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죽파리 '자작나무 숲'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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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죽파리 '자작나무 숲'에 가다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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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꽃부리(英)와 따뜻한 볕(陽)의 세계
백두산 이도백하 여정 떠올라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경북 영양(英陽)군은 봉화군, 청송군과 더불어 오지(奧地) 중의 오지다. 동쪽으로 울진과 영덕과 접하고, 서(西)로는 안동, 남쪽으로는 청송, 북(北)으로는 봉화와 맞닿은 곳이다.

인구도 1만6000여 명에 지나지 않은 작은 군이다. 도보의 목적지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검마산(劍磨山1,017m)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지금껏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심산유곡이다.

봉화와 영양을 가르는 일월산 자락에 연꽃이 물 위에 뜬 형상이라는 우련전(雨蓮田)을 지나 영양으로 들어섰다. 깊은 계곡길을 지나는 탓인지 한참을 달려도 차 한 대 마주 하기 어렵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를 보니 이곳이 정말 오지인 것이 분명하다. 

일월산(日月山1,217.7m)에서 발원된 반변천(半邊川) 계곡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 차는 일월산 자생화공원을 지난다. 오랜 세월 침식 탓에 산자락 급경사로 바위는 맨살을 드러내며 계곡으로 내려섰다. 거세게 내려오며 요동치는 물살은 바위를 크게 부딪치고는 하얀 파편을 드러낸다. 

송하리를 지나 백암산(白巖山1,004m)과 검마산에서 발원한 장파천(長坡川)이 흘러 내리는 아름다운 궤적을 보며 죽파리로 향한다. 장파천을 바라보며 이 천의 시작점에 있는 자작나무숲을 찾아간다는 생각에 반갑다.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경북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서낭당과 세 그루의 느티나무

어느덧 천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하죽파 마을을 지난다. 죽파리는 상죽파와 하죽파로 나뉘는데 하죽파 마을을 지나 3킬로를 더 가서 도로를 끼고 돌아 느티나무가 커다랗게 하늘을 가린 상죽파의 장파경로당, 도보의 출발지에 들어섰다. 

가을로 접어든 날씨는 전날 내린 비로 선선해서 걷기에 좋았다. 잔뜩 구름이 끼었다가 마을에 도착한 순간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쨍쨍하다. 

장파경로당 맞은편에 있는 서낭당.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장파경로당 맞은편에 있는 서낭당.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경로당 맞은편 서낭당에는 금줄을 쳐 함부로 잡인과 속된 것들을 경계했다. 마을에 들어서는 외인이라 서낭당에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했다. 서낭당을 감싸고 있는 수백 년은 됨직한 느티나무 세 그루가 한 나무처럼 서 있다.

장파경로당 앞 느티나무. 한그루처럼 보이지만 세그루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장파경로당 앞 느티나무. 한그루처럼 보이지만 세그루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한 뿌리 형제인 듯 어우러져 멀리서 보면 마을을 이고 있는 커다란 지붕 같다. 이곳 느티나무 쉼터에서 가방을 정리하고 숲에 들어갈 채비를 차렸다.

보부상들이 정착해 마을이 됐다는 죽파리. 대나무가 많아 마을이름이 죽파리라고 한다. 이 마을 북쪽 상죽파리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보부상들이 정착해 마을이 됐다는 죽파리. 대나무가 많아 마을이름이 죽파리라고 한다. 이 마을 북쪽 상죽파리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쉼터에서 둘러보면 사방이 산으로 가렸다. 검마산과 갈미산, 백암산 등 큰 산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서 영양에서도 깊숙하다. 보부상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생겼는데, 언덕에 대나무가 많다고 죽파리라 불렀다 한다.

봇짐을 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보부상이 정착한 이유는 아마도 이곳에서 검마산과 백암산을 넘어가면 울진과 봉화로 가는 길이 수월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으로 들어서다

마을을 지나 신작로를 따라간다. 길 양옆으로 금방이라도 불을 낼 것처럼 빨갛게 익은 고추며,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담은 접시꽃이며, 봉숭아꽃 등이 다투어 객을 반긴다. 옥수수는 금방이라도 옷을 벗을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제 내린 비로 초가을의 선선함이 몸을 가볍게 한다.

