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파산…글로벌 치킨게임에서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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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파산…글로벌 치킨게임에서 패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2.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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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역사 종언…경영실패하면 죽는다는 엄중한 진리 일깨워

지난해 9월 1일 김정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를 방문해 "지금은 회사의 회생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회생과 관련해서는 인수합병(M&A) 등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다"며 "법정관리는 회사의 생각과 의지가 중요한데, 회사가 청산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저희도 가능한 한 지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웅영 서울중앙지법 공보판사도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다른 회사에 매각하고 한진해운은 사실상 청산하는 게 아니냐는 보도는 성급한 판단"이라며 "지금으로써는 회생을 위해 회사 측과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 직후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가 회생절차를 밟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진해운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대주주와 채권은행이 포기한 국내 최대의 해운회사를 파산 법원 판사들이 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원에 의해 부채를 대폭 감면하고 자산을 정리하면 살아날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하지만 법원도 6개월만에 두 손을 들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정준영 수석부장판사)는 17일 한진해운에 파산 선고를 내렸다. 응급수술대에 오른지 6개월만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법원은 김진한 변호사를 파산 관재인으로 선임해 조만간 본격적인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이에[ 따라 한때 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로 자리매김했던 한진해운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그러면 법원마저 손을 들게 한 한진해운 파산은 누구의 책임인가. 경영진의 판단 착오였다.

해운산업의 성패는 10년 이상의 긴 경기사이클을 어떻게 판단하고 경영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해운업계엔 “3년을 벌어 10년을 까먹는다”는 얘기가 있다. 21세기의 문이 열리면서 중국경제가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하면서 세계교역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해상물동량이 팽창하고 운임이 오르면서 해운업계는 전세계에 바다에서 돈을 쓸어담았다. 해운회사들은 이 호황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했다. 우리나라의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도 마찬가지였다.

이 무렵 세계 유수의 머스크라인이 선대를 대형화하고 선복량을 증대했다. 선복량 경쟁에서 밀리면 패배한다는 우려가 업계를 지배했다. 세계적으로 선복량 경쟁이 벌어졌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해운 전문가가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도 많은 해운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그들은 매일 각국의 해운정보를 챙겼다. 하지만 그들은 네덜란드의 머스크를 따라하기에 바빴다.

2005~2007년 해운경기 호황기으로 낙관론에 빠져 있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외국 선사들과 비싼 용선료로 10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맺었다. 그 무렵 두 해운회사의 경영권은 공교롭게도 남편이 사망한후 경영 경험이 부족한 부인들이 이어받았다. 이들은 해운전문가라는 부하직원들이 선복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따랐다. 면밀하게 세계시장을 보눈 눈이 없었다.

두 회사는 2000년대 중반 해운업 호황기를 맞자 용선료가 더 올라갈 것으로 보고 해외 선주들과 비싼 가격에 장기 용선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의 투자회사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세계시장의 상황이 달라졌다. 그해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이 침체기로 접어들면서 운임이 급락세로 돌아서자 비싸게 계약한 장기 용선료는 경영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2008년 이후 불황의 사이클에 들어간 세계 해운업계엔 치킨게임이 벌어졌다. 국내 해운회사들은 자신들이 죽는줄도 모르면서 머스크를 따라하다가 이젠 생존의 게임에 들어갔다.

이런 와중에도 두 해운회사의 대주주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었다. 현대상선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2012년 1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을 앞세워 서울 남산 반얀트리호텔을 인수했다. 그 무렵 한진해운을 경영하던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은 한진해운의 부실이 눈덩이처럼 부풀고 있었지만 투자나 자금차입 안건에 도장만 찍었다. 2011년 한진해운은 8,2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그해에도 신조 컨테이너 확보 자금 차입, 컨테이너선 사선 확보 계획안, 벌크선 2척 신조 발주안이 결재됐다. 또 2011년 5월 캄사르막스급 4척, 3만5,000t급 1척, 5만9,000t급 1척 건조를 위한 차입 건, 6월 1만3,000 TEU급 컨테이너선 투자 건, 8월 4,600 TEU 컨테이너선 3척과 케이프 사이즈 벌크선 3척 건조자금 조달 건 등 다소 무리하게 여겨지는 투자 안건이 잇따라 결제를 받았다.

