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또 배임을 강요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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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에 또 배임을 강요하는 나라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4.13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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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조정 동의하면 칭찬 받을까…다가올 불행에 밤잠 설칠 것

 

기업인에게 배임죄는 바로 옆에 있다. 정부가 요구하고, 은행이 압력을 넣어 중대한 결정을 했는데, 그것이 배임이라는 죄명을 뒤집어 쓴다. 그렇다고 정부가, 은행이 책임 지지 않는다. 그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다 찾아 놓고 압력을 가한다. 순진한 기업인들만 배임죄라는 덫에 걸리고 만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채무 재조정안이 그 대표적 케이스다.

 

국민연금의 컴플렉스는 최순실 게이트의 악몽이다. 문형표 전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에 지시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재판을 받고 있다. 또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해 국민연금공단에 1천억원대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사태를 현재의 국민연금 간부들은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사회 여론도 국민연금에게 곱지 않는 시선을 보냈다. 국민의 재산을 특정기업을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언론도 국민연금을 만만하게 여기며 패대기를 쳐댔다.

이리 저리 두드려 맞은 사람들에게 또 배임을 저지르라고 정부가 요구한다. 자라보고 놀란 사람은 솥두껑 보고도 놀란다. 정부와 대우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국민연금에 채무조정을 받아들이리고 요구하는 것은 “전임자들처럼 감방을 가더라도 국가경제를 위해 애국하시오”라는 것과 다를바 없다. 이 무슨 황당한 요구인가. 대우조선 살리자고 감방 가라는 요구를 감히 정부와 국책은행이 할수 있단 말인가.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 회사채는 3천887억원어치다. 전체 발행잔액 1조3천500억원의 30%에 육박한다. 당장에 대우조선 부도를 막으려면 오는 21일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를 막아야 한다. 이 회사채의 발행잔액 4천400억원 중 국민연금 보유물량은 2천억원(45.45%)이다.

정부가 그린 대우조선 구조조정안에 따르면 대우조선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연장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는 다른 투자기관들은 국민연금의 결정만 쳐다보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회사채의 채무 재조정을 해줘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신규 자금 2조9천억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나이스신용평가의 평가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채무 재조정안을 수용했을 때 평가손실을 2천682억원으로 계산됐다. 이 평가에 따라 계산해도 국민연금의 손실은 1천억원이 넘는다. 게다가 만기연장하는 회사채 50%도 전액 회수할지 불투명하다. 대우조선이 살아 나지 못하면 회수 불가능한 돈이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의 채무를 재조정해주면 책임자들은 배임죄를 뒤집어 쓸 가능성은 높다.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이미 입증된 것과 똑같은 논리다. 분식회계로 망가진 대기업을 살리는데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했으며, 손실이 분명하게 보이는데도 채무를 조정해줬기 때문이다.

 

정부는 P플랜을 간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P플랜이란 새로운 생경한 용어가 갑자기 등장했다. 사전회생계획제도(Pre-Packaged Plan)라고 하는데, 법정관리를 통해 상거래 채무 등 모든 채무를 조정한 뒤 워크아웃이나 자율협약 체제로 전환해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구조조정 절차를 말한다. 한마디로 법정관리에 넣어 법원에 의해 채무만 조정하고, 정부가 은행들을 쥐어틀어 살려내겠다는 뜻이다.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해 편의적으로 만든 제도인 것 같다.

어쨌든 P플랜을 가동하면 대우조선은 짧든, 길든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대우조선의 채무재조정이 실패하면 P플랜 돌입이 불가피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설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배임죄를 무릅쓰고 채무조정에 동의한다고 치면, 우정사업본부(1천800억), 사학연금(1천억)도 동의할 것인가. 국민연금이 동의했다는 사실이 우정사업본부나 사학연금 책임자의 배임죄에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금융당국과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채무조정을 해주지 않으면 더 큰 손해를 볼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우조선의 재무 실사를 진행한 삼정회계법인에 따르면 P플랜 상황에서 무담보 채권인 회사채·기업어음(CP)의 회수율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게다가 P플랜으로 갔을 때 발주 취소 규모가 늘어나고 신규 수주도 제대로 안 돼 최악의 경우 대우조선이 청산하면 이마저도 건질 수 없을 수 있다.

