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CJ, 임원 직급의 장벽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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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CJ, 임원 직급의 장벽을 허물다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2.01.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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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연말 제3의 도약을 선언했을 때 중대한 변화는 이미 감지됐다. 그룹의 회장이 성장 정체에 머물렀다는 점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인사제도와 문화 혁신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면 그룹 내부에서는 치열하게 이를 위한 제도적 준비가 병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첫 신호탄은 바로 임원 직급의 완전 폐지다. 

수평적 조직의 필요성은 1990년대부터 거론돼 왔다. 그러나 기업 현장에서 이를 정착시키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다. 전 직원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기업의 CEO가 권위적인 자세를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2000년대 초반 ‘님’ 호칭을 CJ가 재계에 처음 도입했을 때 내부 임원 및 간부급 직원들의 불만이 많을 정도로 제도 혁신은 늘 어려운 일로 꼽힌다. 

CJ는 왜 임원 직급을 모두 폐지했을까 

CJ의 임원 직급은 ‘상무대우-상무-부사장대우-부사장-총괄부사장-사장’ 등 6단계에 달한다. 부사장만 해도 3단계로 구성되다 보니 호칭이 애매해 사내에서는 모두 부사장으로 통일해서 부른다. 상무대우와 상무 역시 상무라고 총칭해서 부르고 있다. 직급은 길고 많은데 직책은 팀장-본부장 등으로 축소되다 보니 직급과 직책이 불일치하는 문제가 존재했다.

이런 문제를 감안,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전무 직급을 폐지했고 보수적인 기업이라고 인식된 롯데 역시 상무보A와 B를 모두 상무보로 통합하고 승진연한을 줄이는 등 임원 직급 축소를 실행하고 있다. 국내 IT기업의 임원들도 직급보다 직책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수직적인 직급보다 수평 지향의 간소한 직책을 선호하는 우수인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CJ는 한 발 더 나아가 임원을 모두 ‘경영리더’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기존의 임원 직급을 폐지했다. 완벽한 직책 중심의 인사제도 전환을 알린 것이다. 이미 대다수 기업에서 팀장-본부(실)장 등을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되기에 불필요한 서열 문화의 종결을 알린 것이다. 성과를 창출한 경영리더에게 중요 업무를 더 우선적으로 맡기겠다는 것이 그룹의 생각이다.

MZ세대가 아니더라도 위계서열을 강조하는 수직적 구조에 대한 거부감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제 아무리 수평적 토론과 자유로운 논의의 필요성을 주장해도 직급이 무기인 국내 대기업에선 아무 소용 없다. 국내 IT기업이 대학생, 취준생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적어도 이들 기업은 수직적 직급체계, 권위적 문화를 내세우진 않기 때문이다.

CJ의 임원 직급 혁명, 성공할 수 있을까 

CJ는 2000년대 중반~2010년까지 유연문화와 ‘님’ 호칭을 통해 국내에서 삼성전자와 함께 젊은 인재들이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를 다투었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CJ의 포지션을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 판교의 IT기업들이 뺏어가면서 CJ도 국내 대기업과 유사한 기업으로 각인되었다. 기업의 성장 정체는 문화적 침체에서 늘 비롯된다. 

자체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CJ는 결국 국내 최초로 임원의 전 직급을 폐지하며 자율성과 유연성을 겸비한 빠른 조직으로의 재탄생을 알렸다. 그러나 이번 직급 혁명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평적 조직으로의 전환은 필요하지만 내부에서 제기되는 불만 그리고 외부 인재를 영입할 때의 어려운 점 등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직급은 연봉 인상과 직결되는 요소다. 실제로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임원 및 간부급 직급 축소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직급 체계가 여전히 연봉 인상을 결정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이었는데 해당 기준을 축소 또는 폐지한다면 앞으로는 연봉 인상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사라져 연봉이 제자리 걸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우려다. 

임원 직급을 폐지하면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할 때 어려움이 더 많이 따르는 것도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예컨대, A기업에서 전무나 부사장 등의 고위 임원을 영입한다고 할 때 이들을 ‘경영리더’로 영입 제의하면 직책이 중요해도 쉽게 스카우트하기 어려운 것이 국내 현실이다. 직책에 의미를 부여해도 자신이 가진 고위직급 호칭을 내려놓는 인재는 드물다. 

실제로 CJ는 16년 전, 임원 직급을 ‘상무-부사장-사장’ 3단계로 국내 재계에서 제일 먼저 축소, 유지해왔다. 그러나 3단계 임원 직급으로는 외부의 우수인재 영입이 쉽지 않았고 특정 직급에 대한 임원 적체 현상 등의 어려움이 생겼다. CJ는 결국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임원 직급을 6단계로 대폭 늘렸다. 과거 겪었던 문제를 이번엔 해결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무한경쟁이 아닌 무한도전의 문을 열어줘야 

CJ의 임원 직급 폐지는 언론에서도 혁명이라고 할 만큼 파격적인 도입임엔 분명하다. 과거 수평적 인사 제도를 도입한 한화, KT, 포스코 등은 현실적 어려움과 내부 혼선 등으로 인해 직급 제도 및 직급 호칭을 다시 부활시킨 바 있다. 직급 폐지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불만이 많은 만큼 이를 슬기롭게 성과로 입증하는 것이 CJ의 향후 과제가 될 것이다. 

다만 직급 폐지를 통해 제도의 유연화 추구 이외 문화적 유연함까지 완벽히 조직에 내재화된다면 CJ는 국내외 기업들에게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직급 폐지를 통해 무한경쟁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닌 수평적인 기회의 문을 연다고 구성원들이 인식한다면 이번 직급 혁명은 분명 또 다른 도약을 CJ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구성원들은 변화의 진정성을 원한다. 

수평적 조직은 제도와 문화가 완벽히 일치되어야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재현 회장이 강조한 수많은 ‘하고잡이’들은 무한경쟁이 아닌 무한도전을 원한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동국대 재직 중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9월부터는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로 일하고 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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