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동해시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과 '마천루 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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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동해시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과 '마천루 협곡'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25 11:1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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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도보기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기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기행 칼럼니스트 ]  동해시에서 무릉계곡 관광지에 들어서면 앞을 가로막는 두타산(頭陀山·1357m)과 청옥산(靑玉山,1,404m), 고적대(高積臺, 1,354m)가 병립하여 우뚝 솟아있다.

도도히 동해를 따라 설악과 오대산을 거쳐 내려오는 백두대간의 줄기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내린 물이 쌍폭포에서 만나 아래로 4km 남짓 이어지는 계곡을 무릉계곡이라 부른다.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이상향의 세계가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하는 것처럼, 기묘한 바위를 부딪치며 휘돌아오는 계곡과 산세의 모습이 사람들이 찾는 이상세계와 닮았다고 무릉계곡이다.

다르게는 단순히 계곡이 아닌 파라다이스로서 무릉의 구역 곧, 무릉계(武陵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상의 세계를 다룬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는 무릉을 다녀온 어부가 다시 무릉을 찾아가질 못했지만, 동해 두타산에 펼쳐진 무릉계곡은 언제든 다가갈 수 있는 무릉의 세계다.

베틀바위에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본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베틀바위에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본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송곳처럼 솟아있는 베틀바위와 미륵바위

무릉계곡 관리사무소를 지나 작년 2020년에 오픈된 베틀바위 산성길과 올해 6월10일에 빗장을 연 마천루 협곡으로 가는 등산로를 만난다.

사람의 발걸음을 거부하고, 소수 전문등반가에게만 허락되었던 험한 곳이다. 그야말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인 곳이 마침내 인간의 출입을 허한 것이다. 

삼화사 가는 길을 옆에 두고 왼쪽 베틀바위 산성길을 오른다. 얼마 안 가서 울창한 나무를 숯으로 만들어 팔던 숯가마 터를 만났다. 옛 모습을 복원하여 걷는 이의 눈길을 잡아보려 하지만, 복원의 흔적이 인위적으로 보여 낯설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바라 본 베틀바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바라 본 베틀바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베틀바위 전망대까지 가파른 길은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칠월의 무더위 탓도 있지만, 고도 480미터, 거리 1.5킬로를 올라가는 길은 간단치가 않다. 한 발 한 발 땅에 코 박고 오르다 보면 몸이 땀으로 젖는다. 7월의 무더위는 바람조차 막아선다. 

그렇게 한 시간을 씨름하면 화양목 군락지를 지난다. 이곳의 화양목은 척박한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나 100여 년을 지켜왔다. 안내문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기운을 돋우고 관절의 통증을 없앤다고 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솟는다. 

미륵바위 오른쪽으로 부처님 형상이 보이는 듯 하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미륵바위 오른쪽으로 부처님 형상이 보이는 듯 하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발걸음에 힘이 더 들어가고 마음이 전망대에 가 있어 발걸음이 빨라진다. 전망대 앞을 가리는 큰 바위 뒤로 화려한 베틀바위가 눈을 사로잡는다. 연달아 뾰족뾰족하게 송곳처럼 솟아있는 바위 위에 내 발끝이 서 있는 것 같아 간담이 서늘해진다. 

베틀바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씨실과 날실이 엇갈려 짜인듯 바위가 기묘하게 삐죽하게 솟아있어 베틀처럼 생겨서이다. 다른 하나는 선녀가 죄를 짓고 인간세계로 내려왔다가 비단 세 필을 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해서다. 

사람들이 중국의 비경 장가계 빗대어 말하지만, 어찌 남의 경치에 비견할까. 그저 우리 강산의 비경이 좋고 아름답다. 

전망대에서 다시 조금만 더 오르면 미륵바위를 만난다. 바위의 모양새가 보는 사람에 따라,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보이지만, 가장 근접한 모양새가 미륵부처님의 형상이다. 뜯어보면 볼수록 미륵부처님의 얼굴 특징이 보인다. 

미륵바위를 지나면 지금까지 가파르던 길은 사라지고 순한 길을 만난다. 맑던 하늘이 일순 비라도 내릴 것처럼 어두워지더니 이어 빗방울이 한두 방울 나뭇잎을 때린다. 

숲길을 따라 1km 남짓 걸어 12폭포 상단부에 도착했다. 두타산에서 내린 물은 안개 속을 헤집고 내려와 12폭포로 떨어져 내린다. 여기에서 계속 진행하면 마천루 협곡으로 가지만 짙은 안개구름에 협곡의 비경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며칠 뒤를 기약하고 두타산성으로 길을 잡고 내려간다. 

