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부터 아워홈까지…공식 된 ‘불공정·갑질=경영권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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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부터 아워홈까지…공식 된 ‘불공정·갑질=경영권 박탈’
  • 김리현 기자
  • 승인 2021.06.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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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새 회사 매각·창업주 사퇴·책임자 경질 등
공정·갑질·차별, MZ세대에 제일 중요한 이슈
온라인 커뮤니티 통한 공론화 과정 활발
전문가 “감시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남양유업은 숱한 논란을 양산한 끝에 57년만에 대주주가 교체됐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리현 기자] 남양유업부터 GS리테일, 무신사, 아워홈 등 근 한 달 새 유통업계에 CEO 사퇴 칼바람이 불고 있다. ‘윤리의식 부재’, ‘젠더 이슈’ 등 각종 문제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기업들의 대표가 사태를 책임지고 경영권에서 물러나는 것. 

그동안 유통가 리스크로 인해 기업의 신뢰도가 추락하거나 특정 제품의 판매율이 저조해지는 등의 사례는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들어 ‘소비권력’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 1981~2000년대생)를 주축으로 한 ‘기업 등돌리기’는 더욱 강력해지는 모양새다. 

남양유업·GS25·무신사, 한달 새 잇달아 CEO 사퇴

남양유업은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해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 모두가 가업을 접게 된 대표적 기업이다. 지난달 28일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과 부인 이운경씨, 손자 홍승의씨가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3.08%가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팔렸다. 

남양유업은 한때 국내 유가공업계 1위 기업이었지만 그간 대리점 갑질 논란, 사내 성차별 논란, 경쟁업체 비방글 게시, 장남의 횡령 의혹까지 숱한 문제를 일으켰다. 특히 올해 3월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무리한 마케팅을 펼쳤다. 부정 이슈들에 잔뜩 뿔이 난 소비자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불매운동’을 시작했고, 결국 남양유업의 57년 역사는 막을 내렸다. 

GS25와 무신사는 ‘젠더 이슈’로 지금까지 몸살을 앓고 있다. GS25는 지난 달 1일 캠핑용 식품 판매와 관련된 홍보용 포스터를 소셜미디어 등에 공개했고, 포스터에는 구워진 소시지를 집으려는 형태의 손 모양이 담겼다. 일부 남성들은 해당 손가락 모양이 여성 중심 커뮤니티 메갈리아 등에서 한국 남성의 성기를 비하할 때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엄지와 검지로 길이를 재는 듯한 해당 이미지는 한국 남성 성기 길이가 작다는 ‘소추(작은 성기)’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GS25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거듭 해명했으나, 결국 해당 포스터를 제작한 디자이너와 마케팅 팀장은 징계성 인사 조치를 받았다. 오너는 아니지만 조윤성 GS리테일 사장 역시 편의점사업부장 겸직이 해제됐다. 

조만호 무신사 전 대표. 사진제공=무신사
조만호 무신사 전 대표. 사진제공=무신사

무신사도 마찬가지다. 무신사는 지난 3월 여성 회원을 대상으로 할인쿠폰을 발행해 남성 회원들로부터 남녀차별이라고 항의를 받았다. 당시 무신사는 여성 상품에만 적용되는 할인쿠폰이라고 설명했으나 남성 상품에도 해당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 창업자인 조만호 전 무신사 대표가 나서서 사과했다. 

하지만 최근 무신사의 이벤트 홍보 이미지에 등장한 손가락 모양이 ‘남성 혐오’ 의미를 담았다는 논란이 일며 일부 남성들은 ‘무신사=남혐대표기업’으로 낙인찍었다. 결국 조 전 대표는 “이번 일은 회복이 어려워 보이는 큰 상처를 남겼다”며 대표 자리를 내려놓았다. 

식품업체 아워홈 역시 최근 신임 대표이사가 교체됐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장남 구본성 전 대표이사(부회장)이 지난 3일 보복 운전으로 상대 차량을 파손하고 따라온 운전자를 차로 친 혐의로 전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일반인이었다면 살인미수 감이다"며 분노했다. 

동생 구미현·명진·지은 세 자매는 다음날인 4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구 전 대표는 해임 결정을 받아들었으며, 신임 대표이사로 구지은 전 캘리스코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사과’론 안 통한다…오너 물러나는 이유 

유통기업의 리스크 관리 방식이 CEO가 물러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CEO가 경질되는 일은 드물었다. 논란이 잠잠해질 때까지 자숙 기간을 가진 뒤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MZ세대가 유통업계의 소비주축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은 활발한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집단적으로 의견을 공유하고 한 방향으로 일치시키는 특성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슈가 한번 터지면 과거와 같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끌올(끌어 올린다)’, ‘박제’ 등의 행위를 통해 게시글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기 때문에 기업의 논란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실정이다. 남양유업, GS25, 무신사가 겪은 불매운동 모두 2030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논란이 한번 생겨나면 걷잡을 수 없다”며 “사실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보다 확실한 방법을 제시해 MZ세대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MZ세대에게는 차별과 공정, 갑질 등이 예민한 이슈다. 공정한 기업, 착한 기업에게는 ‘돈쭐(돈+혼쭐, ‘돈으로 혼쭐내자’는 의미의 신조어)’을 내주자며 서로 소비를 독려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에게는 가차 없다. 남양유업은 2013년 ‘불매운동’의 여파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단합력이 굉장히 좋고 집단주의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한번 생성된 담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며 “기업윤리에 민감한 세대가 감시견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문화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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