마을 어귀에서 반기는 접시꽃.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마을 어귀에서 반갑게 맞이해주는 접시꽃.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마을 앞. 붉은 고추.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마을 앞. 붉은 고추.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장파천을 옆에 두고 임도를 따라가며 듣는 물소리며, 때늦은 매미 소리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면 어느새 검마산과 백암산을 가르는 임도 삼거리다. 삼거리에는 낙동정맥로 지도와 표식이 있고, 자작나무숲까지 3.2킬로라는 표지목이 보인다. 

자작나무 숲 가는길. 3.2Km 표지판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자작나무 숲 가는길. 3.2Km 표지판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태백의 구봉산(九峰山902.2m)에서 출발한 낙동정맥이 칠보산(七寶山974.2m)을 지나 자작나무숲이 있는 검마산에 이른 것이다. 장쾌한 민족의 산맥이 지나는 길임을 알리는 표지 앞에 경건해진다.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자작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는 검마산 방향으로 향한다. 계곡은 작은 자갈 사이로 아주 얌전하게 흐르고 있다. 여느 계곡이라면 큰 바위를 때리며 위험스럽게 흐르지만 여긴 아주 얌전하다. 

장파천 상류.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장파천 상류.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을 따라 물소리와 바람 소리, 새소리 등 숲의 속삭임을 들으면 이곳은 속세와는 다른 별천지임을 새삼 깨닫는다. 계곡을 따라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들기에 객기를 자제한다.

검마산에서 내려오는 장파천 상류.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숲길에서 본 검마산에서 내려오는 장파천 상류.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수피(樹皮)가 푹신푹신한 굴참나무며, 너저분하게 껍질이 벗겨지는 물박달나무, 하늘 높이 올라간 금강소나무 등이 갈 길을 막고 제 모습을 자랑한다. 

울진 십이령에서, 봉화에서, 바우길에서 만났던 금강소나무를 여기서도 제대로 만났다. “어명이오” 외치고는 궁궐에 쓸 소나무를 잘랐다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한참동안 바라보다 길을 재촉했다. 

자작나무 숲 가는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자작나무 숲 가는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국내 최대의 자작나무 숲

상죽파에서 5km를 걸어 자작나무 숲에 도착했다. 낙동정맥의 큰 줄기에 자리 잡은 자작나무숲이라서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물을 받아 더욱 무성하게 큰 숲을 이룬 모양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꼭꼭 숨었다가 이제 성목(成木)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작나무는 한대목(寒帶木)이라 우리나라에서도 북쪽 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는 1974년부터 심기 시작했고, 영양 죽파리의 자작나무는 그보다 늦은 1993년부터 심기 시작했다.

자작나무의 범위로 보면 약 30헥타르(ha) 규모다.

이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인제와 홍천 경계에 있는 수산리에도 자작나무 숲이 조성됐다.

원대리와 죽파리의 자작나무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면 수산리 자작나무숲은 임도를 따라가면서 멀리서 보는 차이가 있다.

멀리서와 가까이서 보는 느낌은 아주 다르다. 

하얀 세상으로 만든 자작나무를 바라보며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백두산 이도백하에서 백두산을 가는 여정이 생각난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을 걷고 싶은 그리움은 죽파리 자작나무숲 이곳에서 비로소 해소하게 되었다.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자작나무 숲은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계곡을 건너면서 시작되었다. 몽유병 환자처럼 이곳저곳을 자작나무와 호흡을 하며 걷다가 실처럼 벗겨지는 수피를 만져본다.

거칠지 않은 아주 부드러운 질감으로 다가온다. 손을 바라보니 초를 만지는 느낌의 하얀 가루가 옅게 묻어나온다. 

