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북한산 산영루(山映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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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북한산 산영루(山映樓)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4.1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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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이 노닐던 곳…2014년 고양시가 복원

 

 

모처럼 북한산을 탔다. 정릉계곡에서 보국문을 향해 올라간후 다시 북한산성 입구로 내려가는데 중흥사 아래 산영루(山映樓)가 복원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춧돌 10개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던 터에 경기도 고양시가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정자를 복원한 것이다.

고양시는 2014년 10월에 고양 600년 역사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과거 사진자료등을 통해 원형을 충실히 반영해 산영루를 복원했다. 경기도 기념물 223호.

 

이 곳은 북한산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절경 중 한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누각이다. 산영루는 ‘凸’자형 평면 구성을 갖는 정자였는데, 1924년 북한산 일대를 휩쓴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산영루의 건립시기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조선중기 1603년 문인 이정귀(李廷龜)가 북한산 일대를 유람하다 남긴 ‘유삼각산기’에 “산영루 옛터로 내려왔다”는 기록으로 보아 북한산성이 축성(1711년)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산영루는 “아름다운 북한산의 모습이 물가에 비친다”는 아름다운 이름처럼 당대 명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추사 김정희(1786~1856)로, 이들은 이 곳을 방문해 시문을 남겼다. 또 성호 이익(1681~1763)은 산영루에 뜬 달을 삼각산 팔경의 하나로 기록하는등 조선 명사들의 흔적과 문향(文香)이 많이 남아 있다.

 

▲ 조선시대 화폭에 담긴 산영루
▲ 1885. 북한산 산영루
▲ 2014년 복원된 산영루 /사진=김인영

 

산영루 주변에는 비석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그 비석들은 북한산성 관리의 책임자가 재임할 당시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로, 현재 26기 정도가 남아 있다. 비석을 세워 비문을 기록한 선정비가 대부분이며, 비석을 세우지 않고 바위에 비문을 새긴 경우도 있다. 선정비의 건립시기는 모두 19세기다.

▲ /사진=김인영

 

또 바위에는 암각문이 직사각형에 새겨져 있다. 북한승도절목(北漢僧徒節目)이다. 1855년에 새겨진 것으로, 모두 325자다. 명문에는 승병대장인 북한산을 지키는 승병대의 대장 충섭을 임명할대 예상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규정 3가지를 제시해 놓았다. 북한산 승병대는 바로 위쪽 중흥사에 위치해 있었다.

명문에 따르면 사찰이 피폐해 승도가 흩어지고 있었다는 사실, 그 원인이 충섭의 부적절한 임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 이때를 전후해 산성 밖의 승려가 충섭에 임명되었고, 불공평한 임용을 막기 위해 다수결의 비밀투표를 요구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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