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 연대기] ㉟ 대공황과 미디어 콘텐츠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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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 연대기] ㉟ 대공황과 미디어 콘텐츠 산업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1.08.0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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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시기 기회얻은 이스케이프 필름
사운드 등장, 대공황시기 새로운 돌파구돼
가성비 좋은 영화, 라디오가 주류
현대 엔터테인먼트 기반 마련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1930년대가 밝았다. 현대사에 있어 1930년대는 20세기 양대 세계 대전 사이에 낀 짧은 평화의 시기였지만, 새로운 전쟁의 불씨를 잉태한 시기이기도 했다.

독일과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으로 대공황 (Great Depression)이라는 초유의 경제 불황이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렸다.

반면 이 시기 미디어 콘텐츠 산업은 사운드라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성장 동력을 얻었다.

영화는 무성 영화 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사운드 필름의 시대로 정착하기 시작했고, 대중들에게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한 라디오는 전파를 이용한 매스 미디어 시대를 열었다.

현대 대중 문화의 틀이 서서히 잡혀가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뮤지컬 영화의 전성시대

전 미국 아니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대공황의 여파는 영화 산업의 메카가 된 할리우드라고 비켜가지는 않았다. 다른 곳과는 달리 할리우드에게는 기회였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대 공황으로 인해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예전과 같은 문화 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면에서 영화는 불황의 시대에 딱 맞는 엔터테인먼트였다. 1929년 35센트까지 올랐던 미국 박스 오피스의 평균 티켓 가격은 1930년대 들어 25센트까지 떨어졌다. 티켓 값 25센트에 10센트짜리 마티니 한잔이면 사람들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 다른 공간과 시간, 다른 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전 좌석 25센트 입간판이 인상적인 대공황 시대의 영화관의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전 좌석 25센트 입간판이 인상적인 대공황 시대의 영화관의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이렇게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람들에게 가격 대비 큰 만족을 주었다. 반면 티켓 가격을 그 정도로 떨어뜨릴 수 없었던 무대 공연의 본가 브로드웨이는 큰 타격을 입었다. 위기에 봉착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도움의 손길을 뻗은 곳은 할리우드였다.

사운드 필름의 시대가 열리며 유성 영화 콘텐츠 포맷들을 만들어가던 할리우드에 있어 브로드웨이는 그야말로 보물 창고였다. 할리우드는 새로운 사운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영화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브로드웨이의 노하우와 할리우드의 기술력이 만나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는 1930년대 영화 산업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 시기는 할리우드 최고의 전성기 중 하나로 불린다. 이후 100년을 호령할 미국 영화 산업이 완성된 것도 이 시기다. 42번가 (1933), 오즈의 마법사 (1939)와 같은 오리지널 곡으로 큰 예산의 뮤지컬 영화가 만들어졌고, 미키 마우스로 애니메이션계의 거물로 자리잡기 시작한 디즈니는 1937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로 장편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연다. 

이스케이프 필름과 라디오의 황금기

1930년대는 뮤지컬 영화 외 코미디 영화나 ‘스크루 볼 코미디’로 불리는 로맨스 영화도 큰 인기를 끈 시기였다. 대공황 시대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우울한 일상을 탈출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시기의 히트를 친 뮤지컬, 코미디, 로맨스 영화들을 ‘이스케이프 (탈출) 필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캐서린 헵번이나 캐리 그랜트가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명 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울고 웃으며 현실의 시름을 잊었다.

대공황 시대 라디오는 많은 이들에게 무료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며 급성장했다. 출처=위키피디아.
대공황 시대 라디오는 많은 이들에게 무료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며 급성장했다. 출처=위키피디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영화관람객은 전체적으로 감소했지만, 주당 평균 영화 관람 비율은 40%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던 것도 대공황이야말로 영화 산업에게는 시장 확대의 시기였음을 말해준다. 영화는 일상이 되었고, 일상이 된 영화 산업은 이제 불이 꺼질 일이 없었다.

이 시기 일상이 된 엔터테인먼트는 또 있었다. 바로 라디오였다. 1930년대 라디오 쇼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라디오의 황금기라고 불리울 정도다. 라디오는 불황을 맞은 사람들에게 기계만 구매하면 ‘무제한 무료’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했다. 여기에서 파생된 스폰서 제작 모델이 이후 TV 시장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TV 미디어 시장이 성장하게 된 근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대공황은 이렇게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마치 지금의 코로나 시국에 일부 엔터테인먼트가 오히려 호황을 맞은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가성비 좋은 엔터테인먼트를 찾았고, 이 시기에 형성된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흐름은 결국 20세기 대중 문화의 기본 흐름으로 발전해 간다.

현대 대중 문화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 1930년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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