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의 과학과 철학] 韓 '노벨 과학상' 수상,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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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의 과학과 철학] 韓 '노벨 과학상' 수상,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 승인 2021.05.2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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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구개발비 OECD국가 중 5위
노벨과학상, 일본 24명, 중국 3명 수상
연구실적 뒷받침 과학자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우리나라의 2019년도 연구개발비는 국내총생산(GDP)의 4.6%인 89조원이다.

총금액으로 따지면 경제개발기구 국가 중에 5위 수준이고 GDP 대비로 따지면 이스라엘(4.9%) 다음 세계 2위이다. 연구개발비의 77%는 기업에서 조달되지만 정부 투자금액도 20조원이나 된다.

89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천천히 생각해보자. 석유도 나오지 않는 대륙봉과 좁은 땅에 사는 우리는 89조를 투자해 가전제품, 반도체, 스마트 폰, 배터리, 화학제품 등의 제품을 개발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핵심 제품은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후발 국가들이 막대한 예산으로 추격을 지속하는 한 우리도 89조를 전용하지 못하고 종자돈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노벨 과학상을 받지 못했다. 일본이 24명, 중국이 3명을 받았다. 여러 가지 진단이 있지만 어느 정도는 진실이고 어느 정도는 핑계이다. 그중에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에야 과학기술에 투자했고, 최근에야 기초과학에 투자했으므로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노벨과학상에 대한 변명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제국주의 피해를 본 중국은 195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교통사고만 나지 않았다면 최초의 노벨 수상자가 될 수 있었다는 이휘소 박사도 해방 전후의 어려운 시대를 지내면서 소립자 이론을 세워갔다. 

인간의 과학 호기심과 탐구는 제국주의도 막을 수가 없다. 해방 이전부터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있었고 1970년 이후부터는 활발한 해외 유학 활동을 했으므로 우리나라도 노벨상을 받을 기간은 충분했다.

노벨상 수상자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노벨상을 받은 연구를 약 35세에 시작해, 약 50세에 획기적 성과를 발표하고 약 70세에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우리나라는 젊은 과학자에게 연구 기회를 주지 않으며 자율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진단도 있다. 이 진단도 반쯤 맞고 반쯤 틀리다. 이 경향이 노벨상 수상자에게만 적용될까? 일반 과학자도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과학자들은 35세쯤 되면 교수로 채용돼 실험실을 꾸미고, 이후 10여 년 동안 학생을 받아 연구에 매진하고 핵심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발표 이후 약 20년 동안 연구 결과는 검증을 받는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소박하게 정년을 맞지만 소수 과학자에는 달콤한 노벨상을 맛본다. 65세까지 과학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회와 행운이다. 노벨상을 못 받았다고 자율권이 없었다는 불평은 적절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못 받는 핑계를 굳이 댈 필요가 없다. 첨단 제품이 나오고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한 관심을 갖고 천천히 기다리면 된다. 필자도 공학으로 전공을 옮겼지만 이전에 노벨상이 수여되는 화학분야를 연구한 적이 있다. 이 경험을 통해 노벨상 연구의 특성을 알고 노벨상 받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은 아직까지 연구과학 부문에서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래픽=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 투자가 확대되면서 매년 노벨상 발표때보다 연구과학 부문 수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단순화의 한계

필자는 석사 과정에서 양자화학 연구실로 들어갔다. 양자화학의 목적은 분자구조나 반응 경로를 예측하는 데 있다. 화학분야의 가장 이론적인 학문에 도달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계산 자체에 매몰되어 화학반응과 구조의 통찰을 얻기는 힘들었다. 

과학자들은 닥치고 계산만 하라는 주문을 싫어한다. 계산에서도 의미를 얻기 원한다. 동유럽 과학자인 호프만도 비슷한 고민을 했고 운 좋게 통찰을 발견했다. 

