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40년 적폐…청산커녕 폐습 쌓는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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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40년 적폐…청산커녕 폐습 쌓는 정치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3.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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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현 정부에 지원 요구…추가지원 없다던 당국, 7조 지원결정

지금으로부터 38년전인 1989년 6월의 일이다. 노태우 정부가 대우조선 정상화방안을 발표한 후 옥포조선소에서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정부가 자금지원을 해주는 조건으로, 회사가 어떻게 해서든 노조 분규를 막는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는데, 파업 사태가 걷잡을수 없이 진행됐다. 정부 당국자들은 정상화 방안을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정부 내에서 실제 검토했던 사실이다.

한승수 상공부 장관은 “대우조선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겠다”고 언론에 발표까지 했다. 한 장관은 대우조선 포기론을 펴면서 조선산업이 인력집약 산업이기 때문에 사양산업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무역협회 고문으로 있던 금진호씨기 2페이지 짜리 건의서를 만들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금씨의 건의는 조선산업이 엄청난 인력고용 효과와 산업연관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서라도 대우조선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우조선 사태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주무장관의 견해가 아니라 금진호씨의 견해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대우조선은 없어지지 않고 4,000억원에 이르는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아 다시 살아났다.

▲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조감도 /대우조선 웹페이지

 

정부가 40년전에 대우조선을 없앴다면 지금과 같이 밑빠진 독에 물붙듯 수조원의 구제금융을 쏟아 붓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구조조정 가운데 대표적인 실패작이고, 적폐중의 적폐다. 산업피해가 적었을 때 살려둔 기형아가 이제는 나라 경제를 집어삼킬 만큼 공룡이 되었다. 죽이자니 국가경제가 흔들리고, 가뜩이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후보의 고향에 현장을 두고 있는 공룡 기업에 수조원의 수혈을 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적폐 청산. 야당의 대선후보들이 주장하는 구호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적폐청산’을 기치로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산업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적폐로 꼽히는 대목에서 문 전 대표는 거꾸로 갔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19일 경남 창원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에서 열린 ‘노동자 생존권 보장 조선산업 살리기 정책수립을 위한 대화'에 참석해 이렇게 연설했다.

 

"조선·해운산업의 어려움으로 동남권 경제가 거의 쑥밭이 되다시피 했다. 지난해 협력업체를 포함해 3만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했고 올해도 약 6만명의 실업자가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관측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대우조선해양은 또다시 수조원대 자금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한진해운 파산에 이은 대우조선 2차 위기는 박근혜 정권이 경제와 기업구조조정에 얼마나 무능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세계 최고의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지금 불황만 이겨내면 다시 한국경제와 지역경제의 효자 노릇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국민 혈세를 금융채권자들의 채권 회수용으로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금융채권자 고통 분담원칙 아래 정부 추가자금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추가 지원금은 오로지 기업 회생 목적으로만 사용돼야 한다.

조선경기가 회복되기까지 견뎌내고 일감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선수금 환급보증, 신규 금융지원 등을 통해 일감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국가에서 조선해운해양 산업을 죽게 내버려두는 나라는 없다. 현 정부가 남은 기간이라도 조선산업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정권 교체된다면 새 정부도 조선해운해양 산업 살려내겠다."

문재인 전 대표 발언의 핵심은 마지막 부분, 즉 “현 정부가 남은 기간이라도 조선산업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정권 교체된다면 새 정부도 조선해운해양 산업 살려내겠다”는 것이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이끄는 현 정부의 금융당국은 공교롭게도 대우조선을 살리겠다고 답을 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23일 대우조선에 또다시 신규자금 2조9천억원을 포함해 7조원 가까운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차기 대권 유력 후보가 “조선업을 살리라”고 요구한지 4일만에 정부가 수조원의 실탄 투입을 결정한 것을 어찌우연의 일치라고 할수 있을까.

 

대우조선 문제는 채권 만기가 돌아오면서 다시 불거졌다. 당장에 4월 21일에 4천4억원의 만기가 돌아오고, 7월 23일(3천억원), 11월 29일(2천억원), 내년 3월 19일(3천500억원), 2019년 4월 21일(600억원) 등 순으로 만기가 줄을 서 있다.

현재 대우조선의 자금 상태로는 4월달에 만기가 돌아오는 4천억원을 갚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 파산인데,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권력 공백 상태에서 채권단이 대우조선을 파산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4월 21일 만기분만 지원해주고, 7월 이후의 것은 차기 정권에 넘겨 책임지라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차기정부의 유력주자의 지시성 유세와 처방의 맥을 같이했다.

정부의 해명도 구구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대우조선이 도산할 경우 59조원의 손실 추정치는 공포마케팅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대우조선을 살려 우리 국민경제의 중요한 경쟁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국민의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대우조선에 아무리 돈을 집어넣어도 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40년전 노태우 정부때 대우조선을 살려야 하는 명분과 똑같은 말을 했다. 게다가 스스로 대마불사의 원칙을 무너뜨릴수 없음을 인정했다.

임 위원장은 "건조 중인 선박에 기자재, 인건비, 설계비 등 이미 투입된 비용 32조원이 사장되는 점과 협력업체에 오는 1년 치 충격 등을 가정했다. 대우조선이 법정관리에 갈 경우 40척 이상의 발주 취소는 확실하다."고도 했다. 앞으로 부실이 더 커지더라도 죽일수는 없고 질질 끌려가며 지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금융당국이나 산업은행의 말처럼 대우조선을 파산시키면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59조원의 피해가 난다고 한다. 그러니 일단 3조원이든, 7조원이든 때려 막아 살아나기를 기다려보자는 심리가 작동할수 있다. 이런 관행이 40년간 쌓여온 적폐였다.

노태우 대통령 때 살려놓은 대우조선은 시황이 좋아지면서 살아나는 듯 하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 전후로 다시 적자의 수렁과 노조 파업에 시달렸다. 대우조선은 1999년 8월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산업은행의 출자전환을 거쳐 2001년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다시 시황이 좋아져 대주주가 된 산업은행은 2008년 10월 한화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대우조선 매각절차를 밟았다. 인수금액 6조5천억원.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해말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화그룹이 인수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웠다. 그때 정부와 산업은행이 약간의 융통성을 보여 한화의 자금 조달을 기다려 매각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부담을 줄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산업은행은 시황이 좋다고 배짱을 부렸다.

결국 팔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업계 시황이 악화하면서 정부는 2015년 10월 그 유명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에 4조2천억원의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그때 금융당국은 “추가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정부와 채권은행들은 대우조선에 물려 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지원으로 은행들은 6천억원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충당금은 은행 수익에 반영된다. 채권은행들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농협등 국책성 은행들이기 때문에 손실은 결국 세금으로 보전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이 대우조선을 버티는 것이다.

대우조선 추가지원은 대선주자들의 핫블레이스로 부상했다. 거제가 고향인 문재인 전 대표는 물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박원순 서울시장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기 이전에 대우조선을 찾아 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넌지시 운을 뗐다. 문재인 대표는 정부가 지원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40년 동안 덕지덕지 쌓여온 적폐에 더 폐단을 쌓은 셈이다.

정치인들은 반성해야 한다. 당장은 표가 아쉽겠지만, 그 표를 얻기 위해 하는 발언과 행동은 결국 유권자를 속이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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