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차기 총리에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 선출
상태바
일본 차기 총리에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 선출
  • 이상석 기자
  • 승인 2021.09.29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일본 외무상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후임 총리로 선출됐다. 사진=TV도쿄 화면캡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일본 외무상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후임 총리로 선출됐다. 사진=TV도쿄 화면캡처

[오피니언뉴스=이상석 기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일본 외무상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후임 총리로 선출됐다.

기시다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근소한 차이로 선두를 확보한데 이어 결선 투표에서 257표를 얻어 170표를 얻은 고노에 87표 앞서 승리했다.

애초 고노가 1차 투표에서 1위를 할 것으로 관측됐으나 기시다가 예상을 깨고 고노를 앞섰다. 결선 투표에서 기시다가 고노를 크게 앞서 당선됐다.

이날 결정된 새 총재는 내달 4일 소집되는 임시 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기시다는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재분배와 격차 축소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고노처럼 특정 키워드를 반복하는 화법을 쓰지 않았지만 '기울이겠다'라거나 '다가가겠다'라는 동사를 자주 사용해 남의 얘기를 잘 듣는다는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려 했다.

국정 현안 등에 대한 설명 책임을 경시하고 국민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은 채 각종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받아온 아베 정권과 스가 내각을 의식한 행보로 분석됐다.

안정감을 바탕으로 자민당 주요 파벌의 지지를 확보한 것이 기시다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고노에 대한 당내 견제 심리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고노는 당내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확대했으나 탈원전을 주장한 이력이나 이번에 아베의 앙숙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과 공조한 것 때문에 자민당 주요 노장파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스가 정권의 실정으로 내각 지지율이 급락한 가운데 여론은 차기 총리로 적합한 인물 1위로 줄곧 고노를 지목했다.

총재 선거의 독특한 구조로 인해 유권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양상이다.

기시다는 총재를 제외한 자민당 임원의 재임 기간을 연속 3년으로 제한하는 개혁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따라 5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실세로 군림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이 교체되는 등 자민당 역학 구도에 다소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시다는 소프트파워를 활용한 외교 정책을 옹호하는 등 보수·우파 성향이 강한 자민당 내에서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역사 문제에서 강경론으로 내달린 아베 정권 시절 약 4년 8개월 동안 외무상으로 재직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의 당사자다.

이력에 비춰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아베·스가 정권의 노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는 한국과의 안보 협력 등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인물이기도 하며 그가 갈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지가 주목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및 중의원 총선거(11월)와 참의원 선거(내년 여름)를 통한 정권 안정이 기시다의 우선 과제인 상황이라서 한일 관계에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기시다는 조부인 기시다 마사키(岸田正記·1895∼1961) 전 중의원 의원,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岸田文武·1926∼1992) 전 중의원 의원에 이은 3대 세습 정치인이며 자민당 파벌인 고치카이(宏池會·국회의원 46명) 회장이다.

아베 정권에서 방위상을 겸임한 적이 있으며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도 지냈다.

기시다 후미오가 걸어온 길

▲ 1957년 7월 29일 = 일본 도쿄도(東京都) 시부야(澁谷)구에서 출생(본적지 히로시마)

▲ 1978년 = 대학입시에서 두 번 떨어진 후 와세다(早稻田)대학 법학부 입학

▲ 1982년 = 와세다대학 졸업 후 일본장기신용은행 입사(5년 동안 근무)

▲ 1987년 = 아버지인 기시다 후미타케(岸田文武) 중의원의 비서로 정계 입문

▲ 1993년 = 부친 사망(1992년) 후 중의원 선거 히로시마(廣島) 제1구에 자민당 후보로 출마해 첫 당선(이후 9선)

▲ 1997년 = 자민당 청년국장

▲ 1999년 = 건설성(현 국토교통성) 정무차관(오부치 내각)

▲ 2001년 = 문부과학성 부대신(고이즈미 내각)

▲ 2005년 = 중의원 후생노동위원장

▲ 2007년 = 내각부특명대신(오키나와·북방·국민생활·과학기술·규제개혁 담당상)으로 첫 입각(1차 아베 정권)

▲ 2008년 = 소비자행정추진 담당상(후쿠다 내각), 소비자행정추진 겸 우주개발 담당상(후쿠다 내각)

▲ 2011년 =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자민당 야당 시절)

▲ 2012년 12월 = 외무상(2차 아베 정권·4년 8개월 재임해 태평양전쟁 후 외무상 연속 재임 일수 1위)

▲ 2015년 12월 = 한일 위안부 합의(12월 28일) 주도

▲ 2016년 4월 =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G7 외무장관 회담 의장

▲ 2016년 5월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히로시마 방문 주도

▲ 2017년 8월 =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 퇴임으로 방위상 겸임(외무상과 방위상 겸임은 일본 헌정사상 처음)

▲ 2017년 8월 = 자민당 정무조사회장(3년여 재임)

▲ 2020년 9월 =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했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에 이어 2위로 낙선

▲ 2021년 8월 26일 = 두 번째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선언

▲ 2021년 9월 17일 = 자민당 총재 선거 후보 등록

▲ 2021년 9월 29일 = 27대 자민당 총재로 선출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