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전 마한인 신발에 들어간 파리 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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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전 마한인 신발에 들어간 파리 한마리
  • 김송현 기자
  • 승인 2017.04.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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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에서 발견된 파리 번데기 껍질의 비밀 분석

 

1,500년전의 어느날, 전남 나주지방을 통치하던 마한의 수장이 죽었다. 그가 저승길을 갈 때 신도록 만들어놓은 금동신발이 시신 발목에 신겨졌다. 그 순간 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어 신발 속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시신은 관에 넣어졌다. 관은 장례를 치를 때까지 닷새 이상 외부에 보관되었다. 금동신발에 들어간 파리는 신발 속에 알을 낳았다. 엄동(嚴冬)의 계절이 아니었으므로, 그 알은 유충(구더기) 과정을 거쳐 번데기로 변해갔다. 곧이어 장례식을 치르고, 관은 물론 금동신발 속의 파리 번데기도 땅 속에서 뭍혔다. 그 번데기가 1,500년의 세월을 인고한 끝에 세상의 빛을 만났다. 지금 부여 정촌고분 인근에서 서식하는 검정빰금파리와 같은 종자였다.

 

▲ 정촌 고분에서 나온 파리 번데기 껍질을 현미경으로 본 모습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내부에서 국내 최초로 파리 번데기 껍질을 찾아냈으며, 법의곤충학적 분석연구를 통해 1,500년 전에 이른바 ‘빈(殯)’이라는 장례 절차의 존재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17일 발표했다.

파리 번데기 껍질은 정촌고분 1호 돌방(石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내부의 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무덤 주인의 발뒤꿈치 뼛조각과 함께 십여 개가 발견되었다.

파리 번데기 껍질의 법의곤충학적 분석은 마한 수장으로 추정되는 무덤 주인공이 사망한 후 ▲외부 장례절차[빈(殯)]의 존재 가능성 ▲사망 시점 ▲1,500년 전과 현재의 기후변화 여부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나주문화재연구소는 정촌고분 1호 돌방과 같은 조건(빛 차단, 평균 온도 16℃, 습도 90%)에서 파리의 알, 구더기, 번데기 중 어떤 상태일 때 성충이 되는지를 실험한 결과, 번데기 상태일 때만 성충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통상 알에서 번데기가 되기까지 평균 6.5일이 걸리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정촌고분 1호 돌방의 주인공은 무덤 밖에서 일정기간 장례 절차를 거친 후에 무덤 안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연구소는 파리 번데기 껍질이 ‘검정뺨금파리(Chrysomyia megacephala)’의 것으로 추정했다. 이 파리는 현재 정촌고분 주변에서도 서식하고 있으므로 1,500년 사이에 기후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주 활동기간은 5~11월(9월경에 가장 활발히 번식)로 정촌고분 1호 돌방의 주인공도 이 기간에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나주문화재연구소는 1,500년 전 파리 번데기 껍질의 법의곤충학적 분석을 통해 삼국시대 장례 문화를 파악할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새겼다. 연구소는 올해 법의학 전문가와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파리 번데기 껍질과 함께 출토된 고인골의 신체특성을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무덤 주인공의 사망 원인과 나이, 식습관, 신체 크기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여 고대 영산강유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떠한 모습이었고, 장례문화는 어땠는지를 살펴볼 계획이다.

 

▲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사진=문화재청
▲ 고분 속 주인공 유골(발뼈)에서 흡착된 파리 번데기 껍질 /사진=문화재청

 

(용어 해설)

* 파리 번데기 껍질은 북유럽 바이킹 무덤에 매장된 시신의 옷이나, 일본 하자이케고분의 인골에 부착되어 발견되는 등 국외에서는 몇 차례 보고된 바 있음

* 법의곤충학(法醫昆蟲學): 시체에 있는 곤충의 생활상(알→구더기→번데기→성충)을 이용하여 사망 후 시간 경과 등을 밝혀내는 학문

* 빈(殯): 시신을 관에 넣어 장사 지내기까지 일정 기간 임시로 안치하는 절차

* 정촌고분은 한 변 길이 30m, 높이 9m인 5세기 후반대 마한 수장급의 방형 무덤으로, 무덤 내에서 돌방(石室) 3기, 돌널(石槨) 4기, 독널(甕棺) 6기 등 총 14기의 매장시설을 확인

 

▲ 파리의 변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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