그는 아름다움을 찾는 시인이기도 했는데, 분자의 기하학적 구조로부터 반응 여부를 추론하는 멋있는 규칙을 발견하여 198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우리 실험실은 호프만 규칙을 확장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필자는 양자화학 자체에는 가치를 느꼈지만 호프만의 규칙 확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내가 졸업한 이후에도 호프만 같은 시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닥치고 계산만 하는 양자화학은 꾸준히 발전하여 존 포플은 1998년, 카르플루스는 2013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양자화학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질적 혁신과 양적 혁신

농부의 아들인 필자는 석사를 마치고 산업계로 뛰어들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을 규명할 수 있다며 허풍을 치며 분석 장비를 만졌다. 핵자기공명장치(NMR)는 물질 구조를 밝혀주는 기기이다. 합성된 물질을 확인하기 위해 NMR보다 강력한 분석 장비는 없다. 분자 안에는 나침판 같은 자석이 있는데 90도 혹은 180도 회전시킨 후에 북쪽으로 되돌아가는 자석의 회전운동을 보고 물질을 밝혀낸다. 이 현상은 운동식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고해상도의 신호를 그린다. 스위스 화학자가 에른스트가 NMR 이론을 정립했다. 

비슷한 기술로 병원에서 널리 사용되는 MRI 장비가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조장희 박사의 작품이다. 우리는 NMR 신호를 모으는 동안 누가 먼저 노벨상을 받을 것이지 내기를 하곤 했다. 아쉽게도 에른스트가 199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아직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노벨상이 제작보다는 혁신적인 이론에 가중치를 둔다는 느낌을 받는다.

평범한 과학자의 행운  

NMR과 쌍벽을 이루는 기기가 질량분석기이다. 모든 실험실에 약방의 감초처럼 놓여 있는데 분자의 질량을 측정한다. 이 기기의 한계라면 물질을 휘발시켜 측정하므로 단백질 같은 거대분자는 측정이 어려웠다. 

거대분자는 온도를 올리면 끓기 전에 타버리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거대분자를 공중에 날리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다. 안개 분무기도 한 방법이지만 안개 한 방울은 분자 하나를 측정하기에는 너무 컸다. 일본의 평범한 직장인 다나카 고이치는 글리세린 같은 연고에 시료를 녹여 레이저를 쬐는 방법을 도입했다. 우리도 기발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노벨상 거리가 될 줄은 몰랐다. 다나카 고이치 본인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하다. 그는 2002년 노벨 수상 연락을 받고 믿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나카 고이치는 학사 출신 분석자인데 우리 실험실에서는 그런 자들을 테크니션이라며 비하하곤 했다.

대체로 노벨상을 받기 전에 논문이 알려져 수만 번 이상 인용된다. 다나카 고이치는 변변한 논문 하나 없으며 단지 학술 대회에서 발표한 자료가 전부다. 학술대회에 참석했던 서방 과학자들이 다나카 고이치 아이디어를 개선 발전시켰다. 생명과학이 과학계를 흔들자 레이저 휘발 방법도 핵심기술로 부각되었다. 노벨상이 주어졌고 다나카 고이치도 소환되었다. 

노벨상 수상 추진 정책과 피로

우리 정부도 일본처럼 노벨상을 받기위해 노력했다. 김영삼 정부는 노벨상 수상 전략을 발표하며 고등과학원을 설립했고 김대중 정부는 국가 연구개발비를 조 단위로 증액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위해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했고 박근혜 정부도 세계 선도형으로 연구방향을 전환하고 세계 상위 과학자 1천 명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어느 정권이나 과학기술에 호의적이고 노벨상 후보자를 지원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에서 번번이 떨어지자 사람들도 노벨상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우리나라 과학자는 세계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난도 있고 어느 누가 노벨상 후보에 가까이 갔다는 기사에 언론 플레이라는 댓글도 달린다. 경쟁자들은 최고 과학자의 도덕적 이탈을 호심탐탐 노리고 있다. 연구예산에서 소외된 과학자들은 노벨상 실패를 기회로 삼아 과학기술 참여 평등을 주장하기도 한다.

오르지 못할 나무에 번번이 아파하기보다는 이 시점에서 포기하는 편이 나을까? 해답은 과학을 즐기는 과학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고 판단하면 된다. 과학을 즐기는 과학자가 있다면 노벨상 희망은 살아있고 그 꿈은 이루어진다.

