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위기㉚·끝] 화교 자본의 배반
상태바
[아시아 금융위기㉚·끝] 화교 자본의 배반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4.10 16:2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자본 논리가 이데올로기보다 무섭게 자리매김한 세기말

 

인도네시아를 30년간 지배했던 철권의 독재자 수하르토가 물러났지만, IMF는 국제적인 비난에 봉착했다. IMF는 인도네시아 경제를 안정화시키는데 실패했고,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IMF가 처음부터 수하르토를 몰아내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였던 것이 아니라, IMF 처방의 실패가 민중 봉기를 촉발했고, 수하르토 사임의 결과를 빚어냈다. IMF는 인도네시아의 정경유착, 즉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해체가 경제 개혁이고 국제 시장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가설을 밀어붙여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켰다.

하바드대의 스티븐 라델렛(Steven Radelet) 교수는 IMF를 실날하게 공격했다.

“󰡔IMF는 수하르토 일가와 친구들이 하는 사업을 종식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지, 인도네시아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IMF가 몇 달동안 자금 지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기업들이 대외부채 지불을 연기했고, 루피아 하락에 따른 수출 촉진의 좋은 기회마저 놓치게 했다. IMF 프로그램은 잘못 디자인됐으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IMF는 경제 구조조정의 사회적 비용을 전혀 고려치 않았다”며 인도네시아 사태의 원인이 IMF에 있다고 비난했다.

 

여기서 미국의 입장을 짚고 넘어가 보자. 미국은 인도네시아 사태에서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수하르토는 1968년 미국과 소련에 양다리를 걸치며 비동맹 운동을 주창한 수카르노 대통령을 쿠데타로 전복, 정권을 잡았다. 미국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수하르토를 지지했고, 티모르의 대학살 사건도 눈감아줬다. 그러나 미국은 공산권 붕괴후 더 이상 반공주의자가 필요 없게 됐고, 국제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아시아 지도자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미국은 98년초 인도네시아 정부가 IMF에 불복, 팽창 예산을 짰을 때 IMF를 제껴두고 직접 고위관료들을 보내는 등 수하르토 정권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재선 운동 자금을 인도네시아 기업인으로부터 지원받은 은덕이 있기 때문에 초기에는 인도네시아에 동정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국민 저항이 거세지고, IMF 처방이 말을 듣지 않자 수하르토에 등을 돌리고 정권 교체에 대비했다. 이를 입증해주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기사다.

“클린턴 행정부는 한편에선 수하르토 정권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인도네시아 민주화 진전을 위해 몇몇 주요 반정부 단체를 뒷받침 해주었다. 돈은 미 국제개발기구(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라는 기구에서 나왔다. 이 기구는 독재에 대한 정치적 반대자를 지원하기보다는 다리나 댐을 건설해주는 단체로 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95년부터 지원된 2,600만 달러의 돈은 미국의 대외지원 프로그램으로는 작은 규모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인권과 언론자유를 지지하는 그룹에게는 중요한 자금원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은 30여개의 반정부단체에 물적 지원을 했다. 여기에는 민권단체, 정치범 변호단체, 환경단체, 재야 언론단체등이 포함돼 있다.

인도네시아 반정부 단체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주는 메시지는 은행 구조조정이나 경제적 이슈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수하르토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설 것을 이미 상정했던 것이다.

AID는 경제발전만으로 성숙한 시민사회를 형성할 수 없다는 이상으로 지난 93년에 발족됐다. 민주적 정치시스템과 시장 경제가 동시에 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미국은 IMF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시장 경제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 민주화를 지원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민중 저항이 격렬해지자 미국은 수하르토에 지지를 전면 철회했다.

5월 16일 영국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사태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수하르토의 실정에 책임을 돌렸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수하르토 사임 하루전인 5월 20일 “수하르토는 정치가로서의 역사적 행동을 보이라”며 수하르토의 사임을 촉구했다.

 

▲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1998년 수하르토 대통령은 루피아 폭락을 저지하지 못해 사임했다. 자본의 논리가 어떤 이데올리기보다 앞선 시대였다. /자카르타 타임스 캡쳐

 