두타산성.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두타산성.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절벽에 쌓은 두타산성(頭陀山城)

두타산성에 이른다. 신라 때에 있던 옛성을 태종 14년(1414년) 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높이 1.5m, 둘레 2.5km의 산성을 다시 쌓았다 한다. 임란 때는 동해·삼척 일대의 의병들이 왜적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는 산성은 비록 예전의 위용은 잃었으나, 여전히 산성의 모습을 일부나마 간직하고 있다. 
  

두타산성에서 내려다 본 세상. 구름이 산자락에 걸려있다.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두타산성에서 내려다 본 세상. 구름이 산자락에 걸려있다.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산성을 지나면 백곰바위와 절벽 위 외로운 외솔이 서 있다. 백곰바위는 각도를 틀면 정말 백곰이 뒤돌아 금세라도 움직일 듯하다.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내려 바위를 따라 아래로 쭉 늘어뜨린 형상이 기괴하다. 질긴 생명력에 경외감이 든다. 

며칠 후 다시 두타산성을 시작으로 길을 이어 갔다. 평일이고 새벽에 출발해 일찍 온 터라 인파가 드물어 호젓하다. 산성을 지나 거북바위와 12폭포 전망대가 있다. 지난번 짙은 구름안개로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곳이다.

두타산성에서 바라 본 낙랑장송.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두타산성에서 바라 본 외솔.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비경(秘景) 12폭포와 거북바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듯 산을 가로질러 내려온 폭포의 물줄기는 암벽에 부딪혀 산산이 비산하여 더위에 지친 산자락을 시원하게 씻어주고 있다. 산을 오르느라 몸은 힘들었어도 눈은 즐거웠다. 수직 암벽을 내리치며 쏟아지는 폭포 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바로 앞 벼랑 위 거북바위는 금세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두타산성에서 내려와 만난 12폭포 상단 물줄기.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두타산성에서 내려와 만난 12폭포 상단 물줄기.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12폭포 상단부를 지나 마천루로 향했다. 해는 어느새 중턱에 차고, 더운 날씨는 기세가 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중복이다. 뜨거운 햇살은 습하지 않아서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해진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한다면 그나마 괜찮겠다 자위하지만 역시 한낮의 더위는 매섭다.

거북바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거북바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보는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기암괴석을 따라 마천루 가는 길은 깎아지른 절벽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아찔함도 선사한다.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던 절벽길의 날 선 생생함이 가득하다. 거석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골짜기로 자꾸 깊게 들어간다. 인간의 발길을 허하지 않던 길은, 쓰러진 나무, 크고 작은 돌무더기, 아슬아슬한 벼랑길 등 다양한 방법으로 걸음을 방해한다. 

바위 틈새로 나오는 석간수(石間水)

큰 바위 밑으로 수도골 석간수(石間水)다. 하늘을 닿을 듯 높이 솟은 바위 밑으로 뚫린 암굴은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어, 한순간 빨려 들어가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석간수가 있는 암굴로 10여 미터 들어서자 물이 고여 찰랑거린다. 

거대한 석봉아래 석간수.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거대한 석봉아래 석간수.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태연히 내 앞에서 한동안 제자리다. 녀석은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줄 아는 듯 태연히 있다가 이내 저편으로 사라졌다.

마천루에서 바라 본 협곡.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마천루에서 바라 본 협곡.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마천루(摩天樓)에 펼쳐진 세상

험한 길은 밧줄을 잡으며, 거석(巨石) 사이를 지나기를 여러 번 마침내 마천루에 도달했다. 하늘을 맞닿을 듯 높이 솟은 마천루는 해발 470미터의 높이다. 발바닥을 닮은 발바닥바위, 고릴라바위, 건너편 청옥산과 두타산을 가로지르는 협곡의 장관이 경이롭게 펼쳐졌다.

마천루 가는 길. 거대한 암벽을 받치고 있는 나무. 우연일까. 발상이 재밌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마천루 가는 길. 거대한 암벽을 받치고 있는 나무. 우연일까. 발상이 재밌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멀리로는 용추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산 전체가 깎아지른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청옥산 협곡 면을 바라보며 내가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전망대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여서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 

전망대를 내려서서 쌍폭과 용추폭을 향한다. 마천대 웅장한 바위 자락을 둘러 철계단을 놓았다. 계단을 내려서며 아래로 보이는 높이에 난간을 붙잡고 조심스레 내려온다. 지금껏 허락되지 않았던 길을 허락받은 기쁨으로 설레게 출발했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이은 철계단을 타고 협곡으로 내려오며 자꾸 하늘을 날고 축지(縮地)하는 무협을 꿈꾼다. 