즐거움과 관심

진정한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기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4년 동안 지옥 훈련하듯 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학을 긴 경주로 여기며 즐기고 최고를 추구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 기뻐하고 실험으로 증명될 때 흥분한다. 실험 실패에 반응 조건을 바꾸고 다시 시도한다. 동료의 비판에 개선 아이디어를 얻는다.

노벨상은 능력 있는 과학자가 받지만 과학을 지원하는 사회분위기도 한몫을 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중적이다. 작업복을 벗으면 부정적이고 작업복을 걸치면 과학기술에 호의적이다.

방송에서 예능과 먹방에 밀려 과학기술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없다. 사람들은 사건 사고에 집착하여 온갖 음모를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음모를 검증할 과학적 원리에는 관심조차 없다. 과학적 실험실을 찍는 대신에 정치논쟁만 일삼는 데스크만을 촬영하고 있다. 사회 현안에 전문가라고 나오는 교수들은 과학적인 지식보다는 대중에 영합하는 지식만을 퍼트린다.

그랬던 그들이 일터로 돌아가면 과학기술에 호의적이다. 과학기술을 위해 아끼지 않고 투자를 한다. 첨단 제품을 선점하기 위해 투자를 한다. 배터리, 첨단 표시 장비, 반도체 등의 우수 제품은 과학기술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벨상이 공학보다는 과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공학과 과학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다. 첨단 공학은 핵심 과학의 다른 표현이다. 우수한 제품은 우수한 과학기술로 이어지고 노벨상으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혹시 우리나라 과학계가 세계의 과학계의 연구주제와 동떨어진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논문들이 과학계에 충격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 정도 던져 볼만한 질문이지만 기우이다.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은 바이러스 퇴치, 암 극복, 이산화탄소 포집, 우주의 미래 규명 등인데 이를 해결하는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추상적 이론보다 현안 연구에 더욱 강하니 세계 과학계의 주제를 놓칠 리 없고 실제로 실적을 내고 있다.
 
노벨 시즌이 가까워지면 유력 후보들이 발표된다. 주로 유명 저널 발표 논문과 피인용 수를 보고 후보자가 선정된다.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간혹 들어 있는데 그들은 대체로 물질합성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노벨 물리학상이고 화학상이고 생리의학상이고 상관없이 이 경향은 비슷하다. 젓가락질에 익숙해서 그렇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우리 과학자들이 손에 잡히는 주제에는 강한 듯하다. 노벨상이 혁신적인 원리를 규명한 논문을 더 선호하므로 물질 합성에 치중된 우리나라 실적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합성 기술은 첨단 제품과 직접 관련되므로 피인용 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세계 과학자들이 한국 기술을 노리고 있다고도 볼 수도 있고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피인용 지수, 세계적 현안과 호흡, 첨단 제품과의 연계를 고려하면 우리나라 노벨 과학상 수상은 희망적이다. 당장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자학을 할 필요가 없다. 전반적 과학기술 수준이 향상되므로 한번 받고 나면 봇물 터지듯이 연속적으로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몇 차례 좌절로 인한 국민의 관심이 식지 않도록 홍보해야 하고, 한두 개의 첨단 제품에 만족하지 말고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노벨상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이고 협동적인 과학자의 몫이다. 평생직장을 꿈꾸거나 정치에 기웃거리는 과학자의 몫은 아니다. 우수 과학자는 개방적 문화에 최고를 추구한다. 협력 못지않게 경쟁도 과학의 발전 동력이다.

경쟁은 교육하는 청소년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실적을 내는 어른들에게서 적용되어야 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많은 과학자를 발굴하고 지원해야 하지만 경쟁을 통한 차등 분배 불가피하다.

매년 실적을 내는 과학자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누구나 주어진 자원에 알맞은 연구주제를 세울 능력이 있어야 하고 나의 연구가 부족하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자세도 필요하다.

●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 연구원은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 거쳐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크로의 과학사냥'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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