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태백의 등을 걷다...'두문동재'에서 '피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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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태백의 등을 걷다...'두문동재'에서 '피재'까지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09 23: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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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칼럼니스트.
박성기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꼬불꼬불 안개 낀 산허리 굴곡 길을 가파르게 올랐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비라도 쏟아질 것 같았으나 한두 방울 떨어지다가 멈추었다.

우의를 챙겼지만 많이 내릴 비는 아닌 듯 보인다. 차는 좌우로 곡선을 그리며 한참을 올라 고갯마루에 이르러 우뚝 솟은 탑비(塔碑) 앞에 멈춰섰다.

이곳은 정선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끝 도보를 시작할 두문동재(杜門洞峙,1268m)다.

하늘에 맞닿을 듯한 높은 고개 10곳 중 8곳이 강원도에 있는데, 두문동재는 함백산 만항재(1330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다.

다르게 싸리재라고도 부른다. 정선사람들은 고개 너머에 태백에 싸리 마을이 있다고 싸리재라 불렀고, 태백사람들은 고개 너머에 두문동이 있다 해서 두문동재라 했다. 

두문동재 기념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두문동재 기념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두문동(杜門洞)은 본디 북한 땅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기슭에 있던 옛 지명이다. 이곳에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처럼 조선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고려 유신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들 중 일부가 삼척으로 유배 간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을 보러 가다 왕이 죽은 소식을 듣고, 삼척에서 태백으로 넘어오는 건의령(巾衣岺)에서 관모와 관복을 벗고, 이곳으로 와 두문동이라 이름 짓고 정착하여, 지금의 두문동재란 이름이 생긴 연유가 되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분주령 야생화를 탐방하기 위해 탐방지원센타에는 예약한 사람들이 손목띠를 받느라 분주하다.

내가 걷는 곳은 이들과는 달리, 대덕산 분주령 방향이 아닌 금대봉 방향이라 예약이 필요 없어서 곧바로 들머리에 들어섰다.

비 온 뒤라 공기는 맑고 신선해서 기분이 상쾌하다. 촉촉한 땅은 생명의 기운이 돋는 듯 녹음이 한층 짙었다. 지리산에서부터 내달린 백두대간은 만항재와 함백산을 지나 두문동재에 이르렀고, 여기에서 숨을 고르고는 진부령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필자는 대간을 따라 피재까지 동행을 시작했다.

물기를 머금은 철 지난 ‘나비나물’, ‘벌깨덩굴’, ‘산꿩의 다리’, ‘졸방제비꽃’ 등 얼마 남지 않은 봄철 야생화가 고개를 내밀었다가 이따금 발에 채이며 발등을 적신다. 

두문동재로 들어서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두문동재로 들어서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700여 미터를 걸어 금대봉과 분주령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같이 출발했던 사람들이 왼쪽 분주령으로 떠나자, 오른쪽으로 이어진 금대봉 가는 길은 내 발걸음 소리만이 고요를 깨뜨린다. 간간이 마주 오는 산객(山客)에 인사를 건넨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이어진 빼곡한 원시림을 따라 500여 미터를 더 지나 금대봉(金臺峰/1,418m) 정상에 도착했다. 출발을 고도 1268m에서 한 것이라, 1418m의 고도를 느끼지 못한다. 

두문동재에서 금대봉으로 가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두문동재에서 금대봉으로 가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금대봉은 ‘신들이 사는 땅’이란 ‘검대’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또한 정암사를 창건할 때 세운 금탑이라고도 하니, 이름을 새롭게 되새겨본다. 

두문동재에서 완만하게 금대봉까지 이어지는 1.2km의 능선을 '불바래기 또는 불바라기 능선'이라 부른다. 예전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기 위해 산 아래에서 불을 놓고 이 능선에서 맞불을 놓아 불을 바라보며 진화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인적조차 없는 깊은 산골에 화전을 일구며 살던 옛 선인의 고단한 모습이 차올라 한동안 자리에 머물렀다.

이 일대가 봄부터 가을까지 각양각색의 들꽃이 피고 지는 야생화 군락지로 꽃의 바다를 이룬다고 금대화해(金臺花海)라 하는데, 늦은 봄이라 꽃의 바다를 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금대봉을 출발해 쑤아밭령으로 향한다. 길은 완만하게 편안한 흙길이다. 걷는 데는 부드러운 흙이 최고다.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고 시큰하던 무릎도 시원하기만 하다. 구름에 가려진 해는 선선한 날씨를 유지해주고 있다. 

이따금 멧돼지가 거칠게 헤쳐놓은 땅구덩이에 흐트러진 나무뿌리가 야생의 생생함을 경험한다. 

갑자기 길 주변이 부산해진다. 너덧 마리의 새들이 푸드득 거리며 걷는 자의 발걸음을 막아선다. 주위를 맴도는 것이 근처에 새끼를 보호하려는 모양이다. 녀석들을 놀래지 않으려 더 조심해서 걷는다. 