국내 두 선사는 치킨게임에서 졌다. 경영의 실패일수도 있고, 정부의 지원이 모자라서일수도 있다. 또는 채권단의 무리한 독촉 때문이라고 핑계댈수도 있다. 하지만 진 것만은 사실이다. 세계 시장을 보며 판단하는 눈이 부족했던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한진해운 법정관리와 관련해 “수조원의 정부 지원을 받는 외국 선사들과의 치킨게임에서 졌다”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물류대란 등 여러 문제가 있어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앞서 한진해운은 세계 제1위 선사인 머스크의 치킨게임에서 패배한 상황에 정부에 선을 벌렸다는 점에서 조 회장의 발언은 설득력이 약하다.

▲ /그래픽=김송현

 

정부가 부채비율을 일괄 적용하는 바람에 한진해운의 위기를 불렀다는 주장도 있다. IMF 외환 위기 시절인 1998년 3월 은행감독원은 구조조정의 하나로 국내 대기업에 400% 수준이던 부채비율을 1999년 말까지 200% 이하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당시 해운사들은 부채비율 200%를 맞추기 위해 선박 신규 구매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보유하고 있던 110여척의 배를 팔아야 했다. 워낙 급하게 팔다 보니 헐값 매각 논란까지 나왔다.

이후 2000년대 초반이 되자 중국발 물동량 급증으로 갑작스럽게 시장 호황기가 찾아왔다. 선박을 대거 팔아버린 해운사들은 영업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결국 고가의 비용을 들여 배를 빌려 쓸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호황기가 돌아왔어도 국내 해운사는 비싼 용선료를 지불하는 바람에 큰돈을 벌어들이지 못했고, 이어서 불황이 닥치자 호황기에 맺은 장기 용선 계약에 묶인 선박이 많아 거액의 용선료를 무는 처지가 되면서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도 일부 일리는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시절에 금리가 급등하는 바람에 해운회사들은 보유선박을 팔지 않을수 없었고, 호황기가 돌아왔을 때 선박을 보유하는 것보다 용선을 하는게 더 유리했을 수도 있다.

▲ /한진해운 홈페이지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이 이미 5년 전에 해운사 구조조정을 마친 외국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 침체 국면을 맞은 2008∼2009년 이후 세계 각국에서 자국 해운업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전개됐다. 이 시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해운업의 구조조정에 나선 나라들은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 유럽의 해운 강국들이다.

프랑스의 CMA CGM는 2009년 상반기에만 5억1,500만달러의 적자를 내고 9월 유동성 경색을 맞아 파산 위기에 몰렸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국부펀드를 동원해 CMA CGM에 1억5천만달러의 유동성을 지원했고, 15억 달러 규모의 은행 대출을 보증해줌으로써 위기를 벗어나도록 도왔다.

독일의 대표 해운사인 하팍로이드도 마찬가지로 위기를 맞았던 2009년 구조조정을 하면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다. 당시 하팍로이드는 인원 감축과 임금 삭감 외에도 128척 가운데 절반에 달하던 용선의 비중을 대폭 줄이는 등의 체질개선에 나섰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라인을 보유한 덴마크에서도 정부기관을 통한 지원이 이뤄졌다. 덴마크 수출신용기관인 EKF는 2009년 11월 은행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머스크라인에 26억 덴마크 크로네(약 4억6천만달러)의 융자를 제공했다.

중국은 정부가 컨트롤하는 상업은행들의 지원과 함께 해운선사의 대대적인 통·폐합을 진행했다.

각국 해운업계에서 구조조정을 벌이던 시기를 한국은 놓치고 5년이 지난 뒤에야 양대 선사가 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에서 뒷북을 쳤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채권은행이 뒤늦게라도 지원을 했으면 한진해운이 살아니지 않을까 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컨테이너선 업계는 60년 만에 최악의 침체기를 맞고 있고 향후 1~2년도 암울한 상황이다. 결국 법원은 한진해운의 파산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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