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호남의 금강, '월출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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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호남의 금강, '월출산'에 오르다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12 10:5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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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영산강은 나주평야를 도도히 흐르는 호남의 젖줄이다. 남도에 풍요로움을 주며 흐르는 영산강은 영암에 이르러 우뚝 솟은 월출산과 마주한다.

산의 형세가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아서 영산강이 여기까지 내려와 불을 식히고는 물줄기를 돌린 모양이다.

일출(日出)이 아니고 월출(月出)인 것은, 영산강 물로 불을 식혔기 때문이라는 재밌는 상상을 하며 영암군에 들어섰다.

영암군에서 목포방면으로 가다가 군서면의 벚나무 길로 접어들며 월출산 서쪽 자락을 지난다. 크고 작은 벚나무가 길 좌우로 드리워져 봄이면 꽃의 터널로 장관을 이루겠다.

월출산 정상에 서면 대지를 가로지는 영산강과 마주한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월출산에 오르면 대지를 가로지는 영산강과 마주한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코로나로 찾는 인적이 적어 조용한 산행을 예고한다. 일주문 앞 500여 년이 되는 거대한 팽나무가 도갑사의 역사와 월출산의 풍상을 담고 의연히 서 있다. 

1500년된 팽나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500년된 팽나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천년 사찰 도갑사(道岬寺)

일주문을 지나 오롯한 숲길을 100여 미터를 지나면 도갑사의 가장 오래된 건물인 해탈문(解脫門, 국보50호)이다. 해탈문은 속세를 벗어나 법계(法界)로 들어가는 문이다. 숲길 끝의 해탈문에 이르자 사찰의 모습이 눈앞에 가득하다.

해탈문을 통해 비로소 속세에서 부처님의 품 안으로 들어서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도갑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1456년 수미(守眉)와 신미(信眉)대사가 중창하였다.

한때 승려 수가 730여 명에 달했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는데, 지금은 공양 지을 물을 담아 두는 커다란 석조(石槽)가 도갑사의 옛 영화를 말해준다. 

도갑사 대웅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도갑사 광제루.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대웅전을 돌아 월출산 등산길로 접어든다. 숲은 시원하고 계곡은 맑고 청량하다. 숲길에 들어서자 짹짹거리는 새소리와 나무 사이로 내리는 이른 아침 빛이 반긴다. 

길은 좌우로 갈리고 왼쪽이 미륵전이다. 

미륵전 돌계단을 오르자 은은한 미소를 띤 석조여래좌상이 객을 맞이한다. 불상이 몸체와 광배가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있어 마치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속세의 때 묻은 중생을 자애롭게 바라보는 석가의 미소에 저절로 고개를 숙여 합장하였다.

자비의 미소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국보 144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미륵전의 석조여래 좌상(보물89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미륵전을 나와 오른쪽 등산로로 접어들자 바로 부도전(浮屠殿)과 도선국사와 수미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도선수미비(道詵守眉碑, 보물 1395호)다. 탑비 옆면에 새겨진 등룡(騰龍)이 힘차게 산객(山客)에게 기운을 보탠다. 

도갑사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 중턱까지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와 함께 걷는다. 산을 오르며 불쑥불쑥 이는 상념을 계곡으로 흘려보내고 비워낸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군락이 보이고, 때죽나무며 줄참나무, 개벗나무, 소사나무 등이 어우러져 산길이 조화롭다. 

억새밭으로 들어서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억새밭으로 들어서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한없이 자유로운 미왕재(尾旺嶺) 억새밭

도갑사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쯤 걸어 숲 사이로 난 데크를 지나자 비로소 하늘이 열리며 월출산 주 능선의 고개 미왕재(540m) 억새밭에 다다랐다. 인기척을 느낀 새들이 푸드득 하늘로 날아오르고, 창공에는 매 한 마리가 선회하더니 구정봉 방향으로 날아간다.

답답하던 시야는 미왕재에서 막힌 데 없이 자유롭다. 드넓은 억새밭을 상상했지만, 아직 억새는 노랗게 물들지 않고 그렇게 넓지도 않다. 과거 숲이었던 이 곳이 산불이 난 뒤로 나무가 사라지고 이렇게 억새가 주인이 된 곳이다. 

