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초코파이, 참이슬 그리고 설화수의 세 가지 닮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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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초코파이, 참이슬 그리고 설화수의 세 가지 닮은 점
  •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 회장
  • 승인 2021.05.18 16: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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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사랑하는 '한국산 명품'
북한에서도 큰 인기 누렸던 세 제품
창업주는 모두 1930년대 북한지역 청년
박기찬 신한 북한연구회 회장
박기찬 신한 북한연구회 회장

[박기찬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회장] 초코파이는 청소년과 군인들에게, 참이슬은 성인남녀 모두에게, 설화수는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명품이다. 이들 세 제품의 세 가지 공통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물론 북한과도 관련된...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세 명품

첫째, 세 제품은 모두 한국인만이 아닌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명품 반열에 올랐다. 

제과회사 오리온은 초코파이를 앞세워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해외에서 2020년 1조461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회사 매출의 65.5%는 해외에서 판 것이다. 초코파이는 2018년에 베트남에서 국내 보다 많은 6억개 이상이 팔렸고 제사상에 오른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소주 참이슬은 2017년 영국의 주류 전문지 ‘드링크스 인터내셔널(Drinks International)’에 글로벌 증류주 중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The World’s Best Selling Spirit(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증류주)'를 슬로건으로 미국의 ESPN과 NBC스포츠 등 스포츠 채널을 통해 참이슬 광고를 방송했다. 진로(眞露) 참이슬은 이제 세계 80여개 국가에서 사랑받는 글로벌 주류상품이 된 것이다. 

설화수를 만드는 아모레퍼시픽은 2021년 1분기에 전년대비 10.8% 증가한 1조252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이 급감한 상황에서도 고급화장품 설화수의 인기로 중국의 온라인 매출이 늘었다. 2주간의 자가격리 속에서도 면세점을 방문하는 중국 보따리상의 매출도 회복 중이라고 한다. 태국, 베트남, 유럽 및 북미 등에서의 매출도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화수는 정말 세계적 명품이다.  

북한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던 세 제품

둘째, 이들 세 제품은 북한에서도 인기가 매우 높았고 북한 사회와 경제에 상당한 자극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코파이는 개성공단이 가동되었던 시기에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매일 수십만 개가 공급되어 초코파이의 단일 시장이 북한 전역에 형성되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결국 북한 당국은 남한의 초코파이를 대신할 북한판 초코파이 ‘쵸콜레트 단설기’를 개발해 판매했다.

출처= 20105년 7월28일 채널A 방송 캡쳐
사진 = 20105년 7월28일 채널A 방송 캡쳐

참이슬 또한 북한의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남한의 참이슬과 초록색 병 색깔도 비슷하고 이름조차 유사한 ‘참대술’ 소주가 평양 등 대도시의 수퍼마켓에 판매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출처 = 블로그 ‘평양감사’ 2009년1월2일
사진 = 블로그 ‘평양감사’ 2009년1월2일

고급 한방화장품인 설화수는 해외에서 일하는 무역일군들의 부인들과 평양의 상류층 여성들에게 그 인기가 대단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쩌면 설화수 등 한국의 고급화장품이 중국시장에서 거대한 돈을 버는 모습은 북한의 화장품 업계에 큰 자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퍼스트레이디를 동반한 최고지도자의 화장품 회사에 대한 잦은 방문과 세계적 화장품을 만들라는 현지 지도 내용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제품, 북한의 청년 창업자들로부터 시작됐다

셋째, 초코파이, 참이슬, 그리고 설화수의 탄생은 우리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북한의 청년 창업자로부터 시작됐다. 

초코파이는 동양제과의 창업자 이양구 회장이 1938년 함경도 함흥에서 식품도매상을 창업한 것이 그 기원이다. 일본인 식품회사에서 8년간 일하며 모은 돈으로 23세 때 창업해 식품도매업과 제과업을 이어오다 1974년 초코파이를 개발한 것이다.  

참이슬은 창업자 장학엽이 22세 때인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 진천(眞泉)양조회사를 창업해 진로(眞露)라는 이름의 소주를 생산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부산과 서울에서 양조업을 이어 오던 중 1966년에 회사명을 진로(眞露)주조로 바꾸었고, 1998년에는 진로(眞露)의 뜻을 부르기 쉬운 우리말로 바꾼 것이 오늘날의 제품명 ‘참이슬’이다. 

사진= 영남일보 2018년12월15일자
사진= 영남일보 2018년12월15일자

설화수를 만드는 아모레퍼시픽은 창업주 서성환이 16세 때부터 황해도 개성에서 어머니와 함께 화장품 제조와 판매업을 이어온 것이 그 출발점이다. 24세였던 1946년에 가족기업인 창성상회의 이름을 태평양상회로 바꾸었다. 1966년 인삼 성분의 ‘ABC 인삼크림’을 개발한 이후, 계속적인 연구 개발로 1987년 ‘설화’를 거쳐 1997년 오늘날의 ‘설화수’를 탄생시켰다. 

그 당시 세 청년을 보며 세계적 명품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초코파이, 참이슬, 설화수는 일제 강점기에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에서 창업한 세 명의 20대 청년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1930년대의 그 시기로 돌아가보자.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의 땅에서 창업했던 20대의 조선 청년들을 지켜보면서, 어느 누가 초코파이, 참이슬, 그리고 설화수와 같은 세계적 명품의 탄생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북한의 청년들은 창업과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다음의 두 장면이 떠 오른다. 

장면 1. 2007년 평양에서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북한 대학생을 만난 것을 계기로 ‘조선익스체인지(Choson Exchange)’를 만들었다는 제프리 시 대표는 북한 경제인 2600여명에게 창업 교육을 제공했다. 그는 2019년 5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얘기한다. “조선익스체인지를 거쳐 간 북한의 ‘기업가’ 중에는 평양에 20여 개의 편의점 체인망을 설립한 사람도 있습니다.”

장면 2.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조선인민군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는 입에 넣었던 초코파이를 다시 뱉어내며 말한다. “어이, 이수혁이. 내 딱 한번만 얘기할 테니까 잘 들어 두라우. 내 꿈은 말이야. 언젠가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훨씬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기야. 알갔어?”

사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스틸컷
사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스틸컷
● 필자인 박기찬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신한은행 북한연구회 대외협력회장을 맡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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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송아 2021-05-18 18:36:00
잘읽었습니다! 참대술 ㅎㅎ 마시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