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연대기] ㊺ 독점시대를 끝낸 파라마운트 판결-1930년대 할리우드의 황금시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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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연대기] ㊺ 독점시대를 끝낸 파라마운트 판결-1930년대 할리우드의 황금시대 (하)
  •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 승인 2021.12.11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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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독점으로 규정한 1948년의 미 대법원 판결
지금의 OTT를 포스트 모던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부르는 움직임도 나타나
OTT 독점을 견제하는 새로운 파라마운트 판결의 제정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겸임교수

[문동열 우송대 테크노미디어융합학부 겸임교수] 자본주의를 종교로 신봉한다고 하는 미국은 1900년대 초반부터 독점을 시장 경제를 좀먹는 암으로 규정했다.

시장 경제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는 이유다. 실제로 최초의 카르텔 중 하나였던 스탠더드 오일은 1911년 법을 제안한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셔먼법에 의해 30여개가 넘는 회사로 쪼개졌다.

이렇게 법으로 제한할 정도로 독점은 나쁜 일이다, 독점은 시장을 병들게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과연 독점이 나쁘다면 왜 할리우드 최악의 독점의 시대가 할리우드 최고의 황금기였는지를 설명하는 데 조금은 말문이 막힐지도 모른다

최악의 독점시대에 꽃 핀 영화의 황금기

영화사(史)에서는 BIG5가 주도했던 1930년대 할리우드 호황을 ‘골든 에이지’ 즉 황금기라 부른다. 독점 시장 형태로 많은 중소 제작사나 극장들이 도태되어 가던 시기에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우리가 흔히 할리우드 최고의 고전 걸작들은 다 이시기에 나왔다.

사실 상 이 시기에 고전 걸작들이 많이 탄생했던 것은 그 시기 영화 생산량의 95%를 독점하던 BIG5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보려면 당시의 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전경. 파라마운트 판결은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주 피고인이었지만, 나머지 BIG 5도 피고인으로 참석하였으며,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관련자 거의 모두가 피고로 법정에 섰던 큰 사건이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당시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전경. 파라마운트 판결은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주 피고인이었지만, 나머지 BIG 5도 피고인으로 참석하였으며,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관련자 거의 모두가 피고로 법정에 섰던 큰 사건이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당시 BIG 5 주도의 할리우드 독점 시장은 대형 스튜디오 (영화사)들이 주도가 되어 이들이 자본, 인력, 기반 시설, 배급, 유통까지 다 소유하는 형태였다. 만들기만 하면 배급과 유통이 걱정 없는 구조였던 데다가 제작진부터 배우까지 다 상근 직원들이라 제작 효율성은 높아졌고 그만큼 제작 기간 역시 짧아졌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놀리면 그냥 인건비가 나가는 터라 그야말로 공장 돌리듯 영화를 찍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연간 영화 생산량은 최대 600여편까지 증가했고 대도시의 개봉관에서 중소 도시의 재개봉관, 그리고 시골 지역의 동시 상영관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매주 간판을 바꿔 달며, 관객들을 맞았다.

재밌는 건 이러한 영화 산업의 폭발적인 공급량 증가를 당시의 대공황 시절의 빈곤한 대중들이 그대로 소화를 했다는 점이다.

영화가 가성비 좋은 엔터테인먼트에 힘든 시절의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의 자동 조립 공정 라인같이 시스템화된 영화 시스템은 효율의 극치를 보였고, 영화사들은 남는 자원을 ‘컬러 영화’같은 새로운 볼거리를 만드는 데 투자했다. 당시 지금 말하는 할리우드 고전 걸작 영화들이 이 시기 많이 나오게 된 것도 다작에 고비용, 신기술 이 세가지가 맞아 떨어진 당시의 산업 상황에 기인한다.

세기의 명작 오즈의 마법사 같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진출처=MGM
세기의 명작 오즈의 마법사 같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진출처=MGM

물론 독점이라 해도 경쟁이 전혀 없는 구도는 아니었다. BIG 5안에서 나름의 경쟁이 이루어졌지만, 암묵적으로 상대의 야심작 발표때는 개봉을 미루는 형태의 은근슬쩍 담합도 이루어졌다.

