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 연대기] ㉞ ‘월트 디즈니’ 탄생 비화 (하) – 미키 마우스 탄생과 디즈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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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 연대기] ㉞ ‘월트 디즈니’ 탄생 비화 (하) – 미키 마우스 탄생과 디즈니 제국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1.07.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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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디즈니 빌런’ 찰스 민츠의 배신으로 탄생한 미키마우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하는 월트의 의지와 고집이 성공을 만들다
기술혁신으로 고양이 펠릭스를 누르고 최고의 캐릭터가 된 미키마우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지금도 디즈니 팬덤에서 ‘찰스 민츠’는 다시 재기해보려는 월트 디즈니를 절망에 빠뜨린 남자로 자주 묘사된다. 그를 최초의 ‘디즈니 빌런’이라 부르는 팬도 있을 정도다.

아내 마가렛이 임신하자 윙클러 스튜디오를 맡게 된 민츠에게 디즈니 브라더스 스튜디오의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시리즈는 그에게는 ‘이상한 작품’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족족 오히려 손실을 보는 구조였으니 말이다. 그의 입장에서 제작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작품의 퀄리티에만 신경쓰는 월트를 어떻게 보았을지는 이후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월트를 제거하는 것으로 스튜디오를 (재정적으로) 정상화시키기를 원했고 결국 실행을 했다.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 볼 때 민츠는 ‘빌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악당은 아니었다.

민츠의 제작비 감축 요구는 무리한 것은 아니었고, 충분한 개연성도 있었다. 배급사로서 충분히 디즈니에게 요구할 수 있었던 위치이기도 했다. 거기에 민츠의 최후 통고를 무시한 건 월트 디즈니였다.

내막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민츠는 월트의 스탭들을 빼앗았다. 이로 인해 월트는 큰 충격을 받는다. 파산 이후 어떻게든 재기를 해보려던 월트의 노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그의 옆에 남은 사람은 형인 로이와 아내인 릴리안 그리고 창업 초기부터 그와 함께 해왔던 아이웍스와 몇몇 신참들뿐이었다.

20세기 엔터테인먼트의 상징, 미키 마우스 이 귀여운 쥐의 탄생은 이후 엄청난 콘텐츠 미디어 제국의 시작이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20세기 엔터테인먼트의 상징, 미키 마우스 이 귀여운 쥐의 탄생은 이후 엄청난 콘텐츠 미디어 제국의 시작이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미키 마우스의 탄생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일명 디즈니 정사 (正史)에서는 행운의 토끼 오스왈드를 유니버설 픽쳐스와 민츠 스튜디오에 빼앗긴 일을 월트에게 주어진 ‘시련’정도로 본다. 더 큰 결과물인 ‘미키 마우스’ 탄생의 드라마틱한 복선이라는 것이다.

직원과 민츠의 배신을 알고 절망감에 사로잡힐 법하건만 월트는 좌절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뉴욕에서 내려오는 열차에서 곧바로 새로운 캐릭터의 개발에 착수했다. 오스왈드의 제작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캐릭터로 이미 캐릭터 개발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만큼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키 마우스’ 탄생의 순간이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의 탄생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건 월트가 캔자스 시티 시절 Laugh-O-Gram 스튜디오 시절 키웠던 애완용 쥐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이다.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 컬렉션에 있는 1928년 초 미키의 컨셉 아트.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 컬렉션에 있는 1928년 초 미키의 컨셉 아트.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미키 마우스의 원래 이름은 ‘모티머 마우스 (Mortimer mouse)’였다. 아내 릴리안이 너무 거창한 이름이라며 제안한 이름이 바로 ‘미키 마우스 (Mickey Mouse)’였다. 

마지막까지 월트 곁에 남은 직원 중 한 명인 아이웍스는 미키 마우스의 개발에 총력을 다했다. 월트가 그린 캐릭터의 원안을 애니메이션 풍으로 수정한 아이웍스의 캐릭터는 오스왈드와 일견 비슷해 보였지만, 커다랗고 동그란 귀 두개가 붙어있으며 가늘고 긴 팔다리를 가진 귀여운 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1928년 5월 15일 민츠의 쿠데타 이후 3개월 만에 미키 마우스의 첫 단편이 나왔다. ‘Plane Crazy’라는 단편 작품이었다. 이어 미키 마우스 두번째 작품인 ‘Gallopin’ Gaucho’도 나왔지만, 두 작품 모두 시장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절박해진 월트는 미키 마우스 필름을 들고 극장주나 배급사 등 필름을 사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 디즈니 제국과 미키 마우스의 시작, 증기선 윌리. 동영상 출처=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유튜브 채널

누구든 포기하고 싶을 상황이었지만, 월트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와중에 세번째 작품을 준비했다. 바로 미키 마우스의 데뷔작이라 불리는 ‘증기선 윌리 (Steamboat Willie)’였다. 증기선 윌리는 당시의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과 비교해 약간 특이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월트 디즈니의 승부사적 기질을 볼 수 있다.

증기선 윌리는 미키 마우스의 세번째 작품이자 첫번째 데뷔작이다. 그리고 당시 ‘재즈 싱어’를 통해 획기적인 시도로 영화계를 뒤흔들고 있던 사운드 온 필름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첫번째 시도는 아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첫번째 시도로 여겨진다) 여러 고난을 겪었지만 월트의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나 도전의식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우려함에도 불구하고 세번째 작품을 사운드 온 필름으로 만든 것도 월트의 의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지금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작사 오프닝 크레딧에 나오지만, 윌리가 휘파람을 부르며 등장하는 장면은 많은 관객에게 큰 신선함을 선사했다.

자본력이 없는 애니메이션 기업이 그것도 바로 얼마 전에 눈뜨고 작품을 빼앗긴 월트의 이러한 시도는 영화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월트가 의도한 대로 ‘재즈싱어’의 성공 이후 사운드 시설을 장만하기 시작한 극장 업계에서 ‘사운드 애니메이션’은 서로 모셔가고 싶어 난리 인 귀한 몸이었다.

시스템은 있지만 콘텐츠인 사운드 필름이 얼마 없었기에 비싼 장비를 놀리느니 이러한 콘텐츠를 우선 배급하는 것이 업계 입장에서도 좋았다. 월트의 마지막 승부수가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다른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무성 영화만 만들고 있었기에 미키 마우스와 경쟁을 할 수 없었다.

특히 미키 마우스 이전 가장 인기있었던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고양이 펠릭스’는 희비가 교차되었다. 미키 마우스는 무성 영화로 제작된 전작들까지 사운드 작업을 다시 하는 등 시대의 흐름을 따라갔지만 ‘고양이 펠릭스’의 제작자 팻 설리반은 여전히 무성 영화를 고집하는 파였다.

얼마 후 미키 마우스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설리반도 뒤늦게 사운드 필름을 제작했지만, 이미 시장은 미키 마우스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한 고양이 펠릭스는 서서히 대중들에게 잊혀져갔다. 고생 끝에 드디어 월트 디즈니에 의한 디즈니 왕국이 20세기 엔터테인먼트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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