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연대기] ㊲ 영화, 예술이 되다 - 독일 표현주의와 현대 콘텐츠 산업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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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연대기] ㊲ 영화, 예술이 되다 - 독일 표현주의와 현대 콘텐츠 산업 (하)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1.09.0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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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절망에 빠진 독일에 찾아온 짧은 광명, 골든 트웬티는 이름에서 풍기는 활발한 이미지와는 달리 종종 ‘빌려온 행복’으로 묘사된다.

독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광란의 20년대’ 또는 프랑스에서는 ‘미친 시대 (crazy years)’로 불리는 걸 보면 골든 트웬티 시대가 내포한 시대적 양면성에 대해 조금은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말 그대로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은 인류가 처음 겪는 전쟁의 공포가 만연한 시대였다. 영화 ‘1917’이나 ‘서부전선 이상 없다’같은 영화에서 묘사된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은 영화이기에 오히려 순화된 편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총력전의 양상을 띄는 현대 전쟁의 사상자는 전사자나 부상병이 없는 집을 찾기 힘들 정도였고, 전쟁이라고 하면 군인들의 일로 치부해버렸던 사람들에게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들었다.

현대 영화의 한 축을 만들다

이런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런 시기였기에 문화나 지식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불타올랐다. 비로소 19세기 복고주의가 몰락하고, 20세기의 새로운 자유주의 사상들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열정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 표현주의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성장했고, 건축, 무용, 회화, 조각 등 전통 미술 분야뿐만 아니라, 당시 새롭게 성장 중이던 영화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 대표작 칼리리 박사의 밀실의 한 장면. 출처=Deutsche Welle 홈페이지 캡처.
독일 표현주의 영화 대표작 칼리리 박사의 밀실의 한 장면. 출처=Deutsche Welle 홈페이지 캡처.

독일 표현주의가 영화사에 미친 영향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그 간의 영화에서 추구해왔던 사실주의 풍조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메트로폴리스 (1927)’이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0)’을 보면 동 시대의 다른 영화 특히 미국 영화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보인다.

당시 영화 감독들이나 제작자들은 대부분 영화 제작에 임할 때 ‘카메라는 단지 기록하는 도구’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의 소재 역시 대부분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비해 표현주의 영화들은 극도로 비현실적인 세트에 빛과 그림자 등을 활용해 기괴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영화의 소재 역시 몬스터나 공상 과학, 마법 등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비현실적인’ 소재를 채용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0) 공식 트레일러. 출처=유튜브

표현주의 이론의 대표자 격인 루돌프 아른하임이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책에서 ‘영화 매체는 현실적 한계를 뛰어 넘어 재구성하거나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한다’고 말했듯이, 표현주의 영화들은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 자체를 감독들의 주관적인 예술적 창의력을 담는 도구로 보았다.

괴리된 독일의 현실이 만든 현대 영화의 원류

당시 감독들에게 표현주의 사조는 큰 영감을 주었다. 당시 촬영 기사 정도의 위치였던 감독들은 자신의 예술적 창의력을 영상에 담아 내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영역으로 승화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초기 독일의 표현주의는 전쟁에 대한 본능적 공포가 지배했던 당시의 암울했던 사회 분위기에 맞춰 어둡고 우울한 내용의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표현주의 영화들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공포나 고통과 같은 부정적 심상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극적인 조명이나 카메라 앵글을 사용했는데, 이는 공포 영화나 판타지 영화, 디스토피아 SF 영화 등에 맞는 연출들로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 만들어진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은 독일 영화에 대한 금수 조치가 해제된 이후 미국 시장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메트로폴리스 (1927) 트레일러 (출처: 유튜브)

그 동안 사실주의 영화에 집착해오던 할리우드도 이에 고무되어, 독일 감독들을 미국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결과 1930년대와 40년대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같은 할리우드의 공포 영화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으로 상징되는 느와르 영화들이 이러한 표현주의 기법을 통해 만들어지게 됐다.

현재의 거의 대부분의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할리우드 영화는 극적인 사실주의 보다는 독일의 표현주의 기법에 가까운 영화 제작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현대 영화가 ‘현실의 반영’보다는 시각적인 볼거리를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를 통해 현대 영화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독일 표현주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일 현지에서의 표현주의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눈부셨지만 짧았던 골든 트웬티가 끝나고 나치에 의한 국가 사회주의 체재가 자리잡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치를 피해 많은 작가와 감독들이 미국으로 옮겨갔고, 나치를 추종한 몇몇 표현주의 감독들이 표현주의 스타일로 영화를 제작했지만, 나치의 선전 선동의 도구가 되기 시작한 독일의 영화에 더 이상의 표현주의 특유의 예술적 열정과 영감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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