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사라져야…배민·쿠팡이츠, 위험한 ‘속도전쟁’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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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사라져야…배민·쿠팡이츠, 위험한 ‘속도전쟁’ 언제까지
  • 김리현 기자
  • 승인 2021.08.30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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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선릉역 사거리서 배달 라이더 숨져
해 지날수록 이륜차 사고 늘어나고 있어
소비자·라이더, 속도 경쟁 자체가 없어져야
그럼에도 퀵커머스 시장은 더욱 커질 듯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는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선릉역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는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선릉역에서 화물차 사고로 숨진 배달 라이더 A씨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리현 기자] ‘바로 배송’ ‘즉시 배송’ ‘15분 배송’ 등 속도를 무기로 삼는 퀵커머스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오토바이 사고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음식을 배달했느냐’가 곧 하루 수입을 결정짓기 때문에 라이더들은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무리한 운전을 펼치고 있다. 

배달 라이더 종사자 수만 20만 명에 육박하는 가운데, 최근 들어 라이더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자 배달 종사자와 소비자들 사이에서 안전 주행에 대한 경각심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를 고쳐야 한다는 자성부터 빠른 배달 경쟁을 유도하는 배달앱의 운영 방식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퀵커머스’ 배달 증가에 사고도 증가세

지난 26일 배달 라이더 40대 A씨는 오전 11시 27분께 서울 삼성동 선릉역 사거리에서 23t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화물차 운전자는 운전석 위치가 높아 사고 당시 앞에 있던 A씨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A씨가 화물차 바로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치여 숨졌다고 밝혔다. 

30일 국토교통부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이륜차 교통사고(사망자수, 부상자수 포함) 건수는 2만4112건으로, 2019년 교통사고 건수 2만6건으로 무려 4000건 이상 급증했다. 2018년에는 1만9031건이었다. 해가 갈수록 오토바이의 교통사고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일부 라이더들이 정지선 위반,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등 교통신호를 어기고 난폭운전을 하기 때문에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라이더 업계에서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음식 도착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전업 라이더로 일하는 30대 남성은 배달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배달하면서 신호 잘 지키고 신호 위반을 안 하면 배달앱에서 요구하는 도착 시간을 지킬 수 없다”며 “그렇게 되면 항의는 물론이고, 배달 건수가 줄어 최소한의 수입도 보장받을 수 없어진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전업 배달 라이더 20대 남성은 “오토바이 배달을 그만둘 생각”이라며 “돈 벌려면 위반 행위를 너무 많이 해야 하고, 아무리 길을 잘 안다고 해도 위험한 순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도 무서워 더 이상 배달업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특히 앱을 통해 받는 주문 콜 배당과 배달 시간, 이동 경로 등은 배달 플랫폼들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결정되는데, 라이더들은 알고리즘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작동하는지 그 원리와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문제는 알고리즘이 도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동선을 비효율적으로 잡아 라이더들의 배달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예컨대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걸리는 예상 소요시간을 도로나 건물,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직선거리로 재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간보다 짧은 시간 안에 배달하도록 압박한다. 앱이 제공하는 이동 경로를 따라 가려면 하늘을 날아야만 가능하다. 

‘빨리빨리’ 문화 변해야 하지만…경쟁 심화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조건 속도만을 지향하는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배달 종사자들도 빠른 배달 경쟁을 유발하는 배달앱 업계의 운영 방식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김모(28)씨는 “길을 걷다보면 라이더들을 10초에 한번 꼴로 마주하는데, 아찔한 순간이 많다”며 “한 템포만 서로가 양보하면 될 텐데, 대한민국 빨리빨리 문화가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배달서비스지부는 선릉역 사고와 관련해 라이더 안전 확보를 위한 공제조합 설립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공제조합을 통해 저렴한 보험료, 의무 유상보험, 안전교육, 배달 교육 등을 책임지고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쿠팡이츠가 라이더 1명이 1건의 배달만 하는 ‘단건 배달’을 시작하자 배달의민족도 6월부터 비슷한 서비스인 ‘배민1(one)’을 출시했다. 소비자들은 맛있는 음식을 집에서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게 됐지만, 그 사이 라이더들은 목숨을 건 속도 경쟁에 내몰린다. 

하지만 이 같은 플랫폼사 간의 속도 경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배민, 쿠팡이츠를 비롯해 배달대행 업계들도 본격적인 퀵커머스 시장 진출을 알렸기 때문이다. 퀵커머스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5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바로고는 신선식품과 생필품을 10분 만에 집 앞에 배달하는 배달 앱 '텐고(Tengo)'를 출시했다.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가장 빠른 10분 배달 퀵커머스 서비스로, 현재 논현·역삼동 일부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을  운영 중인 메쉬코리아도 바로고보다 먼저 퀵커머스 플랫폼 출시 소식을 알렸다. 메쉬코리아는 오아시스마켓과 지분을 출자해 합작회사 브이를 설립했다. 올 3분기 내에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며 향후 전국적으로 넓혀 빠른 배송을 선보일 예정이다.

배달앱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배달앱 시장이 많이 커져 많은 회사들이 해당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며 “비슷비슷한 가게에서 배달하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요인은 속도 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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