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수원 화성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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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수원 화성 나들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5.0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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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임금이 아버지를 모셔놓고 지은 신도시…당시 첨단 과학 동원

 

따듯한 봄날을 맞아 수원 화성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다. 두어시간 남짓 성을 둘러보면서 역사의 향취에 젖어보고, 성루 하나하나의 의미와 사연을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꽃들이 만발한 봄에 탐방하는 게 제격이다..

수원 화성은 수원 시내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곽문화의 백미로, 국내는 물론 외국 성곽의 장점만을 흡수해 완벽하게 건설된 도시 성곽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신도시라는 점도 특이하다. 정조 18년(1794) 2월에 시작해 2년 6개월 만에 완공을 이룬 수원화성은 당대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기술을 집약시켰다.

정조 임금은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이장하면서 팔달산 아래 지역을 화성(華城)이라 했다. 정조는 곧 화성 축성에 들어갔다. 성안에 행궁을 설치하고, 실학자 정약용의 설계를 지침으로 삼는다. 실학사상이 영향을 미친 대역사였다.

번암 채제공이 성역의 총 지휘를 맡고, 다산 정약용이 축성의 모든 과정을 계획·감독했다. 특히 정약용의 발명품인 활차와 거중기가 사용됐다. 거중기는 40여 근의 힘으로 2만5천 근의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공사기간이 이전에 비해 5분의 1이 단축되었다.

 

▲ /수원시청

 

우리는 우선 행궁을 찾았다. 마침 정조임금이 행차한 모습을 재연하고 있었다. 행궁 앞들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공연을 관람했다.

팔달산 동쪽에 위치한 행궁은 정조 20년(1796)에 지어졌다. 행궁의 기능은 1) 전란을 피하기 위해 머무는 곳 2) 지방의 능에 참배하러 갈 때 3) 잠시 휴양삼아 지방으로 나들이할 경우 왕이 머무는 곳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에 거동하는 일이 잦았고, 마침내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행궁을 지었다.

완성된 행궁은 약 570칸 정도의 대규모 건물이었다. 수원행궁은 사도세자의 능참길에 들르는 행궁이기도 하거니와 정조와 수원유수 등이 정무를 보는 건물이었다.

현재 행궁터에 남아 있는 건물은 낙남헌뿐이다. 신풍동 신풍초등학교 운동장 끝에 있는 낙남헌은 당시 봉수당 북쪽에 있던 정면 5칸 측면 4칸 집인데, 초익공양식의 팔작지붕집이다. 그나마 일부가 소실되었고, 벽체와 내부는 개조했다. 신풍동에 있고, 경기도 기념물 제65호이다.

화령전은 신풍초등학교 후문 앞에 있다. 순조가 부왕인 정조의 어진(御眞)을 모시고 부왕의 지극한 효성을 본받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조선 말까지 수원유수와 판관들이 관리했고, 해마다 제향을 드렸다. 정조의 어진은 일제시대를 겪으며 창덕궁으로 옮겨 보관했는데, 그 무렵에 그만 분실되고 말았다. 1992년 수원시에서 새로이 복원하여 봉헌하고 있다. 사적 제115호.

 

▲ /사진=김인영

 

▲ /사진=김인영

 

행궁에서 팔달산으로 올라갔다. 팔달산 중턱에 화성과 행궁을 건설한 정조 임금 동상이 우뚝 서 있다.

 

▲ /사진=김인영

 

화성은 네 곳의 성문을 두었다. 성문 밖에는 반원형 옹성을 쌓았다. 옹성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모습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향해 다가오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장소다.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 장안문과 팔달문이다.

 

① 팔달문

남쪽에 위치한 성문. 해마다 10월이면 화홍문화제가 열리는데 이때 특히 팔달문은 불야성을 이룬다. 장안동에 있고, 보물 제402호이다. 2층 누각에는 육중한 동종이 있다. 조선 숙종 13년(1687) 화성 만의사(萬義寺)에서 조성해 봉안했던 종이다.

 

▲ /사진=김인영

 

② 화서문

수원화성의 서문이 장안동에 있고, 보물 제403호이다. 바깥으론 벽돌로 쌓은 반원형의 옹성이 있다.

 

③ 장안문

수원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에 해당한다.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해 수원시의 상징이다.

 

▲ /사진=김인영

 

④ 창룡문

수원화성의 동문이다. 장안동에 있다. 사적 제3호.

한국전쟁 때 문루와 홍예가 크게 손상을 입었는데 1975년 옛모습대로 복원했다. 창룡문 건너편에는 연무대와 탁 트인 푸른 잔디밭의 활터가 보인다.

 

▲ /사진=김인영

 

 

수원 화성에는 볼 것들이 많다.

 

① 화홍문

수원의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개천 북쪽에 설치된 일곱 개의 수문 위에 세운 누각이다.

광교산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이곳 북수문의 7개 홍예를 지나는 것을 칠간수(七澗水)라 부른다. 물줄기는 7개 홍예 사이를 폭포수처럼 빠져나가 수원화성 한복판을 가로질러 남수문으로 빠진다. 정조는 수원팔경의 하나로 화홍관창(華虹觀漲)을 꼽으면서 이곳의 맑은 폭포수가 옥같이 부서지는 장관을 즐겼다고 한다.

옛날엔 개천에 큼직한 바위들이 깔려 있어 아낙들의 빨래터로 이용되었다. 사적 제3호.

 

▲ /사진=김인영

 

② 방화 수류정

정조 18년(1794년)에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 /사진=김인영

 

③ 효원의 종

수원시가 모든 이에게 효성심을 심어줌으로써 가족의 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종이다. 타종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다. 제1타종은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효도를 다짐하며 치는 종이고, 제2타종은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바라는 종이며, 제3타종은 자신의 발전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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