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왕국 사우디] 오늘도 평화로운 사우디의 '중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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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왕국 사우디] 오늘도 평화로운 사우디의 '중고나라'
  • 문주용 기자
  • 승인 2021.05.20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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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사우디 중고거래 사이트 이야기
오일달러 풍요속에 '새것만 찾던' 사우디는 과거일뿐
중고품 사서 쓰는 알뜰해진 사우디 생활환경 보여주는듯
신승민 통신원
신승민 통신원

[오피니언뉴스= 신승민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원] 사우디 삶을 택한 거의 모든 외국인들은 이곳 벌이가 고국에서의 그것보다 더 많기 때문에 여러가지 불편한 제약점들을 감수하면서 사우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남 아시아,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개도국에서 단순노무로 사우디로 이주한 3국인 근로자들은 물론, 자국의 소득수준이 전세계 상위에 있는 유럽국가나 영미권 사람들조차 본인들이 받던 급여의 두배 혹은 그 이상을 지급하는 사우디 회사의 조건은 말그대로 파격적이다. 때문에 사우디로의 이직을 희망하는 전세계 많은 이들의 이유가 너무나 명확하다.  

사우디에 중고거래가 활발해지는 이유

하지만 "기름왕국인 사우디의 호황기는 이미 저무는 중"이라는 교민들의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세금과 생필품 가격, 매주 인상되는 기름값 등은 이곳 외국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더욱 압박해오고 있다. 예전에 비해 지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필자도 가계살림의 규모를 줄이며 어떻게 이 난관들을 현명하게 헤쳐나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래서 집에 있는 물건들을 중고 시장에 하나둘씩 내다팔면서 나름의 부수입(?)을 올리는 중이다. 한국에 살던 시절, 일상적으로 하던 중고 직거래를 이곳에서 다시하게 될 줄을 몰랐지만, 나름의 노하우로 어떤 물건들을 어떻게 누구에게 얼마를 받고 팔게 되었는가를 간단하게나마 나누고자 한다. 혹 사우디 이주를 계획하는 독자분들이라면 흥미가 있을만한 주제라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코로나 위기에 사우디는 소비심리가 얼어붇고 필수품이 아닌 물건들을 처분해 용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과 사우디 생활을 마무리 하며 물건들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덕에 회원이 2만명 이상 되는 사우디 동부지역 중고거래 페이지에는 매일 약 100여개의 다양한 중고 물품들이 말그대로 쏟아져 나온다.

머리좋은 한국인과 인도인의 두뇌싸움?

필자의 첫 중고거래는 사우디에 온지 약 한달 반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던 2017년 10월 중고물품 페이지를 검색하던중 마음에 드는 중고차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필자는 차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었고 그냥 평소에 한번쯤 타고 싶었던 차가 중고로 올라 왔기에 무턱대고 판매자와 약속을 잡았다. 보통은 구매자가 판매자를 찾아가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사우디를 곧 떠나야 하는 그 인도인 차판매자는 직접 150㎞를 운전해 늦은밤 필자의 집까지 직접 왔다. 자동차를 전혀 볼 줄 몰랐던 필자는 약속전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중고차 관련 영상을 본 후에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으로 판매자를 만났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SBS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 중고차 점검의 달인”편에 나온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한국에서는 보기힘든 대형 SUV를 몰고온 인도인이 제시한 가격은 4만3000리얄, 한국돈으로 약 1200만원 정도였다. 당시 비슷한 연식의 동일 차량은 한국에서 3000만원에 거래되는 시기였기에 나름 저렴하다고 생각할수 있었지만,  “생활의 달인” 영상을 보고 습득했던 기술들로 전문가인 척 했다. 

종이컵에 물을 받아 엔진위에 올려 놓고 시동을 걸어 물이 많이 흔들리면 엔진 상태가 좋지 않다던가. 동전을 운전대 위에 올려 놓고 동전이 떨어지면 차량의 흔들림이 강하다던가 등등이다. 늦은밤 주차장에서 만난 한국인이 이상한 방법으로 차량을 점검하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던 인도인 판매자에게 아무것도 모르지만 허세 가득하게 유튜드영상의 멘트로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이 차는 엔진과 진동부분에서 하자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가격으로는 구매할수 없다!”고 말이다. 결국 4만3000리얄의 차값을 3만3000리얄로 구매하는데 성공했다.

유튜브영상으로 배운 짧은 잔재주로 1만리얄, 약 300만원을 에누리한 것이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몇달 후 비슷한 차량이 중고차 매장에서 2만 7000리얄에 거래되는 것을 본 필자는 필자의 머리위에서 어리숙한 한국인의 잔재수를 감상하고 시장가격보다 1백만원을 더 받고 중고차를 판 인도인에게 보기 좋게 당했다는 패배감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첫 수업료는 이처럼 비쌌다.   

필자가 2017년 큰 수업료를 지불하고 구매한 중고차. 구매 당시 이런 모습이었으나 현재는 수리후 완전 다른 차가 됐다. 사진= 신승민 통신원 
필자가 2017년 큰 수업료를 지불하고 구매한 중고차. 구매 당시 이런 모습이었으나 현재는 수리후 완전 다른 차가 됐다. 사진= 신승민 통신원 

다양한 중고거래 경험과 노하우

한동안 중고거래를 하지 않다가 올 3월초 본격적으로 집안의 안쓰는 물건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물건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12년된 시계부터 여러가지 운동기구, 안쓰는 낡은 가방 등등, 아내는 그런 물건을 누가 사냐며 판매를 못할 것이라 했다. 필자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다른 판매자들의 물건들 상태와 가격을 비교해보며, 판매를 확신했다. 