인도네시아의 또다른 불행은 이질적인 민족이 혼재해 있다는 사실이다. 단일 민족인 한국에선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국민들이 아기 돌반지는 물론 시어머니가 물려준 패물마저 외채 상환에 쓰라고 스스로 내놓았다. 이 눈물겨운 모습은 화면을 타고 외국에 전해졌고, 선진국의 많은 사람들에 한국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선 태국 바트화가 무너지자 인도네시아인들이 달러를 해외로 빼돌렸다. 정부가 은행 폐쇄를 단행하자, 대규모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했다. 나만 살겠다고 돈을 빼돌리는 패닉 상태에서 펀더멘털의 건실함이 아무 소용없었고, IMF 처방이 말을 듣지 않았다. 민족성의 차이일수도 있고, 장기 독재가 낳은 족벌 경제에 신물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도네시아의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수하르토의 족벌과 친구들이 아니라 화교였다는 점이다. 수하르토 족벌은 석유, 전기, 자동차, 금융등 기간산업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는 거대한 화교 경제력에 대항하기 위한 토착 종족의 대항일수도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전체 2억 인구의 4%인 800만명의 화교가 살고 있다. 화교는 소수민족이지만, 인도네시아의 전체 부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굴지의 기업인 살림(Salim) 그룹, 리포(Lippo) 그룹등이 화교 소유기업이다. 농촌에서도 가게, 식당등이 거의 화교의 손에 운영되고 있다.

경제 위기가 가중되자, 이들은 인도네시아 토착 종족의 타깃이 됐다. 시위대는 화교가 운영하는 점포를 약탈하고, 불질러댔다. 그들은 화교들이 경제 위기의 주범이고, 달러를 외국에 빼돌려 루피아 하락을 부채질했다고 믿었다. 수하르토 정부는 화교들로 하여금 달러를 도로 가져오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은 화교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현했다.

인도네시아 위기를 가속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이 예금 인출과 외화 도피였다. 화교들이 이를 부추기고, 확산시켰다는 구체적인 통계는 없다. 인도네시아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금 인출과 외화 도피의 상당액이 화교의 것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중국 민족은 숱한 전쟁과 내란에 시달렸기 때문에 현금 보유를 좋아하고, 상술에 밝다. 화교들은 65년 반공지도자 수하르토가 집권할 때 공산주의 혐의로 50만 명이 학살된 경험이 있다. 정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화교는 타깃이었다. 경제 위기가 터지자, 98년 1월 수하르토 정부는 백만장자 화교인 소피안 와난디씨를 폭탄 테러 연루 혐의로 체포했다. 화교들은 그의 체포가 화교에 대한 탄압의 전조로 인식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터를 잡고 돈을 벌지만, 조금만 사태가 위험하면 도망갈 준비가 돼있는 것이 화교들의 생존논리였다.

수하르토가 IMF와 팽팽히 대결하던 98년 2월초의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자.

“화교들은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일부 부유층들은 자신과 자녀들을 싱가포르로 옮기가 위해 항공기 티켓을 사놓았다. 또다른 일부는 자카르타 항구에 요트를 개기시켜놓고 여차하면 빠져나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수하르토는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화교를 희생양으로 삼았고, 화교들은 몸만 빠져 나간 것이 아니라 돈을 함께 들고 이탈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태는 이질적 민족이 혼재한 나라에서 민족간 갈등이 경제위기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실례를 제공했다.

 

수하르토가 물러난지 보름후인 6월 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선 인도네시아에 돈을 빌려준 13개 선진국 채권은행 회의가 열렸다. 채권단은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의 지급보증 하에 기업과 은행이 빌린 외채와 무역 금융등 800억 달러의 만기를 1~4년 연장해주었다. 아울러 채권단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크레딧 라인을 중앙은행의 지급보증 하에 4월말 수준으로 복원해준다고 약속했다.

선진국 채권은행의 부채 구조조정은 신임 하비비 정권에 대한 지지의 표시였다. 다른 측면에선 아예 돈을 떼일 바에야 만기를 연장해주면서 나중에 받을 필요가 있었다. 모라토리엄을 가장 싫어하는 것은 채권은행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은행가, 경제학자들 중에는 한국 외채협상의 내용이 인도네시아의 외채 구조조정보다 불리하다고 지적,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협상을 타결시킨 게 아니냐고 비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은 은행 외채만 만기 연장됐는데 비해 인도네시아에선 기업 외채, 무역 금융도 만기를 연장받았다. 외채규모가 큰 한국은 인도네시아의 4분의1밖에 안되는 220억 달러밖에 연장 못했다. 한국은 정부 보증으로 만기를 연장했는데, 인도네시아는 중앙은행의 보증으로 연장을 했다. 인도네시아의 조건은 한국보다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은 산술적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루피아 환율이 1년전에 비해 5~6배까지 폭등하고, 민중 반란과 정권 교체를 겪으면서 사실상 모라토리엄 상태까지 갔다. 한국 정부도 외채 이자율 1%를 낮추고 외채 만기액을 100억 달러 늘리기 위해 협상을 끌 수도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을 것인가.

수하르토 정권의 붕괴는 세기말을 앞두고 국제 자본의 논리가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무섭게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시아인들은 국제 자본에 대한 저항이 수십년 지속된 독재정권마저 무너뜨리고 국민에 큰 고통을 안겨준다는 슬픈 사실을 깨달았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PETERKIM 2020-03-24 22:02:49
선생님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선생님 만큼 위대한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누구보다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