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美 경제 정책, '절제의 선' 넘으면 어떤 대가 치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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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美 경제 정책, '절제의 선' 넘으면 어떤 대가 치룰까
  •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 승인 2021.05.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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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 글로벌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속속 상향 조정되고 있고, 주가도 사상 최고치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올해 미국의 실질성장률은 7%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고,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도 4%를 넘나들고 있다.

아직은 성장의 온기가 업종별, 국가별로 다르게 느껴지지만, 적어도 백신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주요국에서는 올해 하반기 경제가 상당 수준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가 발생했다는 사실, 이후의 대처 과정 등을 생각해 볼 때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코로나19와 싸워 온 2년이라는 기간이 결코 짧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처음 확산이 시작됐을 때의 공포를 생각해 보면 세계 각국 정부와 과학자, 그리고 국민들의 노력으로 빠른 정상화가 가능했다는 평가가 더 타당해 보인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까진 대체로 주효했던 코로나 위기 대응책

그런데 이번 위기에서 미국을 위시한 각국의 경제 정책은 특히나 주효했다고 생각된다. 셧다운 또는 그에 준하는 사태에 대응해 각국 정부는 가계의 소득을 보전하는 대규모 프로그램을 실행에 옮겼고, 이는 소비로 이어졌다.

정부의 자금 조달과 민간 부문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중앙은행의 정책도 이를 적절하게 뒷받침했다. 사람들은 받은 돈을 일부 저축에 사용했지만, 야외활동을 못하는 아쉬움을 소비로 달랬다. 

물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소비는 소득 보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도 고정된 월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번 사태로 오히려 수혜를 받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환경 변화를 반영한 소비에 나섰다. 즉, 여행 등 야외활동을 못하는 대신 그 돈으로 물건을 샀고, 특히 재택근무나 원격 교육으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노트북, PC, TV 등의 수요가 늘었다.

또한 업무나 교육상, 그리고 여가를 즐기기 위한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 소비가 급증했다. 당연히 이와 관련된 산업은 호황을 보였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당분간 경기 회복은 더 이어질 것이다. 정부가 지원한 돈 중 소비되지 않은 부분은 저축의 형태로 남아 있고, 코로나19의 종식은 보복적인 오프라인 활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백화점 매출의 증가는 이미 참지 못한 오프라인 소비가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

내년이 되면 원래 1년에 한번 정도 해외 여행가던 사람들이 두번, 세번으로 여행 횟수를 늘릴 것이다. 이미 산 물건을 또 사지 않아서 생각보다 내구재 등 제품 소비가 늘진 않겠지만, 여행지에서의 소비, 동료들과의 모임 등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각국에서는 소득 보전에 이어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경제 살리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 특히 미국의 연준은 이 같은 전망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을 것이며, 이로 인해 현재 일부 산업만이 누리고 있는 온기가 어려운 업종으로 확산되고, 전체적인 고용이 늘어나는 상태가 되는 것을 정상화의 마무리로 볼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재정을 풀고 있는 것도,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극도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이 도래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처럼 경제 정상화가 눈 앞에 다가오게 만든 것 역시 이 같은 입장을 반영한 정책 때문이고, 고용 현황도 여전히 부진하니, 아직 중앙은행과 정부의 정책은 성공적으로 볼 수 있다.

초유의 코로나 사태에도 주요국의 경제정책이 대체로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최근들어 뉴욕 증시를 중심으로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절제의 선을 넘어설까'에 대한 우려들

한편에서는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지켜 온 암묵적인 절제의 선이 이미 무너졌거나, 앞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특히 물가상승률이 예상을 뛰어 넘는 높은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정책 당국의 실패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요국 주식시장 역시 올해 1~2월까지의 상승세를 멈춘 상태다. 여전히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일부 투자자들이 위험자산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이 절제의 선을 넘은 상태에서 오래 머무를 경우 경우, 향후에 어떤 대가를 치루게 될까?

역시 대표적인 것은 인플레이션이다. 이미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대로 올라섰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생산자물가가 큰 폭으로 뛰고 있다.