나무는 대화를 나누듯 바람에 스삭거린다. 뿌리가 약해서 뿌리째 넘어진 나무며, 제 생명을 마치고 거름이 되려 풍화되어가는 썩은 나무들.... 그대로의 자연 모습이다. 

금대봉에서 2.9km를 걸어 쑤아밭령(수아밭령)에 도착했다. 

한강 최상류의 창죽마을과 낙동강 최상류의 화전마을을 잇는 백두대간 위에 있는 고개로 창죽마을에서 용연동굴이 있는 화전(禾田)마을로 넘는 고개라 해서 쑤아밭령이라 불렀고, 반대로 화전마을에서는 검룡소가 있는 창죽마을로 가는 고개라 해서 창죽령이라 했다.

쑤아밭령 주변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쑤아밭령 주변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이곳의 이름도 두문동재와 싸리재처럼 넘어가는 마을의 이름을 딴 것이라 재미있다. 하나로 통일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서로 교통하는 것이 지금과 달리 힘들어서 두 개로 다르게 불렀을 것이다.

쑤아밭령에서 비단봉으로 향했다. 0.9km의 짧은 거리지만 지금까지와 다르게 오르는 게 조금 가파르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고, 이후 비단봉까지 가팔라서 숨이 가슴에 차오른다.

비단봉에서 바라본 금대봉과 함백산.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비단봉에서 바라본 금대봉과 함백산.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거친 숨을 쉬며 정상에 올라서자 금대봉과 함백산, 태백산과 겹겹의 산들이 첩첩이 병풍을 두른 듯 눈앞에 펼쳐진다. 비단봉이란 이름은 아마도 가을에 단풍이 울긋불긋 피어나 마치 비단을 펼쳐놓은 듯한 모습에서 이름이 유래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비단봉에서 바라본 하늘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이다. 앞에 놓인 첩첩산중역시 구름과 태양이 만들어낸 다양한 색감에 따라 장관을 이룬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비단봉에서 바라본 하늘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이다. 앞에 놓인 첩첩산중역시 구름과 태양이 만들어낸 다양한 색감에 따라 장관을 이룬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비단봉을 지나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 풍차가 있는 고랭지 배추밭에 이르자 갑자기 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일순간 모든 것들이 구름에 가려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고랭지 배추밭.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고랭지 배추밭.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광활한 고랭지 배추밭은 언뜻언뜻 구름이 스쳐 가면서 새파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직 영글지 않은 심은지 얼마 되지 않은 배추가 모가지를 살짝 내밀고 있다. 

구름을 바람의 언덕을 지나며 몇 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다. 천천히 길을 잃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매봉산으로 향했다. 

매봉산(梅峯山/1303m) 자락에 들면서 구름이 조금씩 걷혔다. 매봉산은 낙동강과 남한강의 근원이 되는 산으로 하늘 봉우리라는 천의봉으로도 불린다. 태백의 황지에서 바라보면 북쪽에 가장 높이 우뚝 솟은 산으로 매처럼 보여 매봉산이다. 

정상은 특이할 게 없이 작은 정상석 하나만이 반겨주었다. 구름이 아래쪽에는 서서히 걷히고 있지만 정상 쪽에는 여전히 머물러 있어 시야를 가린다. 
 

매봉산 하산길에 마주한 숲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매봉산 하산길에 마주한 숲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매봉산을 내려오니 다시 구름 걷힌 고랭지 배추밭이 시야의 끝까지 파란 바다처럼 보인다. 길을 뒤돌아보면 아직도 구름은 바람의 언덕 위와 매봉산을 둘러쌓고 있었다.

산능선 고랭지 밭두럭을 따라 내려가다가 구봉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삼대강 팻말과 함께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갈림길에 섰다. 이곳이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의 시작이 되는 삼대강 꼭짓점이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날이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피재로 가는길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한 초롱꽃.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피재로 가는길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한 초롱꽃.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음이 급하다. 발걸음을 재촉해 서둘러 피재(避岾/920m)로 향했다. 

피재는 삼척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황지(黃池)로 넘어온 고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오십천과 낙동강, 한강의 분기점이라서 삼수령(三水嶺)이라고도 불리는 고개다. 

간간히 떨어지던 빗방울은 피재에 이르러서는 거짓말처럼 다시 잠잠해졌다. 빗방울도 이름 때문에 이곳을 피해가는가 하며 피식 웃었다. 

트레킹 경로 두문동재~금대봉~쑤아밭령~비단봉~바람의 언덕~매봉산~삼대강 꼭지점~피재(삼수령) 총 10.5km.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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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2021-07-10 00:26:03
오늘도 가보지 않은 그 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네바꾸반 2021-07-10 08:32:44
정말 감칠맛이 납니다. 내 웬만하면 댓글같은 거 안다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함께 걷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정말 잘 읽었습니다. 박성기컬럼니스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