미왕재 억새밭. 멀리 강진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미왕재 억새밭. 멀리 강진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바위에 올라 멀리 바다 위 섬들과 동남쪽으로 펼쳐진 첩첩연봉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 드넓은 창공, 끝없이 펼쳐진 무비한 세상에 한동안 마음을 두었다.

억새를 헤치며 구정봉을 향해 발걸음을 놓는다. 향로봉과 구정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거대한 바위들이 파도처럼 산 위로 치달려 올라가는 듯 보인다.

아홉 마리 용을 품은 구정봉(九井峯, 711m)

미왕재에서 1.5킬로를 걸어 구정봉 삼거리 능선에 올랐다. 좌측으로 100여 미터 진행하면 구정봉이다. 이곳 구정봉 능선을 경계로 북쪽은 영암군 영암읍이고, 남쪽은 강진군 성전면이다.

구정봉 웅덩이. 시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구정봉 웅덩이. 시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정상 암반에 올라보니 크고 작은 웅덩이가 펼쳐져 있는데 세어보니 아홉이다. 웅덩이(井)마다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떠올리며 더 찬찬히 살펴보면서 상상력에 감탄한다.

널찍한 바위 웅덩이에 고인 물에 잔물결이 인다. 웅덩이 물결 너머로 영암읍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온통 푸르다. 대지의 벼는 가을이 깊어가면 황금색 들녘으로 변하겠지.

구정봉에서 능선을 벗어나 마애여래좌상을 보기로 했다. 50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야 하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후회를 남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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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여래좌상.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자비의 미소 마애여래좌상(국보144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마애불을 친견하는 순간 감탄과 함께 경외감을 느낀다. 높이 8.6m의 마애여래좌상을 지나쳤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터다. 

신라말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완벽한 하나의 조각작품이다. 바위 면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자리를 만들고 마애불을 새겨놓았다. 바위의 결을 따라 만들었기에 약간의 불균형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웅장하다.

얼굴과 팔, 다리 등 질감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다. 불상 오른쪽에 높이 90cm 높이로 새겨진 선재동자상(善財童子像)이 부처님을 향하여 예불을 올리고, 지긋이 아래로 동자상을 내려보는 듯한 마애불의 눈길이 한없이 자애롭다.

월출산 천황봉(天皇峯, 809m)에서 바라본 바람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월출산 천황봉(天皇峯, 809m)에서 바라본 바람재와 구정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특이한 바위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특이한 바위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바람이 쉬어 가는 곳, 바람재 삼거리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다시 되돌아 와 바람재로 향한다. 짧은 거리지만 건너편 천황봉을 조망한다. 발걸음을 옮김에 따라

바위의 모습이 조금씩 변화를 한다. 여러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베틀굴 입구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베틀굴 입구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베틀굴을 지난다. 임진왜란 때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곳에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인데 모양이 요상하다. 

굴의 깊이는 10여 미터쯤 되는데 마치 여성의 은밀한 모습과 닮아서 바람재를 지나 만나는 남근바위와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월출산의 명소가 되었다. 

바람재 삼거리에 도착했다. 구정봉과 천황봉 사이를 연결해 주는 바람도 쉬어 가는 곳이다. 

큰바위 얼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큰바위 얼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구정봉 암봉을 다른 말로 큰바위 얼굴이라고 부르는데, 바람재에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거인의 얼굴이다. 

또한 투구를 쓴 장군의 모습이기도 하여 장군바위라고도 부르는 거대한 큰바위 얼굴이다. 

구정봉과 천황봉 사이의 바위를 바라보니 우주인을 닮은 것, 돼지며 원숭이를 닮은 것 등 생김새가 하도 다양해서 닮은꼴을 찾아보느라 지체를 한다.

바람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금릉경포대(金陵鏡布臺)다. 금릉은 강진의 옛 이름이고, 산속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말하는데, 바다가 아름다운 강원도의 경포대(鏡浦臺)와는 한자부터 다르다. 

남근바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남근바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월출산 천황봉(天皇峯, 809m)

남근바위를 지나 천황봉을 향한다. 가팔라서 천천히 오른다. 뒤를 돌아보면 너무 아찔해서 가슴이 내려앉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월출산 최고봉 천황봉에 도착했다. 50여 명은 족히 앉을 암반에 앉아 사방으로 가지를 튼 능선을 감상한다. 

