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곡성’의 공포감만 부각시켜준 영화 ‘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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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곡성’의 공포감만 부각시켜준 영화 ‘랑종’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7.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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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나홍진 브랜드’에 대한 무한신뢰는 아쉽게도 실망감만 자아냈다.

물론 영화가 전적으로 감독 예술인 탓에 시나리오 원안과 기획, 제작을 맡은 나감독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 관객과 유명 제작자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태국의 스타 연출가인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주특기 장르인 공포영화를 연출했음에도 공포감 조성에는 실패했다.

한순간이라도 오싹해지기를 바랐건만 혐오감을 부채질하는 장면들의 연속은 현기증을 유발할 뿐이었고, '공포 없는 공포영화' 보기는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곡성 시즌2 같은 ‘랑종’의 인물구도

영화 ‘곡성’의 무속인 ‘일광(황정민 분)’ 캐릭터의 전사로부터 기획된 작품 ‘랑종’은 출발점이 그렇듯 곡성과 닮아있다. 음습한 기운을 스크린 가득 담고 있는 전남 곡성과 태국의 북동부 이산지역의 배경이 주는 특유의 어두운 느낌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적인 이미지의 시작이다. 

샤머니즘을 전면에 내세워 인간의 원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귀)신들림으로 피폐해져 가는 ‘곡성’의 효진(김환희 분)과 ‘랑종’의 밍(나릴야 군몽콘켓 분)은 누구도 구원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들은 원죄의 제물이다. ‘업보’는 숙명이 되어 그들 가족을 향해 끔찍한 피바람을 부른다. 어쩌면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의 삶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조정되며 일그러진다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처절한 부성애로 딸을 지키기 위해 악령이라고 믿는 외지인(쿠니무라 준 분)과 혈투를 벌이는 아버지 종구(곽도원 분)와 과거 신내림을 거부했다가 밍을 위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엄마 노이(씨라니 얀키띠칸)의 모성애는 형태는 다르지만 눈물겹다. 

곡성의 일광은 효진을 신들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조력자로 그려지지만, 영화 후반부 외지인과 연결고리가 있는 듯 보이는 무속인이다. ‘선’으로 믿었던 캐릭터의 반전, 그렇다고 ‘악’으로 규정할 수만은 없는 미스터리가 섬뜩함을 자아낸다. 

일광에 비견되는 랑종의 님(싸와니 우툼마 분)은 조카 밍의 조력자로 나서지만 퇴마의식을 앞두고 사망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얀신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연약했음을 인정하는 모습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허망하기까지 하다.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거라는 믿음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상당히 허무한 반전 캐릭터다.

영화 곡성과 랑종, 모두 악령(귀신)에 대항하는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다. 원죄로부터 구속된 악한 존재이기에 결국엔 파멸로 귀결될 뿐이다. 마치 인과응보의 원리가 작동이라도 하는 듯 말이다. 

영화 랑종 스틸컷
영화 '랑종' 스틸컷

곡성을 뛰어넘지 못한 영화 ‘랑종’

닮은 인물구도와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공포감은 극과 극을 달린다. 곡성은 뒷목이 뻣뻣해질 정도의 긴장감으로 ‘숨멎주의보’를 여러 차례 발동시킨다.

예상을 빗나가는 거듭되는 반전은 공포감을 극대화 시키며 영화가 주는 물음표에 관객은 퍼즐을 맞추듯 기꺼이 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미스터리한 상황이 주는 몰입감은 가히 최고다. 시각과 청각이 주는 1차원적인 공포를 뛰어넘는 심리적인 공포감은 2시간 36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을 순삭하게 만든다. 

랑종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통해 ‘실화인 듯’ 현실감을 부여하며 공포를 조성한다. 허구가 아닌 사실이라고 믿었을 때 무서움은 배가된다. 그러나 일정하지 않은 카메라 시점은 극영화와 다큐의 경계에 있고, 이는 결국 사실이라고 믿고 보는 페이크 다큐의 장점을 살려내지 못했다. 멀미 날 듯 잦은 핸드헬드 기법과 암전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공포영화의 시초인 ‘블레어 윗치(1999)’를 어설프게 벤치마킹한 것 같다. 

자연스레 ‘리얼’이라는 최면에 걸려야 하는데 픽션이라고 느끼는 순간, 몰입감은 깨지고 공포감은 반감된다. 퇴마의식이 벌어지는 곳에서 서로를 물어뜯어 혈흔이 낭자한 장면은 마치 좀비영화를 구현한 듯해 랑종이 다큐인 듯 다큐 아닌 극영화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극이 중반을 넘어서며 밍이 신들림으로 인해 기괴한 행동을 보이는 장면들의 연속은 지나치리만큼 가학적이다. 관음증적 소비 그 이상일 수 없는 성관계 장면은 불필요해 보이고, 유아살해와 동물학대 장면은 극단적인 잔혹함으로 공포감을 강요한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각적인 공포감을 조성하기는 했지만 단지 그 뿐이다. 그런 탓에 랑종은 섬뜩함이 뇌리에 남아 되새김질 하게 만드는 심리적인 공포로 확장되지 못하고 만다. 잔인함을 전시하는 듯한 후반부는 엇비슷한 크기의 자극이 계속되면서 긴장감은 사라진다. 생략과 압축의 묘미가 없으니 131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설명적인 영화는 관객이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주지 못한다. 영화 랑종이 곡성을 뛰어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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