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리포트] 일본판 '연예계 블랙리스트' 시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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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리포트] 일본판 '연예계 블랙리스트' 시끌
  • 김재훈 일본 방송언론 연구소장
  • 승인 2021.12.07 16:33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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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비판하다 퇴출 개그맨 연예계 은퇴 선언
내년 3월 미국 이주 발표 후 "잃고나서 깨닫게 될 것"
아베 정권 비판 후폭풍, 공중파 방송서 퇴출
'표현의 자유' 강조하며 정치 풍자 개그 지속
김재훈 일본 방송언론 연구소장

[오피니언뉴스=김재훈 일본 방송언론 연구소장] 일본 연예계에 블랙리스트 파동이 연일 화제다. 

일본 유명 개그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개그 콤비 '우먼 러시아워'의 멤버 무라모토 다이스케가 5일 후지TV '더 만자이(THE MANZAI)'에 출연해 "내년 3월 미국으로 떠납니다"며 사실상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또 "(나를)잃고 나서야 깨달게 될 것"이라며 정치 풍자가 방송계 퇴출 대상이 된 현실을 비판했다.   

얼핏 보면 유명 연예인이 TV방송에 출연해 미국 이민 소식을 전한 것에 불과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갈망했던 무라모토의 마지막 외침이 전파를 타며 폐쇄적인 일본 사회의 '속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우먼 러시아워'는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정치 풍자 코미디언이다. 도쿄올림픽 열기로 뜨거웠던 올 여름 ‘더 만자이'에 출연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과 도쿄올림픽 당시 유통 기한이 지나지 않은 도시락을 대량으로 폐기한 문제 등을 신랄하게 꼬집으며 '정치인이야말로 폐기해야 한다'고 비판해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이 보다 앞서 ‘우먼 러시아워’는 지난해 아베 전 총리의 각종 비리 문제를, 2019년에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와 조선인 학교,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 등 일본 내에서도 민간한 사안을 풍자 코미디의 소재로 채택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 5일, 매년 12월, 후지TV에서 열리는 개그 경연 대회 ‘THE MANZAI’에 출연한 ‘우먼 러시아워’의 무라모토(왼쪽)와 나카가와 파라다이스(오른쪽). 사진=후지TV화면 캡처.
지난 5일, 매년 12월, 후지TV에서 열리는 개그 경연 대회 ‘THE MANZAI’에 출연한 ‘우먼 러시아워’의 무라모토(왼쪽)와 나카가와 파라다이스(오른쪽). 사진=후지TV화면 캡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일본의 어두운 면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일본을 희화화한다는 반대 여론도 거셌다.  

부정적인 평가 속에서도 무라모토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 2월27일 일본 유력 일간지 '도쿄신문'과 인터뷰에서 "코미디란 사회의 스케치다. 돌을 던져 물결의 움직임을 보지 않으면 사회의 형체를 알 수 없다"며 "세상의 중심으로 파고드는 편이 훨씬 재밌다. 파고들 부분 투성이다"고 사회풍자 코미디를 계속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 언론과 일부 국민들은 무라모토에게 '반일 인사'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연일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일각에선 '왜 개그에 정치를 넣어 정부를 비판하는가'라는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단순한 비판에 머물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그가 속한 연예 기획사는 물론 방송국에도 무라모토의 퇴출을 요구했다. 소속사는 정치를 코미디 소재로 삼지 말자고 권했지만 무라토모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2008년 결성 후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각종 유명 개그 경연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차세대 유망 코미디언 '우먼 러시아워'는 한 순간에 공중파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자민당 정권을 비판하는 공연을 이어갔기 때문이라는 게 방송계 안팎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본 방송에 출연핸 오키나와 미군 문제, 후쿠시마 원전 문제, 조선인 차별 문제 등 일본 내에서도 금기시되는 사회 문제를 코미디 소재로 활용해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는 무라모토 다이스케가 최근 미국 이주를 결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후지TV 방송화면 캡처
일본 방송에 출연해 오키나와 미군 문제, 후쿠시마 원전 문제, 조선인 차별 문제 등 일본 내에서도 금기시되는 사회 문제를 코미디 소재로 활용해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는 무라모토 다이스케가 최근 미국 이주를 결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후지TV 방송화면 캡처, 자막=김재훈 소장

'우먼 러시아워'에 대한 논란이 달궈지자, 석연찮은 방송 퇴출을 주목한 방송이 있다. 일본 위성 방송 BS12는 3월19일 '무라모토 다이스케는 왜 TV에서 사라졌는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9월17일 열린 '제11회 위성방송협회 오리지널 프로그램 어워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어 최우수 6개 부문 수상작 중에서 선발하는 대상(그랑프리)의 영광도 안았다.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무라모토는 여전히 스가 요시히데 당시 총리를 비판하는 만담을 선보이며 '정치 풍자 코미디'라는 신념을 지켰다. 그리고 일본 사회를 향한 뼈 있는 한 마디를 건넸다. 

"일본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더욱 보장됐으면 한다."

무라모토의 작심 발언은 계속됐다. 이번엔 정치인이 아닌 언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여러분이 외면하고 있는 것들을 코미디언인 내가 다루고 있을 뿐이다"며 "유명 연예인을 뒤쫓는 것보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방송 퇴출과 안티팬의 폭력에 가까운 비난을 견디며 '표현의 자유'를 갈망했던 무라모토의 외침은 결국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모양새다. 무라모토는 5일 '더 만자이(THE MANZAI)'에 출연해 바뀌지 않는 상황을 개탄하듯 "잃고 나서야 깨달게 될 것"이라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무대를 내려왔다. 

● 김재훈 일본 방송언론 연구소장은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 국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방송 연구를 전공하고, 현재는 '대한일본방송언론연구소'에서 일본 공중파 방송사의 보도 방송과 정보 방송을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방송의 혐한과 한국 관련 일본 정부 정책의 실체를 알리는 유튜브 채널 '라미TV'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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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2021-12-08 09:35:28
어이구 혐한도 표현의자유라며 완전히 내로남불이네

소시민 2021-12-08 00:49:16
국민들이 스스로 입을 막는군

kungfu45 2021-12-07 22:15:56
무라모토씨 참 대단한 사람이지만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저렇게 되는 군요 안타깝습니다.

참새 2021-12-09 11:38:13
일본은 깨닫지 못할겁니다. 깨닫기를.거부하죠.
냄새나는 것은 덮는 것으로 해결하는게 그들의 방식이니까요.

이현중 2021-12-07 22:41:58
에휴
참 여러가지 힘드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