기묘하고 거대한 암릉 능선은 영암과 강진을 아우르며 활활 타오르는 불꽃인 듯, 서해를 가르는 거친 파도인 듯 솟구치고 굽이치며 산 아래로 내달린다.

북쪽으로는 영암 산성대 능선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사자봉과 매봉, 시루봉이 포효한다.

월출산 천황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월출산 천황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서쪽을 바라보면 구정봉과 향로봉이 고개를 숙인다. 이곳이 홀로 우뚝한 월출산 정상 천황봉이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은 “남도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산이 하나 있으니, 달은 푸른 하늘에 뜨지 않고 이 산을 오르더라[南州有一畵中山 月不靑天出比間]”라며 빼어난 절경을 표현했는데, 어찌 글로 이 경치를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일행이 이 곳 산세가 설악과 닮았다고 한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천변만화하는 바위의 모습은 마치 석공이 다듬은 양 만 가지의 모습을 담고 있는 만물상과 같구나.

천황봉에서 내려다 본 안개에 쌓인 월출산.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구름으로 둘러쌓인 월출산.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비경(秘境), 산성대(山城臺) 가는 길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을 지나 산성대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선다. 산성대코스는 천황봉에서 영양읍 방향의 탐방로이다.

험한 암릉으로 이어진 월출산의 절경 중 사람의 접근을 불허했던 코스가 산성대다.

전설처럼 그 명성만 유지하다 2015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산성대는 바위와 바위를 넘나들며 철계단과 난간을 의지해서 걷는 코스다.

산성대.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산성대.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굽이치는 암릉을 타고 넘노라면 간담이 서늘해지고 오금이 저린다. 바람을 맞으며 바위에서 자란 소나무들은 사람 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천연 분재다. 바람결대로 휘어지고 늘어진 키가 크게 자라지 못한 소나무를 구경하며 자꾸 발길이 더뎌졌다. 다양한 모습의 바위들을 가까이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걷는, 지금껏 보지 못한 월출산의 신세계다. 

암릉을 타고 내려오면서 펼쳐진 영암의 읍내와 널따란 대지가 눈에 가득 차온다. 멀리 뭇 산들이 발아래 굽이치며 흘러가는 모습도 장관이다. 대지를 가로지르는 영산강의 물줄기는 거대하게 곡선을 그리며 나주평야를 가로지른다. 장쾌하다. 

산성대의 천연분재 소나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산성대의 천연분재 소나무.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산성대는 산성대코스 중간쯤에 있는 봉수대 자리다. 해발 471m 절벽에 놓인 자리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단애 위에 있다. 일반적으로 봉수대는 산 정상에 있는데, 더는 정상으로 오르기가 불가능해서 이곳에 봉수대를 설치했을 것이란 추측이 든다. 

산성대에서 조금 내려가면 월출제일관(月出第一關)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 바위를 만난다. 이곳에 문이 있었다는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13.5km를 걸어 산성대 입구 탐방안내소에 도달한다. 기찬묏길을 걷는 사람들이 스치며 바삐 지나간다. 월출산을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품은 하루는 가슴이 벅차고 다리가 뻐근하다.

등산화를 벗고 다시금 번다한 속세에 이르렀지만, 심안(心眼)은 청정하고 가슴이 여전히 황홀한 것은 이번 월출산행이 도갑사 경내를 거쳐 법계로 들어서 계곡과 연속된 암릉의 월출 선계(仙界)를 두루 돌아 영암 속계(俗界)에 이른 만행(萬行)이었기 때문이리라.
 
[도보코스 추천] 갑사~미왕재 억새밭~구정봉~마애여래죄상~구정봉~베틀바위~바람재 삼거리~남근바위~천황봉~통천문 삼거리~광암터 삼거리~산성대~산성대 입구 탐방안내센터. 총연장 13.5km

월출산 탐방코스. 출처=월출산안내소
월출산 탐방코스. 출처=월출산안내소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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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2021-09-12 14:06:46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처럼 하수선한 시기에는 무조건 걷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박성기 여행 칼럼 니스트님 화이팅 입니다

푸른숲 2021-09-13 10:36:59
월출산을 차타고 지나가면서 올려다본게 다 였는데 이리 사진과 글을 읽고 따라가보니 같이 동행한 기분이 드네요.
잘 읽고 갑니다.

홍은숙 2021-09-13 17:29:40
가보고 싶은 산이데 자세한 안내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