그러니 국민연금이 채권값이 10분의1인 400억원으로 떨어지기 이전에 2천600억원이라도 건지라는 것이다. 이 무슨 장사꾼들의 해괴한 논리인가. 국민연금 책임자들은 오너도 아니다. 오너 회사라면 배임죄를 뒤집어쓰고 몇 년 감방에 가 있으면 2천억의 돈을 건질수 있으니, 도전해볼 일이지만, 봉급쟁이 국민연금 간부들에게 이익 운운하는 것은 참 책임없는 당근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으로선 대우조선이 P플랜이든, 법정관리든 들어가길 바랄 것이다. 그때 법원이 채권가격을 10%로 깎는게 오히려 마음 편하다. 그렇게 깎아주면 된다. 대신 배임죄는 짓지 않게 된다. 어차피 내돈이 아닌데, 관리자의 입장에선 법원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옳은 판단일 것이다. 전임자처럼 정부가 시키는대로 했더니 결국은 감방에 가지 않았는가.

 

▲ 대우조선해양 조감도 /대우조선 홈페이지

 

배임죄 논란은 지난해 9월 한진해운 법정관리 때에도 제기됐다. 당시 한진해운의 모기업인 대한항공은 사회적 여론, 특히 국회의 질타에 의해 한진해운에 6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그런데 대한항공 이사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구 계열사에 지원하는 결정에 동의했다간 배임죄를 뒤집어 쓰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당초 대한항공 경영진은 600억원을 먼저 지원하고 나중에 한진해운에 담보를 설정하자고 이사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사외이사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 자산을 담보로 잡을 수 있는지 불확실한데다 대한항공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해 배임 등 법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수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결국엔 한진해운의 매출채권을 담보로 600억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한진해운이 물건을 수송해 벌어들인 운임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준 것에 불과하다. 그게 무슨 지원이냐는 비난을 받았지만, 대한항공 이사들은 배임죄에서 해방됐다. 결국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간부들은 요즘 엄청나게 시달린다. 경남 거제 시장이 국민연금을 방문하고 산업은행 사람들이 만나자고 한다.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이 “국민연금이 이미 상환불능인 회사채를 정상 채권인 것처럼 간주하며 정부와 채권단이 지급정지를 시키는 것처럼 보고 있다”고 강하게 몰아부쳤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배임죄의 문제를 풀어주겠다고 속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설사 최종구 행장의 발언처럼 휴지조각이므로 50%라도 건지기 위해 어쩔수 없이 채무조정에 동의했다고 해서 나중에 검찰과 법원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까.

언론도 국민연금을 압박하는 사설을 써대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은 12일자 사설에서 “책임보다 손실을 택하는 국민연금의 비합리적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 사설은 "결국 국민연금의 채무조정안 반대는 배임이나 직무유기 책임 논란을 피하기 위해 더 큰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회생 가능성과 채무조정 조건 등을 깐깐하게 따져야 하겠지만 궁극적 목표는 `손실 최소화`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가르치듯 썼다. 매경 사설은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배임을 저지르라고 하는 얘기나 다름없다.

 

차기 정권 수립이 한달도 남지 않았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공석이다. 국민연금 간부들은 다음정부가 들어서면 자신의 자리가 어떻게 되는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아마 지금도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달후 내자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국민연금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압력을 넣는게 아닐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감옥에 넣기 위해 국민연금을 몰아붙이던 이 사회가 이젠 국민연금이 도와주지 않아 대우조선이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을 한다. 설사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에 동의했다고 치자. 그러면 국민연금 책임자들은 사회로부터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고 칭찬을 받을까. 아마 그들은 언젠가 다가올 불행에 밤잠을 설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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