BIG 5 독점 체재가 지속되면서 나름 시장을 사이좋게 나눠 먹는 모습도 보였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아마도 직접적인 출혈 경쟁을 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조금씩 다른 차별화를 추구하다 보니 BIG 5 나름의 색깔이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MGM으로 통칭되던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영화사의 경우에는 당시 가장 크고 강력한 힘을 자랑했고, 화려한 프로덕션 스타일로 가장 미국적인 색깔의 영화들을 만들어 냈다.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두 도시 이야기'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MGM은 전 대중들에게 고루 사랑을 받았고, 워너 브라더스 같은 회사는 노동자 계층을 위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BIG 5는 각각의 색깔을 통해 저 마다의 작품 세계를 만들었고, 이러한 작품들은 서로 영향을 주며 제대로 산업화된 지 20년도 안된 영화 산업을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쯤 되면 당시의 독점 시장이 영화 산업에 있어 큰 폐해를 안겨주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지만, 이런 효율성 뒤에는 분명 강자의 전횡과 약자의 눈물 그리고 특히 유대계 인물들이 주축이 되었던 당시의 영화계에서 발신하는 왜곡된 메시지 등 부작용 들이 대작들의 화려함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안에서 밖에서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시 경제와 전시 선전 영화 체재 기간 잠깐 주춤하는 가 했더니 전쟁 이후 다시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황금기를 끝낸 파라마운트 판결

1948년 일명 파라마운트 판결로 불리는 ‘미국 정부 vs 파라마운트 픽쳐스’의 재판이 있었다. 미국 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영화 스튜디오들의 극장 체인 소유 및 일명 블록 딜로 불리는 유통 방식 자체가 영화 산업 발전을 막는 독점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대형 스튜디오들은 판결에 의해 분할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했고, 회사가 소유했던 IP 수익의 많은 부분을 실제 창작자인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나누어 줘야 했다. 20년 가까이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지배해왔던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BIG 5는 대공황과 전쟁을 거치며 이미 파산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시장 충격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영화는 매일 같이 제작되었고, 영화관은 언제나 불야성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산업 내에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즐겁게 해줄 영화가 언제 나오느냐는 것 뿐이었다.

할리우드의 독점 시대와 황금기는 이렇게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물론 파라마운트 판결이 방아쇠가 되기는 했지만, 이미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은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다. 바로 영화의 가장 큰 적인 TV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판결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몇 년 뒤 스튜디오 시스템은 스스로 붕괴될 운명이었다는 이야기다. 

193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시대적 사명이 있었다. TV가 나오기 전까지 할리우드는 영화 산업을 세계 최고의 엔터 산업으로 성장시켰고, 영화 산업에서 만들어진 20년간의 노하우와 문법들은 그대로 고스란히 TV와 다른 매체로 녹아들어가 지금의 OTT까지 이어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구조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영화학자들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단순히 경제적 의미에서의 독점 카르텔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한다. 어떻게 보면 초기 영화 산업과 현대 영화 산업을 잇는 과도기적 상태였다고 바라보는 것이 더 옳은 의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와 TV 산업의 등장은 영화 산업은 이후 수많은 독립 영화관과 제작자, 스튜디오의 탄생을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미국 주도의 영화 산업에 대한 반발로 프랑스의 누벨바그 운동 같은 새로운 영화 사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파라마운트 판결의 법령을 해제하라는 신청이 승인되었다. 내년 8월이면 공식적으로 파라마운트 판결의 효력은 정지될 예정이다.

파라마운트 판결이 법령 해제된 지금 사람들은 이제 OTT 플랫폼에 의한 독점을 우려한다. OTT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파라마운트 판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일고 있는 중이다. 사진출처=Bloomberg홈페이지 캡처
파라마운트 판결이 법령 해제된 지금 사람들은 이제 OTT 플랫폼에 의한 독점을 우려한다. OTT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파라마운트 판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일고 있는 중이다. 사진출처=Bloomberg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최근 OTT 시대를 맞은 지금 새로운 파라마운트 판결이 나오려는 움직임이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로 상징되는 OTT 플랫폼에 의한 유통 독점에 대한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OTT 플랫폼을 포스트 모던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부르기 시작하며 견제하기 시작한 이 움직임을 보며 과거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화려한 영화를 누리다 순간 몰락한 것처럼 OTT 플랫폼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이 견제에 대항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문동열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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