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과의 전쟁⑦…분당·일산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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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의 전쟁⑦…분당·일산 조성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2.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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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화국 비화> 노태우 “군 시절 눈여겨 본 명당” 선뜻 재가

“일산 지역은 내가 군에 있을 때 눈여겨 보아 두었던 곳이오. 박 장관의 의견대로 그 일대에 신도시를 건설하도록 합시다.”

1989년 4월 19일 노태우 대통령은 경기도 고양군 일산지역을 신도시 후보지로 선정하자는 박승 건설부 장관의 건의를 쾌히 받아들였다. 일산 지역은 노 대통령이 1979년 ‘12·12 사태’에 가담할 당시 사단장으로 재직했던 9시단(백마부대)의 주둔지였다. 노 대통령 스스로가 사단장 시절 명당자리로 보아온 곳인 만큼 일산 지역의 지형 지세를 잘 알고 있었다. 박 장관의 건의를 이의 없이 재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군부대 주둔지로, 대학생들의 야영지로나 이용되었던 황량한 들녘이 오늘날의 거대한 아파트촌으로 상전벽해의 대변신을 한 이면에는 노 대통령의 군 시절 향수가 숨어 있다. 물론 신도시로의 입지조건이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문희갑 경제수석을 정점으로 한 청와대 경제비서실이 분당·일산을 신도시 입지로 최종 결정하기까지는 숱한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극비의 군사적전을 수행하듯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하면서 일을 처리해 나갔다.

청와대 경제비서실에 설치된 주택건설기획단은 신도시 후보지 6곳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들어갔다. 안양 평촌지구와 군포 산본지구는 이미 대규모 택지개발에 착수한 곳이고, 송탄지구는 서울에서 너무 멀었다.

의정부 일대 주내지구는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고, 고양 원당은 서울 강남의 부유층을 유인하기엔 지리적 조건이 불리했다. 그래서 남단녹지로 불리던 분당밖에 신도시를 건설할 마땅한 땅이 없었다.

청와대 주택건설기획단은 우선 분당을 신도시 입지로 결정했다. 서울 강남에서 가까워 지리적 여건이 좋았던 이 지역은 토지개발공사와 주택공사가 1980년대 초부터 비밀리에 조사를 벌여 택지개발 예정지로 점찍어 놓았던 곳이다. 조선조의 역술가 토정 이지함이 문중의 묏자리로 정해놓을 만큼 명당자리였다. (지금도 분당 중앙공원에 토정을 배출한 한산 이씨 봉화공파 묘역이 있다.) 게다가 분당지역은 1960년대 화신백화점의 박흥식 회장이 남단녹지에 도시를 만들자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했을 정도로 땅을 볼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 명당자리는 금기의 땅이었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은 “자연녹지인 분당 일대는 그린벨트에 준해 관리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 이후 수차 택지개발지구로 검토해왔으나, 누구 하나 감히 개밝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채 보존돼 왔다.

아무리 금단의 땅이라 해도 택지공급이 워낙 시급한 때인지라 기획단은 89년 4월 4일 토지개발공사의 김창근 기획본부장을 불러 분당지구에 대한 택지개발사업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김 본부장은 지시를 받은지 불과 1주일 만에 분당지역 개발방안을 만들었고, 4월 12일 기획단은 이 안을 정리하여 문 수석에게 보고했다.

문 수석은 보고를 받은 뒤 노 대통령에게 분당지역에 대한 자연녹지지구를 해제할 것을 건의했고, 노 대통령도 이에 공감했다.

다음날인 4월 13일 문 수석은 홍철 비서관과 함께 군용 헬기를 빌려 분당 상공을 돌며 현지 답사를 했다. 보안을 유지하느라 국방부에는 다른 핑계를 대며 헬기를 빌렸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4월 15일 박승 건설부 장관이 분당 현지를 답사하는 동안 서울 여의도 국토개발연구원에서는 홍철 비서관과 김창근 토지개발공사 기획본부장등 23명의 작업팀이 모여 분당 개발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1차 작업을 시작했고, 이틀후 성남비행장에 대한 소음조사를 마쳤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정작 주무관청인 건설부의 실무진들이 선뜻 따라오지 않았다. 박승 장관은 경제수석 시절 분당개발방안을 검토했던 만큼 문 수석과 뜻을 같이 했으나 교수출신으로 건설부에는 뿌리가 없었다. 건설부 관리들 사이에는 남단녹지를 해제해서는 안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박 장관은 토지공개념 입법을 추진하면서 문 수석과의 호흡이 맞는 이규황 토지국장과 함께 신도시 건설을 밀고 나갔다.

