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생활플랫폼 서비스 제공 '산 넘어 산' …"전업주의' 타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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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생활플랫폼 서비스 제공 '산 넘어 산' …"전업주의' 타파해야"
  • 권상희 기자
  • 승인 2021.12.10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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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의 금융산업 진출로 기울어진 운동장 발생
당국에 부수업무 허용 법제화해달라는 요구 지속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금산분리는 맞지 않는 오래된 개념"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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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기자] 금융권이 생산성을 높이고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비금융업 겸업 필요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전업주의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최근 빅테크가 금융업을 영위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의 전업주의 원칙이 퇴색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금융업도 기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금융권의 입장이다. 

전업주의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이 각자 해당하는 고유의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금융권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규제샌드박스 등 다양한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규제샌드박스로 허용받은 배달 플랫폼 서비스인 '땡겨요'를 22일경 오픈할 예정이다. 

금융권 부수업무 둘러싼 입장차 존재…고승범 "규제샌드박스 확대 검토"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배달 플랫폼 서비스를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받았다. KB국민은행의 경우에도 2년 전 금융권 최초로 알뜰폰 이동통신서비스인 '리브엠'을 도입한 바 있다. 

다만 특정 금융회사가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해서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되면 다른 금융회사는 해당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만큼 플랫폼 비즈니스가 널리 확대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해서 통과된 사업자만 특정 기간 동안 사업 독점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종합금융플랫폼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활금융서비스가 탑재된 플랫폼 사업을 해야 하는데 현재는 많은 규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며 "은행권은 부수업무 허용을 법제화해달라는 요구를 당국에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9일 "금융회사와 핀테크 간 협업을 통한 새로운 금융서비스에 대해서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한 부수업무 확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은행권은 당국이 부수업무 확대를 위한 법제화와 제도 개선 대신 규제샌드박스를 통한 겸업을 택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은행권의 부수업무 허용에 대해 양측의 입장차가 있는 셈이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디지털 전환의 핵심으로 금융과 비금융 서비스를 융합한 생활플랫폼 사업을 내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령의 뒷받침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고 위원장이 규제샌드박스를 통한 우회적인 방향을 언급한 만큼 관련 법제화는 시간이 좀더 걸릴 것으로 해석된다.

"디지털 시대, 금융 겸업주의 허용 필요"

전문가들은 디지털 시대에 금융업이 비금융업을 겸업해 시너지를 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은 지난 2일 은행연합회가 주최한 '디지털 시대의 금융 겸업주의' 세미나에서 "소비자들의 디지털 경험이 일반화됨에 따라 금융과 비금융상품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금융과 비금융의 융복합·플랫폼화가 주요 경쟁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는 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비금융 융복합 서비스 제공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영서 KB경영연구소 소장 역시 "은행이 디지털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해 고객의 생애주기 자산관리와 금융·비금융 데이터 결합을 통한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투자일임업과 부동산 이외의 투자자문업을 은행 겸영업무에 포함하고, 은행이 부동산·헬스·자동차·통신·유통 관련 기업까지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금산분리에 가장 보수적이었던 일본도 2016년 이후 은행법을 지속 개정해 은행 업무범위를 디지털·물류·유통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금산분리는 현 시대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오래된 개념"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금융과 산업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예전 개념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독일이나 일본에서 2차대전 당시 재벌들이 은행에 손댄 역사가 있어 금산분리 얘기가 나왔지만 현재 실정과는 맞지 않다"며 "가장 핵심은 기본적으로 금융의 안정성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금융권이 테크놀로지와 손잡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돈의 주인이 산업계인가 아닌가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빅테크와 '기울어진 운동장'…동일업무 동일규제 시급

금융사들은 이와 관련해 최근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에 동일업무 동일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국이 빅테크에만 규제를 완화해줘 역차별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고 위원장은 오는 15일 금융권과 빅테크 업계 관계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날 계획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플랫폼화, 데이터 혁신 인프라 구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금융혁신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금융사들은 이 자리에서 빅테크 데이터 독점 우려와 동일업무 동일규제 원칙에 대해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고 위원장은 전날 핀테크업계와의 간담회에서 "다양한 금융서비스가 하나의 사업자로 융합되는 재결합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며 "플랫폼으로의 통합 현상이 늘면서 소비자 편의성은 증대되지만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 독점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온라인 및 비대면 성격에 맞는 영업 행위 규율 체계도 마련하겠다"며 "대형 플랫폼 등장에 따른 데이터 독점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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