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철쭉을 따라 소백산 분홍의 세계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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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철쭉을 따라 소백산 분홍의 세계를 걷다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11 15: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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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첫주, 소백산 연화봉과 비로봉에서 만난 분홍 물결
5월부터 시작한 철쭉 도보 여행...
황매산-바래봉 지나 소백산에서 마무리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헌화가(獻花歌).

삼국유사에 전하는 헌화가(獻花歌)다. 수로부인이 높은 절벽 위에 아름답게 피어난 철쭉을 보고 꺾어줄 이를 찾자, 소 끌고 지나가던 노옹(老翁)이 꽃을 꺾어주겠노라고 읊었다.

홀로 피어서도 아름답지만, 붉게 무리 지어 피어있으면 더욱 아름다운 꽃이 철쭉이다.

철쭉의 한자 표기는 척촉(躑躅)이다. 척(躑)과 촉(躅) 글자 모두 머뭇거린다는 뜻의 한자다. 뜻풀이가 꽃이 너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치지 못함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고전에 등장하고, 수로부인처럼 아름다운 여인에 대유(代喩) 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철쭉을 만끽하기 위해 5월 초 황매산과 지리산 바래봉을 걸었다. 

지난 5월 소백산에서 만난 철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지난 5월 소백산에서 만난 철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황매산에서 꿈결처럼 아른아른 수만 평의 산에 가득한 분홍의 세상은, 생전 이렇게 많은 꽃을 처음 봤다는 도반의 말처럼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길 따라 가도가도 여전한 분홍의 세상을 밟고서는 도저히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황매산 철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황매산 철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한 주를 쉬고는 지리산 바래봉을 향했다. 정령치에서 바래봉 철쭉을 만나러 십수 개의 봉우리를 힘들게 넘었다. 바래봉에 이르는 동안 철쭉은 보이지 않고 맵찬 바람에도 구석구석 '얼레지꽃'이 걷는 자를 반겨준다. 냉해로 피지 않은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고 걷는데 마치 붉은 안개처럼 바래봉이 보였다.

지금도 바래봉엔 철쭉이 가득하나 주변에 잡목이 많이 자라고, 산죽이 철쭉을 침범하고 있었다. 목장에서 키우던 양들이 독 있는 철쭉은 먹지 못하고 잡목과 풀을 뜯어 먹어서 철쭉만 홀로 가득했으나 지금은 자연스럽게 생태계를 조성하고 양이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지리산 바래봉 앞 철쭉이 가득하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지리산 바래봉 앞 철쭉이 가득하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철쭉을 따라 소백산 끝 비로봉에서 마지막 봄과 함께 찬란한 철쭉의 끝을 보기 위해서 봄의 끝자락에 접어드는 6월 첫 주 붉게 물든 철쭉을 기대하며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시를 아우르는 소백산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안개구름이 바람에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했다. 오늘은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사라지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죽령휴게소에서 어의곡까지 차량을 이동시켜주는 서비스(태백 내 차를 부탁해)를 신청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백두대간 제2 연화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백두대간 제2 연화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임도를 따라 지루하게 7킬로를 걸어 제2연화봉(蓮花峯,1357m)에 도착했다. 백두대간 표지석 뒤로 산 정상 둥그런 사탑 모양의 대피소를 옆으로 두고 연화봉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산괴불주머니’와 ‘큰앵초’, '감자난'이 산길 길섶에 피어나 걷는 자의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동행한 꽃박사 지인은 내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었다. 제2연화봉부터는 길이 능선으로 이어져 힘들지가 않았다. 20대 후반의 청년들 넷이서 사이좋게 걷고 있다.

물어보니 두 명이 한 달째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백두대간을 걷고 있고 다른친구 두 명은 이 구간을 응원차 같이 걷는다고 한다. 가끔 대간을 걷는 사람을 보는데, 이렇게 젊은 청년들을 보면서 나의 화양연화가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소백산 천문대를 지나 연화봉(1377m)에 도착했다. 죽령에서 출발하여 8.8km 지점이다. 여기가 희방사와 비로봉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하던 사람들이 연화봉에 이르자 벌써 가득하다. 연화봉 표지석을 돌아 제1연화봉을 향했다. 숲은 말할 수 없이 청량한 기운으로 가득하고 숲길은 흙길로 편안해서 피곤한 발목을 부드럽게 씻어준다. 

싱그러운 바람과 안개에 쌓인 차가운 공기는 곧 안개가 걷히며 햇볕이 내리기 시작하자 따뜻해진다. 1300m가 넘는 능선길 숲 사이로 내리는 볕이 살갗을 간지럽힌다. 숲에 가득한 청량한 기운을 들숨을 머금어 날숨에 내뱉는다. 목이 허브향을 들이키듯 시원하다. 

