대교도 짓는다. 아파트는 필수재가 됐고, 백화점·마트에선 생필품을 구매한다. 마포대교·성수대교는 서울 강남북을 잇는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건축물이 붕괴돼 생사의 기로에 서게도 한다. 국내외 붕괴사고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오피니언뉴스=유태영 기자]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 서울 강남에 있는 고급 백화점 한 동이 폭삭 주저앉았다. 뉴욕타임스가 뽑은 20세기 이후 최악의 붕괴사고 중 하나로 꼽힌 세계 역사상 대형 사고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했고, 30명이 실종됐다. 40명이 구조됐으며, 937명이 부상한 것으로 기록됐다. 사상자수가 약 1500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악의 참사인 '삼품백화점 붕괴사고'다.

옛 삼풍백화점 자리엔 현재 서초 아크로비스타가 들어섰다. 건물 위치는 서울 중앙지방법원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서울 2호선 교대역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한 위치다.   

1987년 5월 착공한 삼풍백화점은 1989년 12월 1일 개장했다. 개장 후 각종 명품 브랜드들을 입점시키며 강남 3대 고급 백화점 중 하나로 입지를 굳혔다. 대한민국 고급 백화점이 세계 최악의 붕괴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기까진 6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불법 용도변경과 무단 증축

삼풍백화점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백화점이 들어선 부지는 원래 주거용 부지였으나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부지용도를 변경하여 백화점을 짓게 했다. 불법 부지용도 변경 다음 수순은 무리한 설계 변경이었다.

처음 설계 당시 삼풍백화점은 '삼풍랜드'란 이름으로 바로 옆 삼풍아파트 주민을 위한 대단지 종합상가였다. 당시 우성건설에서 시공을 맡아 공사가 진행됐는데 완공 직전 건축주인 이준 삼풍그룹 회장이 건물용도를 백화점으로 변경하고 시공사에 원래 설계된 4층보다 1층 더 높은 5층 건물 시공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성건설 측이 붕괴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로 증축을 거부했고 이에 이준 회장은 시공계약을 중도파기하고 삼풍건설산업이 시공하도록 바꿨다. 사고 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백화점과 같은 건물은 설계 변경시 구조 전문가의 검토가 필수이나 이준 회장은 건물 안전성은 고려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구조 설계를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삼풍백화점은 기존 설계상 기둥 지름을 깎거나 용도에 따라 없애기도 했다. 게다가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위해 기둥의 4분의 1을 자른 것으로 확인됐다.  

87톤 옥상 '에어컨 냉각탑' 하중 건물이 못견뎌 

삼풍백화점 붕괴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는 것은 '에어컨 냉각탑'이다. 백화점 옥상에 에어컨 냉각탑이 3대 있었는데 총 무게는 36톤이었다. 냉각수를 채우면 87톤까지 무게가 늘어났다. 옥상이 견딜수 있는 하중의 4배가 넘는 수치다. 백화점 건설 초기에 이 냉각탑은 옥상 동쪽에 설치했다.

그런데 인근 삼풍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소음 민원이 제기되자 반대편으로 옮겼다. 이때 냉각 탑을 크레인으로 들어 한번에 들었다 내려놔야 하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끌어서 옮겼다. 이과정에서 건물 전체에 거대한 압력을 줬고 이때부터 건물 전체 기둥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사고는 전조현상이 수차례 나타났지만 방관한 결과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본격적인 전조현상은 붕괴 2개월전인 1995년 4월 5층 식당가 천장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균열에서 미세한 콘크리트 알갱이와 골재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5층 바닥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다. 

사고 한달전인 5월부터 균열이 이전보다 크게 늘자 5층을 폐쇄하고 토목 전문가들을 불러 검사를 했다. 그결과 '건물붕괴 위험'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지만 백화점 측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사고 발생 당일까지도 백화점 측은 어떤 안전조치도 하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5층 식당가 바닥에 금이 가고 천장이 내려앉고 있었다. 5층 기둥에 20㎝가 넘는 균열이 발견됐고 4층에선 바닥이 내려앉는 모습이 관측됐다. 

