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한국 사회의 '필요악'이 된 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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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한국 사회의 '필요악'이 된 능력주의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1.06.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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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30대 중반의 이준석이 야당의 대표가 되었다. 그가 개혁의 신호탄으로 내놓은 첫 소식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인사 단행이었다.

인맥에 의해 공천을 받고 자금으로 연결되는 거미줄 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그의 다짐. 그리고 여기서 소외되었지만 실력을 갖춘 이들을 선발해서 중용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비판에 앞서 고찰할 부분이 있다. 

능력주의의 상징은 미국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기업에 퍼진 성과주의도 사실은 능력주의(Meritocracy)와 동일한 의미의 키워드다.

미국에서는 능력주의가 너무 과도하게 퍼져 이에 대한 우려를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했다면 한국에서는 능력주의가 너무 배제되어 있어 능력주의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는 점이 대비된다. 

능력주의는 한계가 명확하다

능력주의의 장점과 단점이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실제 다수의 연구에서도 가장 실력 있는 사람들(시험 성적 또는 면접 점수)로 정원을 채운다고 해서 해당 조직이 성과를 창출한다는 연구는 거의 없다. 수많은 심리학자, 경영학자가 연구를 진행했지만 능력주의 기반 선발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 일반적 결론이다.

스콧페이지 미시건대 교수는 능력주의를 거부하는 석학 중 한 명이다. 그는 실제로 시험 성적 또는 점수 순으로 선발했을 때와 시험 성적 이외 다양한 기준을 고려하여 인재를 선발했을 때 실제 조직의 성과는 후자에서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을 실증 연구로 입증해왔다. 그가 능력주의 대신 인재 선발의 다양성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도 능력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 초창기까지 대학은 그 어떤 기준도 고려하지 않고 전국 모든 수험생을 하나의 시험으로 줄 세워 선발해왔다. 당시 전국 80만명이 넘는 수험생들은 해마다 동일한 날, 동일한 시간에 같은 시험 문제를 풀었고 더 많이 문제를 맞춘 이들이 기회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입학성적에 의한 서열화는 이른바 엘리트주의, 학력주의라는 사회의 고질병으로 확대되었고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이 거론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교정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 사회적 양극화와 인식의 격차까지 대폭 확대시킨 능력주의는 점차 입시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소리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능력주의의 부각과 함께 할당제의 폐지를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국내에서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오른 삼성전자는 그룹 차원에서 2012년부터 줄곧 지방대 출신 30% 채용, 저소득층 출신 지원자 5% 채용 등 할당제 채용을 도입해왔다. 성과주의의 대명사라고 여겨진 삼성에서도 100% 능력주의에 기반해 인력을 선발하진 않는다. 

다양한 연구에서도 능력주의의 효과가 높지 않고 실제 기업 현장에서도 능력주의보다 인재의 다양성을 고려해서 선발하는 기업들이 많다면 정치경제를 이끄는 정당 지도자와 기업의 경영자들은 능력주의의 확장을 심사 숙고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선진국의 대학과 기업에서는 능력주의보다 인재의 다양성을 우선해서 선발하고 있다. 

30대 중반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당선은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능력주의는 왜 한국에서 필요악이 되었는가 

능력주의의 한계가 이미 연구와 현장에서 이처럼 다양하게 증명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다시 부각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능력주의가 가장 공정하다는 착각을 하지 말라고 미국 사회에 경고를 내리고 있지만 오히려 한국에서는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능력주의가 다시 재점화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공정한 경쟁은 대학에서의 입시 경쟁이었다. 아무리 아버지, 어머니가 권력과 돈을 갖고 있어도 공부 못하는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국내 입시를 회피하기 위해 과거 부잣집 자제들 사이에서 유학이 유행처럼 번졌다는 건 학력고사와 수능 초기 세대 많은 수험생들이 익히 들었던 뉴스다. 

문제는 입시 전형이 점차 다양화되면서 국내에서 공정한 경쟁의 최후 보루였던 대학에서도 해마다 입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우수한 학력을 지닌 사람들은 학연을 중심으로, 지역주의를 고집하는 이들은 지연을 중심으로, 권위와 혈통을 내세우는 이들은 혈연을 중심으로 사회체계를 재정립하다 보니 능력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능력주의는 구조적 불평등을 바로 잡지는 못한다. 출신 지역과 배경이 다른 모든 이들이 동일한 출발선에 서지 못하는데 능력만을 토대로 평가, 선발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다만,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객관적이고 투명한 또 다른 기준이 있을 때 이를 토대로 공정하게 운영된다는 원칙이 지켜질 때 타당하다.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선발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축적한 이들이 선발되는지 의문이다. 선거 때마다 우수인재라고 영입된 이들은 언론이나 방송에서 인지도를 쌓아 온 인물이 대부분이며 정당에서 역량을 착실히 쌓고 가치관을 뚜렷하게 정립한 예비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투명한 선발 기준과 운영 자체가 부족하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2030 세대가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을 요구했다면 이는 능력주의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학연, 혈연, 지연 등 불투명한 기준으로 사람을 선발하고 조직과 세상을 운영한 건 아닌지 오히려 반성해야 한다. 시험 및 스펙에 중독되거나 능력주의에 기반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이들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한계가 명확한데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시 능력주의가 소환되는 이 구조적 불공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학력, 나이, 성별 등을 모두 가린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취준생들이 열광한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능력주의가 만능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투명한 기준이 기업과 사회를 움직인다면 능력주의는 필요악이지만 대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를 우리 사회에서 퇴출시키는 방법은 단 하나다. 능력 이외 여러 기준을 고려하더라도 이를 투명하게 운영하면 된다. 불투명과 불공정이 능력주의를 소환했다면 투명과 공정으로 다시 능력주의를 끌어내야 한다. 능력주의 찬반이 아닌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동국대 재직 중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9월부터는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로 일하고 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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