 

강남북 균형 개발 위해 일산신도시 건의

청와대 경제비서실에서 분당에 대한 신도시 건설 입지선정이 논의될 무렵, 박승 건설부 장관은 강북에도 신도시를 만들자고 제의했다.

“분당을 개발하면 수도권 개발이 강남지역으로 편중됩니다. 강남북 균형개발과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강북에도 신도시 건설을 검토해 봅시다. 남북통일에 대비, 평화시를 건설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박 장관은 강북 신도시건설 구상을 노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노 대통령은 “알아서 하시오”라며 박 장관에게 일임했다.

박 장관은 강북 신도시건설을 위한 입지 물색을 주택공사에 요구했다. 주택공사가 제시한 후보지는 일산과 양주군 주내면 일대(로열 컨트리클럽 부근) 600만평의 야산등 두곳이었다.

4월 19일 박승 장관은 두 곳에 대한 현지 답사를 마치고 노 대통령에게 일산지역 신도시계획안을 보고해 재가를 받았다. 박 장관이 일산을 쉽게 결정한 것은 양주 주내지구의 입지가 워낙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주내지구에 신도시를 건설하려면 의정부를 관통하는 전철을 건설해야 하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서울~의정부간 교통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반면에 일산은 한강을 끼고 있고, 남북 통일에 대비해 북한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노 대통령이 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일산에 대한 일가견이 있었던 점도 일산에 대한 입지선정을 한결 쉽게 했지만, 박 장관은 자택이 일산에서 가까운 서울 은평구 역촌동인 만큼 교수 시절부터 부인과 드라이브하면서 자주 돌아본 곳이다.

일산에 신도시를 건설하는데도 건설부 내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다. 박승 당시 건설부 장관의 의견을 들어보자.

“당시 건설부 내에 2개 신도시를 건설하는데 대해 일부 반대가 있었어요. 목동지구 100만평 개발에도 미분양으로 고생했는데 두 개 신도시에서 1,000만평을 개발하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주택이 절대 부족하다고 우겨 넘어갔습니다.”

신도시 입지선정의 책임을 맡은 홍철 비서관은 청와대 경제비서실의 다른 방에서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비밀을 철저히 지켰고, 외부인들에게는 ‘잠시 출타중’이라고 따돌렸다.

4월 24일 청와대에서는 건설·국방·농림수산부와 토지개발공사·성남시의 관계자들이 모여 관계기관회의를 열었고 이틀후 신도시건설계획에 대한 최종 조정작업을 실시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주무부처인 건설부는 장관이 신도시 건설을 밀고나가는데도 실무자들은 “분당 땅을 수용할 경우 정권 자체가 엄청난 위험을 받게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왔다. 게다가 이상훈 국방부장관은 “분당에 설치된 미군의 이른바 ‘스리세븐(777) 통신시설’을 이전하려면 미군측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한미 협상을 하고, 미 의회 동의까지 얻으려면 5~6년은 걸릴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당시 표본조사로는 남단녹지에서 1만평 이상의 임야 소유자중 현지인이 28%, 외지인이 72%의 비율로 외지인이 압도적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외지인의 토지를 강제수용할 경우 강력한 재산권 저항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건설부 실무자들의 주장이었다.

또 국방부는 미군 통신시설 이전에는 5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며 미군과의 협조가 끝날 때까지 분당을 개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일산도 국방의 관점에서는 전방에 해당하는데, 휴전선 가까운 곳에 대규모 주거시설을 건설해서 되겠느냐며 걸고 넘ㅇ더졌다.

이상훈 국방장관은 노 대통령에게 국방부의 입장을 개진하면서 반대입장을 표명했으나 이미 대세게 기울어진 뒤였다.

건설부는 경제부처이고, 장관이 신도시건설에 적극적인 만큼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국방부의 고집은 여간한 게 아니었다. 희의 때마다 국방부에 반대에 부딪치자 문 수석은 “군은 국가안보를 지켜야 한다. 주택 때문에 나라가 뒤집힐 판이니, 지금 상황에서 주택 문제보다 중요한 국가안보가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 국방부가 양해하라”고 버텼다.

결국 국방부의 양보와 미군의 동의로 분당의 통신시설 문제는 해결됐으나, 이번에는 일산지역의 군시설이 또다시 문제로 되었다. 일산지역은 이른바 ‘찰리라인’이라는 군사전략 경계선이 통과하고 거기에는 육군의 대공포와 벙커 시설이 설치돼 있는 매우 중요한 군사작전지역이므로 양보할수 없다는 것이었다.

화가 난 문 수석은 이종구 육군참모총장을 찾아가 주택문제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등 끈질기게 설득, 군의 동의를 받아냈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노태우 대통령은 4월 27일 청와대에서 이례적으로 주택관련 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분당·일산지역에 대한 신도시건설 계획을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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