자작나무는 수피의 겉이 둘둘 말린 얇은 종이처럼 살짝 말려 올라온다. 하얀 표피를 걷어낸 수피는 아주 옅은 황톳빛이 은은하여 하얀 세상을 거부하지 않는다. 

자작나무 숲.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자작나무 숲.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자작나무 가지흔. 꼭 산 그림 같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자작나무 가지흔. 꼭 산 그림 같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나무가 자라면서 아래쪽 가지가 떨어져 나간 검은 자국의 가지흔은 여러 모양의 그림을 그려낸다. 산수화를 그린듯하고, 때론 화산 폭발하는 분화구의 형상도 보이는 등 다양한 모습을 구현해서 너무 신기해 자꾸 나무들의 가지흔을 찾아다녔다.

비라도 올 모양 구름이 짙게 끼어 대낮인데도 사방이 어두워진다. 어두운 저녁처럼 느껴질 때 자작나무 하얀색이 더 하얗게 되는 착각에 빠진다. 눈의 착시일까. 마치 자작나무가 환하게 불을 밝힌듯하다. 껍질을 태워 밝힌 불이 아니라 자작나무 하얀 수피가 스스로 밝힌 등처럼 느껴졌다.

수피가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난 데서 이름이 붙은 자작나무의 효능과 쓰임새는 참 많다.

수피에서 난 기름으로 북방의 캄캄한 밤을 밝혀주던 등불이 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아서 화피(樺皮)는 글과 그림을 담는 화피(畵皮)가 되었으며, 수피를 태워 재로 글씨를 썼고. 5월이면 나무 밑동에 구멍을 내어 무병장수한다는 맑은 화수(樺水)를 뽑아 마셨고, 화목(樺木)은 오랫동안 썩지 않고 단단해서 건축자재로 쓰였다.

하늘이 도화지가돼 수놓은 자작나무는 땅과 어우러져 참말로 다채롭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하늘 도화지에 수 놓은 자작나무는 땅과 어우러지며 참말로 다채롭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백두산 근처의 너와집에서는 자작 껍질로 지붕을 올리면 빗물이 화피(樺皮)의 기름기를 피해 안으로 스며들지 않았다고 하니 추운 북쪽 지방에서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생존에 필요한 자연의 선물인 나무였다.

따뜻한 남도 여행 중 자작나무처럼 보이는 나무는 자작나무가 아니라 거제수나무나 사스래나무다. 예전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헛지식만 전달했다. 다시 만나면 그 나무가 자작나무가 아닌 것을 말해줘야겠다.

자연과 하나가 되다

자작나무 숲길을 관통해 돌아오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이제 하산이다. 자작나무 숲길을 등지고  돌아오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자작나무에 취해 숲 여기저기 4킬로를 더듬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늘은 해와 구름을 반복하다가 기어코 비를 쏟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숲을 더 살피다가 시작점은 작은 개천을 건너며 자작나무 숲 탐방을 끝냈다. 

다시 상죽파로 하산을 할 때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한다. 계곡의 물소리는 더 요란해져 나뭇잎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와 아름다운 합주를 한다. 비가 멈추고 이따금 내리는 햇살은 숲사이로 여러 가닥의 빛을 내놓는다.

자연의 모든 것들이 하나씩 일어나서 아름다운 합주를 하고 있고, 나도 그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서울에서 죽파리 자작나무 숲 가는길] 

시외버스 : 동서울~영양버스정류장고속버스 2회운항 (08시10분, 16시20분)

기차와 버스이용 : 청량리~안동역 ktx ~ 시내버스로 영양군 이동 

고속버스 : 안동터미널~영양버스정류장 (첫차 06시40분 막차 21시 55분, 하루 17회 운행)

지역버스 : 130번, 132번, 136번 영양 버스정류장~장파경로당

*영양버스정류장에서 택시로 이동 가능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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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꾸돌까? 2021-08-28 08:23:44
박선생님 덕분에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주옥같은 글과 사진을 그리 잘 찍었는지
또 다른 글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