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연대기] ㊻ 총천연색 혁명의 시작...120년전 등장한 '컬러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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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연대기] ㊻ 총천연색 혁명의 시작...120년전 등장한 '컬러 필름'
  •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 승인 2021.12.25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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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컬러필름, 1902년에 등장한 에드워드 터너의 촬영 시퀀스
시장에 정착되기까지 50년의 시간 소요돼
기술만으론 시장을 만들지 못해...성공한 콘텐츠가 시장 구축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영상(Video)의 타임 라인을 볼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분기점이 있다.

바로 흑백 필름이 컬러 필름으로 바뀌는 때다. 사운드 시스템의 등장이나 디지털 전환처럼 영상의 역사를 크게 가르는 사건들이 여럿 있어왔지만, 흑백의 영상에 ‘색‘이 들어가는 것만큼 분명하고 가르기 좋은 분기점은 없다.

색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그 분명한 차이로 인해 흔히 색이 있는 컬러 필름은 흑백 필름보다 더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컬러 필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이 컬러 필름 (Color Film)의 역사가 1950년대에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오해다. 현재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컬러 영화들이 대부분 1940년대 중반 이후에 제작됐기 때문이다.

컬러 TV의 시작이 1970년대 인 것을 감안하면 사람들이 컬러 필름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최초의 컬러 필름 시퀀스의 한 장면. 사진=영국 국립미디어 박물관
최초의 컬러 필름 시퀀스의 한 장면. 사진=영국 국립미디어 박물관

실제로 컬러 필름은 거의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다. 물론 현재와 같은 컬러 영상 시스템은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흑백 시대와 컬러 시대가 분기를 통해 나눠진 것이 아닌 영상의 역사만큼의 꽤 오랜 시간을 공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1940년대에 제대로 된 컬러 영화들이 공개되고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는 했지만, ‘영상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사운드 필름만큼의 놀라움을 주지는 못했다.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희귀하거나 처음 보는 것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영상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컬러 필름

컬러 영화의 시작은 거의 영화의 시작과 같이 한다. 상업적인 영화에 컬러를 넣은 최초의 사람 중 하나는 초기 영화 제작자의 한 명이었던 조르주 멜리아스였다. 그는 ‘달 세계 여행(A trip to the moon)’이라는 작품에 일부 프린트에 컬러가 삽입하는 시도를 했다.

멜리아스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21명의 여성을 고용하여 ‘달 세계 여행’의 일부 프린트의 중요 장면 프레임 하나 하나를 손으로 채색하는 형태로 컬러 필름을 만들었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흑백 사진을 채색하여 인위적인 컬러 사진을 만드는 기법에서 차용한 것이다. 멜리아스는 영화 제작에 있어 진심이었던 사람이었다. 마술사였던 그는 다양한 트릭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일가견이 있었고, 몇몇 특수효과나 합성장면들을 고안하기도 했다.

인건비가 비싼 현대의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그 때 관점에도 프레임 하나 하나를 한 땀 한 땀 채색하여 컬러 필름을 만드는 것은 사실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1초당 24프레임만 잡는다고 해도 9분 정도의 짧은 영화지만 채색해야 하는 프레임의 숫자가 거의 만 장을 넘나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컬러에 진심이었던 몇몇 제작자들의 힘에 의해 완성된 채색 컬러 영화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누가 봐도 흑백 필름보다는 컬러 필름이 보기가 더 좋았다.

조르주 멜리아스의 달세계 여행 중 컬러 시퀀스 컷. 사진=유튜브 캡처
조르주 멜리아스의 달세계 여행 중 컬러 시퀀스 컷. 사진=유튜브 캡처

컬러 필름 영화는 일종의 고급화 마케팅 기법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컬러 필름이 상용화 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우선 사람이 일일이 채색을 하는 공정 탓에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몰랐으면 모를까 한번 맛본 이상 컬러 필름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흑백 필름을 채색하는 형태의 컬러 필름은 몇 년 뒤 1905년 즈음하여 필름을 스텐실 기술(안료를 필요한 부분에만 발라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미술 기법)을 사용하여 복제하는 기술이 만들어지고 이 기술을 활용해 채색 필름을 만들게 되면서 비용이 내려갔고 컬러 필름의 보급의 속도는 조금 빨라졌다.

채색이나 스텐실 형태의 컬러 필름은 당시 영화 산업에 있어서는 약간 현대 영상의 CG작업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일부 진취적인 제작자들도 굳이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몇몇 중요한 시퀀스에는 채색 컬러를 쓰는 방식으로 컬러를 사용하면서 컬러 필름이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상업용 컬러 필름 시스템인 키네마 컬러. 사진=영국 과학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최초의 상업용 컬러 필름 시스템인 키네마 컬러. 사진=영국 과학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콘텐츠 산업의 기술은 콘텐츠를 통해 정착된다

현대 이미징 기술에서 색을 만들어 내는 방식에는 크게 감산혼합과 가산 혼합이 있다. 말 그대로 기본색을 빼거나 넣어가면서 원하는 색을 만드는 방식인데 포토샵같은 이미지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CMYK (감산혼합), RGB (가산혼합)가 바로 이러한 방식을 의미한다.

컬러 필름도 이미징 기술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 두가지 방식을 기본으로 기술이 발전했는데,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가산 혼합방식의 기술이었다. 1906년 영국의 스미스는 키네마컬러라는 컬러 필름의 영사시스템을 만들었다. 1910년대 중반까지 사용된 키네마컬러는 여러 의미에서 채색 필름보다는 진보한 형태였다.

 

                                                                                          -세계 최초의 컬러 필름, 에드워드 터너가 촬영한 시퀀스를 다룬 영상. 출처=영국 국립미디어 박물관

카메라 렌즈 앞에 빨간 색과 녹색 필터를 덧대 촬영하는 방식으로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컬러 영상 시스템이다. 

최근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키네마컬러가 나오기 전인 1902년에 같은 영국의 사진작가였던 에드워드 터너가 키메나컬러의 방식을 사용해 채색 방식이 아닌 명실상부한 세계 첫 컬러필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비록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그는 자신이 개발한 키네마컬러 형식의 장비를 가지고 런던 거리와 앵무새, 자신의 자녀의 모습을 컬러 영상 시퀀스로 촬영했다.

촬영은 했지만 기술이 미비해 영상이 흐릿했고, 제대로 된 컬러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비난만 받고 기술은 사장되었다. 이 때 터너가 찍은 필름을 발굴한 영국 국립미디어 박물관이 디지털 방식을 통해 복원해 그 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세계 최초 컬러 필름이라는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터너와 키네마컬러의 컬러 필름은 분명 기술적으로 엄청난 진보를 보였지만, 시장은 그들을 그렇게 반기지 않았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너무 비용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콘텐츠 산업의 역사를 볼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기술은 시장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기술을 통한 콘텐츠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파급력이 시장을 흔들어야만 기술은 비로소 시장에 받아들여지고 정착된다. 그런 의미에서 키네마컬러의 후속으로 나온 ‘테크니컬러’ 역시 콘텐츠 산업의 원칙을 벗어나지는 못하며 제대로 된 컬러 영화 등장은 1940년대로 미뤄진다. 얼마전까지 '오즈의 마법사'가 최초의 컬러 필름으로 알려져 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문동열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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