길 사이로 ‘벌깨덩굴’은 고개를 내밀고서는 길을 안내한다. 고놈 참 얄궂다. 길을 안내해주는 척하며 발걸음을 잡는다. ‘민들레’, ‘애기나리’, ‘붉은병꽃나무’가 눈길을 사로잡아 철쭉을 보러왔다가 이 녀석들에 빠져 자꾸 길을 해찰한다. 

제 1연화봉을 눈앞에 두고 걸어가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제 1연화봉을 눈앞에 두고 걸어가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제1연화봉(1395m)이 눈앞에 다가섰다. 소백산 능선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나무계단을 올라 연하봉을 넘어가자 멀리 비로봉이 바로 눈앞으로 보이고, 어의곡삼거리 방향으로 소백산 민배기재 허리가 부드럽게 누워있다.

제1연화봉을 넘자 철쭉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냉해 탓인지 꽃이 풍성하지 않고 부실하다. 여기서 비로봉까지는 3km 구간이다. 멀리 바라보는 비로봉까지 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막힘이 없이 아름다운 곡선이다. 산세가 부드럽고 성사납지 않다. 높낮이도 없어서 누구도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연화봉 인근 숲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연화봉 인근 숲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천동삼거리(1390m)다. 천동탐방안내소와 비로봉으로 가는 삼거리다. 제1연화봉에서 천동삼거리까지 걷는 동안 제대로 핀 철쭉을 볼 수 없었고, 비로봉 가는 방향도 마찬가지였다.

소백산 능선에서 만난 국립공원관리원에게 물으니 해걸이를 한다고 그랬다. 기대하며 열심히 올랐는데 아쉽다. 내년에 풍성한 철쭉을 보러 다시 와야할 모양이다. 그래도 연분홍으로 피어오른 꽃이 섭섭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황매산에서 보았던 진홍에 가까운 분홍의 철쭉은 소백산에 와서는 아주 연한 색이어서 또 다른 풍취를 주었다. 

비로봉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른다. 목책 밖으로 잠깐이라도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가지 말라는 관리원의 성화가 빗발친다. 

등을 타고 넘는 바람은 풀잎을 비로봉을 향해 자꾸 밀어 올렸다. 들풀 사이로 외로이 서 있는 ‘쥐오줌풀’은 불어오는 바람에도 꽃대가 가늘어 바람에 꺾일 듯싶었지만 꼿꼿하게 꺾이지 않았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소백산 비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毗盧峯)(1439.5m)에 도착했다. 비로봉은 부처님의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비로자나불의 염원을 간직했다. 소백산에 온 사람들이 비로봉을 목표로 해서 온다. 소백산을 오르면서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비로봉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고자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의곡삼거리로 방향을 틀었다. 

어의곡삼거리와 비로봉 사이에는 민배기재가 있다. 민배기재는 경상북도 영주와 충청북도 단양을 잇는 고개로, 옛날 순흥부에서 한양으로 넘어가던 중요한 곳이다.

민배기재에서 바라본 국망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민배기재에서 바라본 국망봉.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민배기재를 지나는 동안 ‘두루미꽃’과  ‘풀솜대‘ 등 야생화가 배웅을 해주고 있어 발걸음 떼기가 아쉬웠다. 벌써 등산을 시작한 지 8시간이 넘어갔다. 꽃구경에 해찰하며 가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어의곡삼거리에서 어의곡으로 내려오는 동안 초반은 길이 폭신하고 좋았으나 계곡으로 접어들면서 돌길이어서 힘이 들었다. 반대로 오르는 길이었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장거리를 걷다 보니 어의곡에 들어서며 다리가 아프다. 

점점 어의곡탐방소에 가까워 지면서 계곡의 물살이 세지고 소리도 요란하다. 계곡에 발도 담그고 쉬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죽령에서 어의곡까지 18.5km를 걸었고 9시간 반이 넘게 시간이 걸렸다.

5월1일 황매산에서 시작하여, 5월5일 바래봉을 지나 6월 7일 소백산까지 철쭉을 따라 걸었다. 황매산에 봤던 철쭉의 물결이 가장 화려했고, 지리산 바래봉을 지나 소백에 와서는 해걸이를 하는 바람에 화려한 철쭉을 보지 못했지만, 연분홍의 철쭉을 만났다. 덤으로 생각지 않았던 소백산 야생화를 볼 수 있어 아주 귀한 시간이었다.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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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꾸돌고 반바뀌 2021-06-11 20:39:09
잘읽었습니다.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내용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