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⑧…주식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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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⑧…주식 민주주의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5.15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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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금융에 의한 거대한 산업자금을 제공한다

 

뉴욕증시에 몰려든 자금은 산업자금이 되어 미국 기업에게 돌아간다. 뉴욕 증시의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1999년말 현재 15조 달러에 이르고, 전세계 주식 총액의 절반을 차지한다. 하루평균 거래금액만도 300억 달러에 이르고,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주가총액만 해도 각각 수천억 달러에 이르며, 이들 한 회사의 시가총액이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훨씬 넘는다.

미국 기업들은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보다 주식 및 채권을 통한 직접 금융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비율이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높다. 간접금융 비율이 높은 일본 경제와 이를 모방한 아시아 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월가를 통한 금융시스템의 우위 때문이다.

미국 기업에선 은행 차입금에 의한 자금 조달 비율이 20%에 불과하고, 직접금융 비율은 80%에 이른다. 그만큼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식시장의 투기성 자본을 산업자본화하는 기술을 미국은 익히고 있다.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사의 조사에 따르면 1997년 7월 현재 뉴욕 증시 시가총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89.9%로 일본 60.2%, 캐나다 58.1%, 캐나다 58.1%, 프랑스 34.9%, 독일 27.3%보다 높다. 모건 스탠리 증권의 분석을 보면 97년말 기준으로 세계 총 주가총액에서 미국 주가 총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49.1%이고, 일본 12.8%, 영국 10.5%, 독일 4.7%순이다. 월가에 돌고 있는 주식이 금액 기준으로 세계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고 있는 셈이다. 즉 월가 그 자체가 국제금융시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 미국 투자회사의 트레이딩룸 /NYSE 자료사진

 

월가는 벤처 자금을 제공한다.

 

월가는 기업의 유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직접 금융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이제 막 태어난 유아기의 벤처 사업가들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벤처 캐피털을 이용,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월가의 자금시장은 유망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자금줄이다. 하버드 대를 중퇴한 건달(빌 게이츠)이 무일푼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월가의 풍부한 자금 덕분이었다.

소년기로 성장하면 장외시장인 나스닥에 등록하고 장년에 이르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함으로써 더 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다가 성숙단계에 이르면 월가의 투자은행의 지도를 받아 인수 합병(M&A) 과정을 거쳐 새로운 기업으로 태어난다.

뉴욕 증시의 가격 메커니즘은 성장성 있는 사업 부문에는 쉽게 필요한 자금이 유입되고, 사양 산업에는 자동적으로 자금이 빠져 나오는 금융구조를 형성한다.

 

월가는 기업 민주주의를 창출한다.

 

일본을 비롯, 아시아 국가에서 소액주주들이 기업총수를 쫓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단 한 주를 가지고 있는 주주라도 활발히 권한을 행사한다. 대주주 경영인이라도 기업 경영을 잘못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액주주 군단에게 배당 또는 주가 차익을 돌려주지 못하면 물러나야 한다. 따라서 3개월마다 돌아오는 분기별 경영실적 평가 때는 유능한 경영자라도 월가의 눈치를 보느라 진땀을 빼야 한다. 월가는 자본가에 의한 기업 경영의 독재를 제거하고, ‘주주에 의한, 주주를 위한, 주주의’ 기업 민주화를 달성하고 있다.

 

월가는 개미군단에 의해 움직인다.

 

뉴욕 증시의 거대한 자금원은 샐러리맨, 자영업자 또는 농부 등 평범한 미국인들이 은퇴에 대비해 적립하는 연금 기금이다.

32세의 직장인 돈 프로델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봉급의 6%를 떼어 퇴직 연금 프로그램인 ‘401(k)’에 부어 7만1,200억 달러를 적립해놓고 있다. 그는 정년인 65세를 굳이 채우지 않고, 60세에 은퇴해서 남은 인생을 즐기기로 작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전보다 많은 돈을 붓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60세가 되는 해에 170만 달러의 연금을 타 백만장자로서의 여유있는 삶을 살수 있게 된다. 그가 적립한 돈이 뮤추얼 펀드를 통해 증시에 투자돼 고수익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 월가에 활력을 주는 자금은 바로 이 연금 기금에 있다. 미국의 샐러리맨들은 한국처럼 퇴직금 제도가 없고, 자식에 기대어 사는 풍습도 없기 때문에 은퇴 연금을 적립하고 있다. 적립금을 가장 크게 불릴 수 있는 상품이 주식시장이다. 은행계좌에 저축을 하거나 채권을 사두면 연간 6% 내외의 안정적 이자를 얻지만, 주식시장은 1990년대 후반기에 연평균 20%의 수익을 보장해주었다.

봉급쟁이가 복잡한 원가 동향에 전문적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이 증권 브로커나 뮤추얼 펀드등 전문 기관에 의뢰한다. 이들은 직장인의 은퇴 적립금을 굴려 목돈을 만들어 주고 있다. 연봉 3만 달러의 직장인이 25세부터 봉급의 6%를 부으면 연간 5%의 급여 상승과 10%의 수익성을 전제로 65세엔 130만 달러의 목돈을 건질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을 증시 활황이 만들어 주고 있다.

미국의 직장에서는 401(k)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금융상품으로 확산되고 있다. 401(k)은 미 국세청(IRS)의 징세 코드 번호를 지칭하는 것으로, 미국 내국세법에 따른 정년 자금 마련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면 봉급의 일정 비율이 정년 때까지 적립된다.

미국 전역에서 401(k) 프로그램을 통해 축적된 자금은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18% 증가했고, 1997년 상반기엔 그 적립금이 8,000억 달러를 넘었고, 2000년엔 1조5,00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뉴욕 증시에 투자된 자금 가운데 81.3%가 개인투자자들의 돈이다. 워렌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등 유명한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을 합쳐도 12.2%밖에 안되고, 외국인 투자자금도 6.5%에 불과하다. 소액투자자들은 큰손들의 작전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퇴각에 의해 주가가 흔들리는 것을 막는 든든한 방패막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개미군단으로 일컬어지는 소액투자자들은 안정희구 심리를 갖고 있다. 그들은 증시 폭락을 원치 않는다. 1997년 10월 아시아 경제위기가 불어닥쳤을 때 기관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가 뉴욕 주가가 폭락했지만, 주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개미군단이었다.

  

월가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승리를 가져왔다.

 

미국 상무부 차관을 지냈던 제프리 가튼 예일대 경영대학장은 아시아 금융위기에도 불구, 미국 경제가 건겅한데 대해 ‘월가의 승리’라고 말했다. 국가 자본주의 형태를 취했던 아시아식 경제는 더 이상 장점이 될 수 없고, 방대한 투자그룹, 즉 주주가 움직이는 월가의 활발한 시스템이 미국의 장기호황을 지켜주고 있다는 뜻이다.

월가는 미국 전체를 하나의 주식회사로 만들어, 미국의 장기호황을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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