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채권매입 속도 늦춰..."테이퍼링 의미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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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B, 채권매입 속도 늦춰..."테이퍼링 의미는 아냐"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1.09.1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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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르드 ECB 총재 "PEPP 속도 낮춰도 자금조달 여건 유리하게 유지될 것"
"채권매입 속도 늦춰도 테이퍼링 의미는 아냐"
일각에서는 "테이퍼링의 첫 걸음" 평가도
유럽중앙은행(ECB)이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의 매입 속도 조절에 나섰다. 사진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사진=연합뉴스
유럽중앙은행(ECB)이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의 매입 속도 조절에 나섰다. 사진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부터 이어온 코로나19의 주요 대응책인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의 매입 속도 조절에 나섰다.

유로존의 높은 백신 접종률을 바탕으로 빠르게 경기회복에 나서고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면서도, 여전히 자산매입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델타 변이 바이러스 등 경제 변수에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ECB "PEPP 속도 낮춰도 자금조달 여건 유리하게 유지될 것"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ECB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0%로 유지하고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0.50%와 0.2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ECB는 코로나19 확산 사태의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의 대응 채권 매입 속도를 조절할 것임을 밝혔다. 

ECB는 "최근 자금조달 여건과 인플레이션 전망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PEPP 대응 채권 매입 속도를 지난 2개 분기간 수준보다 현저히 낮은 속도로 완화해도 자금조달 여건이 유리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CB는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막기 위해 PEPP를 도입한 바 있다.

ECB는 PEPP에 따라 내년 3월까지 1조8500억유로 규모의 채권 등 자산을 매입하고 있다. 

ECB는 지난 3월 2분기 코로나19 대응채권 매입 속도를 1분기보다 상당히 높인 바 있으나, 6개월만에 속도를 다시 낮춘 것이다. 

ECB의 이같은 결정에는 유로존의 강력한 경제 성장과 동시에 최근 급등하는 인플레이션 지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지역의 성인 인구의 70%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서 유럽지역은 각종 방역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FT는 고빈도(High-frequency) 지표를 인용해 "지난 여름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유럽지역을 휩쓸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경제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자산관리업체인 인베스텍의 이코노미스트인 엘리 헨더슨은 "유로존 백신 접종률은 이미 미국을 넘어섰고 어떤 국가들은 영국 수준까지 올랐기 때문에 유로존의 경제활동이 노동시장의 회복으로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지수는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달 독일의 소비자물가(CPI)는 28년만에 최고치인 3.9%로 치솟았으며, 유로존의 8월 CPI는 전년대비 3% 올랐다. 최근 10년간 최고 수준이다. 

이는 ECB가 정한 물가 상승률의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크게 웃도는 것이기도 하다. 

FT는 "ECB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주요 대응책인 PEPP의 속도를 늦추기로 한 결정은 백신 접종이 늘어나면서 봉쇄 조치가 끝나고 기업 및 가정활동을 활성화시켰기 때문"이라며 "유로존의 성장과 인플레이션의 급등에 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ECB는 유로존의 강력한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 속에서 대규모 채권 매입 속도를 다소 늦출 것임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라가르드 총재 "테이퍼링 의미하지 않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채권 매입 속도를 늦췄지만, 이것이 테이퍼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그 여성은 테이퍼링을 하지 않는다(The lady isn't tapering)"이라고 밝혔다. 

이는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의 명언인 '그 여성은 돌아서지 않는다(The lady's not for turning)'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자산매입의 속도 조절이 테이퍼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우리가 오늘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은 유리한 자금조달 여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채권 매입 속도의 눈금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언론들은 ECB의 이같은 결정이 다른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 정책 종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평가다. ECB는 채권 매입을 축소하거나, 종료하는 것이 아니라 매입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블랙록의 거시 연구 책임자인 엘가 바치는 "이것은 축소하는 결정이 아니다"면서 "ECB의 자산매입은 여전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반면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과 영란은행은 올해 자산매입을 줄일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을 비롯해 캐나다와 뉴질랜드, 호주 중앙은행들 역시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하거나 줄여나갈 것임을 밝혔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ECB는 여전히 경제적 변수의 확대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라가르드 총재 역시 "대유행으로 인해 경제에 가해진 타격이 해소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며 "대유행 이전보다 200만명이 더 실직했고, 우리는 위기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이어 "4차 유행의 코로나19 감염은 여전히 회복을 방해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자동차 제조업체와 다른 생산업체들이 반도체와 기타 재료를 구하지 못하는 공급망 대란은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더 큰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질적 테이퍼링 시작이라는 견해도 나와

채권매입 속도의 조절이 테이퍼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테이퍼링을 위한 첫 발을 떼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영국 런던경제대(LSE)의 이탈리아 경제 전문가인 로렌초 코도뇨는 "이것은 실질적인 테이퍼링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WSJ는 "ECB의 결정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가운데 투자자들을 동요시키고 유로존 국채 수익률을 상승시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쿼트의 분석가인 아이펙 오즈카데스카야는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유럽 기업들은 또다른 어두운 겨울을 나기 위해 ECB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번 결정은 투자자들을 기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ECB는 이날 올해 유로존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6%에서 5%로 상향조정했으며, 인플레이션 전망치도 올렸다. 

ECB는 올해 유로존 물가상승률이 2.2%, 내년에는 1.7%, 2023년에는 1.4%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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