쌍폭포와 용추폭포(龍湫瀑布)

마천루를 내려와 쌍폭포에 도착했다. 쌍폭포는 양쪽에서 쏟아지는 폭포를 말하는데, 두타산 쪽에서 내려온 폭포가 왼쪽 박달폭포이고, 청옥산에서 내려온 폭포가 오른쪽 옥류폭포(玉流瀑布)다. 양쪽에서 쏟아지기에 소리도 웅장하고 모양도 장관이다. 

쌍폭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쌍폭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옥류폭포 바로 위에 용추폭포(龍湫瀑布)가 있다. 용추에서 약 4km에 걸쳐 무릉계곡이 시작되기에 계곡의 최상단이다. 청옥산에서 시작된 물은 계곡을 내려오면서 절벽에 부딪혀 가며 굽이치다 이곳에 이르러 3단의 절벽에 폭포를 이루며 수직 낙하한다. 상단과 중단은 항아리 모양으로 되어있고, 하단은 둘레가 30m에 이르는 깊고 검은 웅덩이다. 

용추폭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용추폭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영험하고 기묘한 폭포 탓인지 폭포 주변이 온통 곳곳에 암각 된 글씨다. 그중 ‘용추(龍湫)’와 유려한 물결을 닮은 ‘별유천지(別有天地)’가 눈에 뜨인다. 지금에야 엄격하게 금하는 행동이지만 옛날엔 행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겼겠다. 

무릉계곡을 타고 하산을 시작했다. 격랑의 폭포수는 쌍폭을 지나 선녀탕에 이르러 얌전해지더니 바위를 둘러가며 멋진 계곡의 모습을 연출했다.

병풍바위와 장군바위, 하늘문과 관음폭포를 지나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鶴巢臺)에 도착했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 길은 베틀바위 산성길과 마천루 협곡길과 다르게 편하다. 계곡에 내려서 땀을 식히며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아졌다.

삼화사 수륙제((三和寺 水陸祭)

삼화사(三和寺)를 지나는데 담장이며 주변에 온통 좋은 글귀가 쓰인 리본을 매달아 놓았다. 담장에는 수륙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수륙제(水陸祭)란 물과 육지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불법을 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것으로 삼화사에 열리는 행사가 국가 중요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의식이다.

삼화사 천왕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삼화사 천왕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올해는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거행되는 모양이다. 아침에 일주문을 들어설 때, 일주문 중앙에 금란(禁亂)이란 빨간 글씨가 있어 궁금했는데, 수륙제가 열리니 정숙하란 의미인 것을 알게 되었다.

무릉반석(武陵磐石)

무릉반석(武陵磐石)은 천여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을 만큼 널따란 바위다. 오랜 세월 무수히 다녀간 시인 묵객은 곳곳에 흔적을 암각 글씨로 남겨놓았다. 이승휴가 흔적을 남겼고, 매월당도 흔적을 남겼다. 명멸한 그 많은 인물이 왜 이곳에 흔적을 남기고 암각을 했을까? 암각(巖刻)이 옛 선인들의 풍취이고, 멋과 유행이고, 과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릉반석.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무릉반석.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무릉반석 입구에 양사언이 썼다는 초서체 암각서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으로 이번 도보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신선들이 노니는 곳 무릉(武陵),
반석(磐石) 위로 물이 유유히 흐르니 무릉중대계곡(中臺溪谷),
세속의 탐욕을 버리고 수행 하기 좋은 곳 두타산(頭陀山)이 여기에 있네”

[도보 코스] 무릉계곡관리사무소 - 베틀바위 전망대 – 미륵바위 - 두타산성 갈림길- 거북바위 – 두타산성 – 십이폭포 상단- 석간수 –마천루 – 쌍폭포 –용추폭포 –선녀탕 – 관음폭포 – 학소대 – 삼화사 –용오름길-무릉반석 –무릉계곡관리사무소. 총연장  11km.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베틀바위 산성길 노선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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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탁 2021-08-01 15:19:08
잘 읽었습니다.

아니벌써 2021-07-27 09:44:12
생생하게 발끝에서 묻어나는 너무나도 멋진 글과 사진 감동입니다.

박종해 2021-07-25 14:33:01
좋은글과 그림 잘 보았습니다.
더운날씨에 화이팅이요

네바뀌돌아 그 자리 2021-07-25 12:24:31
역시 박선생님 글은 늘 감칠 맛나는 음식과 같습니다.
늘 읽으면서 머리속에 그려진 풍경을 상상하지요. 자세한 설명또한 배움의 글이기도 합니다.
매 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