그도 그럴것이 사우디에서 정의하는 “중고”의 개념과 한국 중고거래에서 “중고” 개념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물건등의 상태와 가격을 보고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결코 판매할 수 없을 것 같던 바닥이 다 닳은 운동화, 코팅이 다 벗겨진 프라이팬, 시뻘건 녹이 올라오고 바퀴에 바람도 빠진 아동용자전거등이 사이트에 올라오고 판매되고 있었다.   

중고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녹슨 아동용 자전거. 소개하는 난을 자세히 보면 물품상태에 '중고-상태 최상’ 이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재밌는 물건중 하나는 바로 말린 생선이다. 주말이 되면 근처 해변가에서 다수의 필리핀 사람들이 낚시를 하며 제법 큰 물고기를 잡는데 이 잡은 물고기를 손질해 중고거래를 하는것이다. 주말 알바치고는 상당히 벌이가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건들을 정리해서 조금이라도 가계에 보탬이 될 요량으로 시작된 필자의 중고거래는 상당히 재미를 보았다. 약 11년 정도를 사용하고 현재는 서랍장속에 들어있던 시계를 200리얄, 약 6만원에 이집트 청년에게 팔았다. 당시 구입가가 14만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이곳의 중고가가 한국에 비해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음을 체감한 첫거래였다. 이후 4년된 시계와 11년된 아내의 시계를 각각 필리핀 청년과 필리핀 여성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특히 4년된 시계의 경우 가격문의 메시지를 하루에 100여통 이상 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후 사무실의 의자,  턱걸이 운동기구, 복싱글러브, 저주파 안마기등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모두다 사이트에 올려 놓자, 짧게는 당일 길게는 일주일 후에 모두 판매를 할 수 있었다. 거래는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대가 맞으면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교 정문에서 만나 현금을 받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중고거래 중 “현장네고” 라는 단어가 있다. 이미 거래가격을 유선상으로 확정했음에도 거래 현장에서 가격을 깎는 행위로 한국에서는 매우 비매너로 통하는 행동이다. 거래를 했던 상대방들 모두 100% 현장네고를 시도했다.  

필자도 이에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가격을 방어하다가 서로가 납득할 만한 가격을 받고 웃으며 헤어졌다.  한달동안 약 십여개의 물건을 팔아 3000리얄 약 9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2, 3일에 한번씩 거래를 하러 나갔으니 중고 거래로 보낸 한 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고거래를 위해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마사지기계를 사간 수단사
중고거래를 위해 메시지를 주고 받는 모습. 마사지 기계를 사간 수단사람(왼쪽)과 이미 팔린 시계를 문의하는 인도청년.

기억이 남는 거래가 두 건 정도 있는데, 사무실 의자를 사러온 튀니지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였다.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얼마나 반가워 하던지, 또 필자도 어릴적부터 태권도를 해왔던 터라 튀니지 청년 차에 의자를 싣고 가격을 치른 후 20여분간 태권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끝내는 함께  주차장에서 발차기도 함께 하며 즐겁게 거래를 했었다. 한국이었다면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또하나는 카메라 거래였는데 필자의 카메라는 8년전 약 40만원을 주고 산 제품으로 지금은 단종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10만원 내외에 판매하면 나름 잘 팔았다고 생각할 물건이었다. 900리얄 약 27만원에 올린 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인도 청년은 연신 가격을 깎으며 “온라인에서 신품 가격이 350달러인데 너는 너무 비싸게 판다”면서  아마존(AMAZON) 리스트를 캡쳐로 보내왔다.  

나는 배짱 좋게 “그러면 아마존에서 한번 구매해봐라. 배송비에 세금까지 합치면 550달러는 족히 넘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중고차를 구매하며 한번 당한 적인 있던터라 인도사람은 내 머리위에서 놀고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두고 거의 이틀동안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결국에는 750리얄 약 22만원에 서로가 흡족한 거래를 했다. 인도 청년은 원래 가격에서 150리얄, 4만5000원을 저렴하게 사서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나는 한국 시세의 두배이상을 몇해전 중고차 거래로 나에게 패배감을 안긴 인도인에게 승리했다는 성취감에 도취되기도 했다. 

새 것만 찾던 사우디, 고쳐 쓰는 시대로

“사우디 사람들은 고장나면 수리를 하지 않고 새 것을 다시 산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사우디의 풍요로웠던 시절을 이 한마디가 대변했던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날의  사우디는 예전과 다르게 효율적이고 알뜰한 생활스타일로 환경이 바뀌고 있음이 크게 활발해진 중고거래를 보며 직감할 수 있다.   

필자는 사우디 중고거래 활성화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혹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우디 교민들이 계시다면 집안 어딘가에서 오랜기간 동안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버릴려고 놔둔 물건들은 독자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들 welcome to market place! 

● 필자인 신승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서 학위를 마치고 2017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Dharhan(다란)에 위치한 king Fahd University Of Petroleum & Minerals(국립 킹파하드 석유광물 대학교) 체육학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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