1995년 6월 29일 붕괴 3시간전인 오후 3시경 긴급 안전진단을 실시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건물붕괴 위험이 있으니 영업을 중단하고 긴급보수가 필요하다는 쪽과 붕괴위험은 없으니 보강방법으로 기둥과 기둥사이를 받치자는 쪽으로 나뉘었다. 이준 회장은 보강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고, '골든타임'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갔다. 

사고당일인 1995년 6월 29일, 삼품백화점 5층 건물 중앙부분이 무너져 내려 앉아 양쪽 건물벽만 처참한 몰골로 우뚝서있다. 사진=연합뉴스
사고당일인 1995년 6월 29일, 삼품백화점 5층 건물 중앙부분이 무너져 내려 앉아 양쪽 건물벽만 처참한 몰골로 우뚝서있다. 사진=연합뉴스

5층부터 지하 3층까지 5분만에 붕괴

붕괴는 오후 5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4층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백화점 측은 4층을 통제했다. 오후 5시 51분경 옥상의 하중을 이기지 못한 5층 뒤틀림이 가속화하며 균열이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5층 슬래브가 4층 바닥으로 완전히 꺼지며 지하 3층까지 연쇄적으로 붕괴됐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 옥상 붕괴가 시작된지 5분만에 삼풍백화점 A동은 지하 3층까지 땅속으로 완전히 주저앉았다.

이 사고로 이준 삼풍그룹 회장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징역 7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뇌물을 받고 설계변경을 승인해준 이충우 전 서초구청장은 징역 10월에 추징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고 이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전국 모든 건물에 대한 안전평가를 실시했다. 진단결과 모든 건물 중 2%만이 안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풍백화점은 '무량판 구조'방식으로 지어졌다. 기둥과 바닥사이에 보가 없이 바닥이 기둥에 직접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실내에 있는 사람, 물건의 하중과 바닥 구조체의 무게가 기둥으로 직접 전달된다. 보를 생략했기 때문에 주실공사 등으로 기둥과 슬래브 사이 철근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층이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위험성이 내재돼있다.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 모습. 사진=연합뉴스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 모습. 사진=연합뉴스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1129명 사망

삼풍백화점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낳은 붕괴사고가 지난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했다. 이 사고는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이며, 1129명이 사망하고 2500명이상이 다쳤다. 이 사고로 18년간 건물 붕괴로 인한 사망자수 세계 1위라는 불명예가 '삼풍백화점'에서 '라나 플라자' 사고로 바뀌었다.

지난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사바르(Savar)에서 지상 9층 복합건물인 '라나 플라자(Rana Plaza)'가 붕괴됐다. 이 건물엔 세계 SPA 의류브랜드의 하청 공장이 가동중이었다. 

이 건물도 '불법 증축'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다.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기존 4층 건물을 8층 건물로 2배나 더 높게 증축했다. 게다가 무허가로 지은 건물이다보니 증축 당시 건축허가도 필요하지 않았다. 붕괴되기 직전엔 여기에 한 층을 더 증축하는 공사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붕괴원인 중 하나는 건물을 지탱해줄 지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건물 옆면의 벽에 금이 가고 기둥 콘크리트는 떨어져 나갔다. 붕괴 전날인 2013년 4월 23일 건축 엔지니어인 압둘라 라자크 칸이 건물주인 소헬 라나에게 건물붕괴 위험이 높다고 전했으나 건물주는 무시했다. 결국 다음날인 24일 오전 8시 45분에 붕괴가 시작돼 건물안에서 조업하던 약 3000여명 중 3분의 1이 사망했다.

이 사고와 관련해 건물주와 공장업자, 안전감독 담당 공무원 등 총 41명이 살인 및 범죄은닉 혐의로 기소됐다. 방글라데시 법원은 건물주인 소헬 라나에게 지난 2017년에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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