예상보다 더 큰 폭의 물가 상승은 당연히 두 가지 흐름으로 귀결된다. 하나는 높은 물가가 다시 물가를 끌어 올리는 통제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막기 위한 급격한 유동성 흡수와 금리 인상이다. 어느 경우든 성장률과 고용의 충격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더 나쁜 경우는 스태그플레이션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래리 서머스와 올리비에 블랑샤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미국 정부의 재정정책 규모가 아웃풋 갭 수준을 크게 뛰어 넘어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웠다고 조언한다. 한동안 잊혀졌던 필립스 커브도 다시 등장했다. 평평해졌던 필립스 곡선이 이번 과정에서 가팔라졌고, 이 때문에 작은 수준의 고용 회복을 위해 큰 폭의 물가 상승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상대적으로 부진한 고용시장 회복

고용시장 문제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 최근 미국에서는 뚜렷한 경기 회복 징후에도 불구하고 고용 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지 않다. 구인난과 고용시장 부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장참가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 역시 미미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나,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실업 수당이 지급되고 있어 노동자들이 급하게 일자리를 찾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물론 이유가 이 뿐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업 수당 지급의 감소와 더불어 노동자들이 일터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연준이 이 기간 중 완화적 정책을 지속하기로 결정한다면, 목표의 달성을 위해 필요 이상의 기간과 강도로 정책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는 앞서 우려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고용시장 지표와 경기 전망과 관련, "우리 경제는 매우 이례적인 타격을 입었고 돌아가는 길은 다소 평탄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고용시장 지표와 경기 전망과 관련, "우리 경제는 매우 이례적인 타격을 입었고 돌아가는 길은 다소 평탄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대가 중 또 하나는 좀비 기업의 증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기업들이 더 좋은 실적을 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불황을 거듭하는 기업들도 많다. 그렇지만,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 나아가 부채의 만기 연장 등이 구조조정을 막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상황이 안 좋은 기업들 역시 이 과정에서 버티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강력한 정책을 사용한 국가들에서는 작년 중 극심한 침체에도 불구하고 부도율이 오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얼마 전 미국에서는 금융기관에 대해 한시적으로 적용해 줬던 건전성 규제 완화 조치를 되돌리기도 했다. 

이 같은 환경은 이번 경기 회복이 구조조정을 동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결국 효율적 자원 배분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건전한 경기 확장 사이클은 일반적으로 경기 하강 또는 침체기에 가계와 기업의 자체적인 구조조정, 그리고 이와 함께 진행되는 효율적 자원 배분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이번처럼 모든 가계와 기업을 끌고 가는 정책은 결국 이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생산자물가 상승 압력을 높일 수 있다. 원자재 수요를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다. 과잉 투자로 기업의 가격 전가 능력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산가격 급등에 대한 우려

자산가격 급등 가능성도 우려할 부분이다. 물론 현재 자산가격이 고평가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주요국 주가지수가 과거에 비해 높은 밸류에이션에 거래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낮은 금리 수준과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는 기업 실적, 과거와 달라진 무형자산에 대한 시장 평가를 감안할 때 설명하지 못 할 수준의 가격으로 보이진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월별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15년만에 가장 높은 13%대를 기록하고, 우리나라의 가계대출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명목성장률 이상을 유지하는 등 자산시장에 과도한 유동성이 흐르고 있을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다. 

얼마 전 미국에서 벌어진 아케고스 캐피탈 사태, 최근 들어 나타난 암호화폐 시장에서의 레버리지 투자와 가격 변동성 확대는 이를 암시한다. 물론 자산 가격 급등 자체가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거품이 발생할 경우 꺼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문제다. 이 경우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지며, 경제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앞의 몇 가지 문제는 엮여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산가격의 급등이 고용 의지를 꺾는 경우가 있다. 거품이 꺼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오르기만 하는 것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자산가격의 상승 구간에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 모두가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 간 증시를 통해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한 일부 기업들의 실패 사례를 보면, 필요 이상의 자금 조달이 기업의 성장이 아닌 금융자산 투자로 이어지거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들이 있다. 

이렇듯 코로나19 이후 절제의 선을 넘기 시작한 미국과 주요국의 통화, 재정정책은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을 경우 많은 대가를 치룰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에는 수 많은 인재들이 있고, 지금 지적한 대가와 그 이상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이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시간과 방법은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에서 정답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그리는 희망적인 미래뿐 아니라, 그들이 실패했을 경우 뒤따라 올 대가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 최석원 센터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2016년부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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