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영의 홍차수업] (34) 홍차가 비쌌던 시절의 에피소드- 위조차와 밀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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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영의 홍차수업] (34) 홍차가 비쌌던 시절의 에피소드- 위조차와 밀수차
  •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 승인 2021.05.1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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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에서 높은 세금에 '짝퉁' 홍차 범람...밀수도
차 보관상자 '티 캐디' 열쇠진 하녀, 우렸던 차 섞어 위조하기도
지금도 일부 고가차 눈속임 남아있어
한국, 수입관세 40% 탓에 해외여행객 '트렁크 밀수'...관세 낮춰야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영국에서 소비되는 홍차의 95%는 티백(Tea bag)제품이다. 영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티백제품 브랜드는 유니레버의 <피지 팁스(PG Tips)>다. 240개 티백이 들어있는 피지 팁스를 할인행사가로 구입하면 티백 당 약 30원 꼴이다. 즉 영국인이 가장 즐겨 마시는 홍차 티백 당 가격이 30원 정도에 불과하다(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마시는 커피믹스 개당 가격이 약 120원이다).

독일 1/6  가격인 영국의 홍차

영국인이 홍차를 많이 마시기는 하지만(1인당 음용량 세계 3위 수준), 홍차 품질이 높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유와 설탕을 넣기 때문에 강하게 우러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에 비해 유럽에서 국가별 소비량이 영국에 이어 두 번째인 독일은 인당 음용량이 높지는 않지만 소비량의 60% 이상을 잎차(Loose Tea- 티백에 들어있지 않은 것)로 마시는 나라다.

그러다보니 국가별 소비량으로 보면 영국이 독일의 약 6배지만, 금액기준 차 시장 규모는 영국과 독일이 비슷하다. 즉 독일이 영국보다 평균 6배 비싼 차를 마신다는 뜻이다. 사실 독일이 비싼 차를 마신다는 표현보다는 영국이 싼 차를 마신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세계 최대 차 회사 유니레버 제품인 피지팁스(PG Tips)는 수량기준으로 영국판매 1위다. 사진= 구글
세계 최대 차 회사 유니레버 제품인 피지팁스(PG Tips)는 수량기준으로 영국판매 1위다. 사진= 구글

18세기만해도 매우 비쌌던 이유 '세금'

이런 영국에서도 18세기 후반까지는 차 가격이 매우 비쌌는데 멀리 중국에서 오는 이유도 있었지만 차 세금 또한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밀수차와 위조차가 차 시장을 혼란시키기도 했다. 

차에 세금을 부과하는 전통은 오래된 것으로 중국 당나라 시절에도 있었다. 영국은 초기에 차 세금을 커피하우스(Coffee House- 커피가 차보다 10년 정도 빨리 영국에 소개되었고, 차도 처음에는 커피하우스에서 판매되었다.이 상황은 커피전문점에서 차를 팔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에서 판매되는 우린 차에 부과했다. 즉 아침에 그 날 판매할 적정 양을 우려 놓고 세금 징수원이 이 양을 확인한 후에야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주문이 들어오면 데워서 주는 시스템이었다. 

1782년 밀수선 신고에 상금이 붙어있다는 내용의 포스터. 사진= 구글
1782년 밀수선 신고에 상금이 붙어있다는 내용의 포스터. 사진= 구글

세금이 매우 높다보니 밀수차가 많아졌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영국으로 홍차를 밀수출했고, 특히 네덜란드가 제일 적극적이었다. 세금이 터무니없이 높다 보니 국민 대부분이 가격이 싼 밀수차를 구입하는데 아무런 저항감이 없었다고 한다. 밀수하는 사람들을 심지어 보호하기까지 했다.

홍차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18세기 후반에는 영국에서 소비되는 홍차의 절반, 심지어 3분의2가 밀수차라는 통계도 있을 정도다. 이런 혼란기에 당시 영국 차 판매상단체 대표인 리처드 트와이닝(토마스 트와이닝의 손자)이 수상이던 월리엄 피트에게 세금을 낮추면 밀수차가 줄어들어 오히려 정부의 차 관련 세수가 증가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1784년이 되어서야 119%이던 세금은 12.5%로 약 10의 1수준으로 낮아진다. 이후 밀수차는 거의 없어지고, 영국은 1964년에 차 관련 세금을 완전히 폐지한다.

위조차도 등장...'티 캐디'라는 차 보관상자 

소위 짝퉁은 그 대상도 다양하고 역사도 깊다. 차 또한 '위조차'의 역사가 있다. 차 가격이 고가일 때 영국 귀족들은 차를 티 캐디(Tea Caddy)라고 불리는 나무 상자에 넣어서 보관했고 금고처럼 열쇠로 잠글 수 있었다. 차를 우릴 때는 열쇠를 하녀에게 줘서 차를 들어내게 했다. 이 때 하녀들은 전에 우렸던 찻잎을 잘 말려 뒀다가 자기 몫으로 일정량을 티 캐디에서 들어내고 대신 말려 놓았던 차를 살짝 넣었다고 한다. 매우 소박한 수준의 위조차 였다.

비싼 차 가격은 높은 세금도 중요한 이유가 됐다. 사진= 구글
비싼 차 가격은 높은 세금도 중요한 이유가 됐다. 사진= 구글

이것이 규모가 커지면서 커피하우스 같은 곳에서 우리고 남은 찻잎을 대량으로 수거한 후 말려서 진짜와 섞는 사람들도 생겼다. 중국에서도 수출용 차에 우린 찻잎을 다시 건조해 넣기도 했다고 한다. 그 다음 단계로는 찻잎과 유사하게 생긴 식물 잎을 건조해 섞기도 하고, 녹차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녹색 안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행위는 음용자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쳐 종종 사회문제가 되었다. 

마른 찻잎이 짙은 적색에 가까운 홍차는 녹차 보다 가짜로 만들기가 더 어려웠고 이로 인해 녹차를 마시던 영국인이 홍차로 전환하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위조차가 사회문제가 되면서 영국은 1875년부터 법에 의해 검역을 시작한다. 

티 캐디(Tea Caddy). 잠금 장치가 있고 가운데 그릇은 차를 블랜딩할때 사용했다. 사진=구글
티 캐디(Tea Caddy). 잠금 장치가 있고 가운데 그릇은 차를 블랜딩할때 사용했다. 사진=구글

아직도 위조차·밀수차 관행 있어

과거 유물 같은 위조차와 일종의 밀수차는 사실 아직도 어느 정도는 남아있다. 오래될수록 가격이 더 높아진다고 알려진 보이차 경우는 새로 만든 차를 어떤 인위적인 방법으로 수 십년 묵은 보이차처럼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또 마른 찻잎의 색상이 중요한 차에는 색을 입히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경우는 건강에 해로울 수가 있다.

반면에 홍차애호가들은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의 현지가격과 국내로 수입되어 판매되는 동일 제품의 가격 차이에 훨씬 더 민감하다. 현지 가격보다 최소 2배 많게는 5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국내에서 판매되기 때문이다. 정식 수입절차를 거치다 보니 관세 40%도 영향이 있겠지만 좀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다 보니 대부분의 홍차애호가들은 현지에 갈 일이 있으면 구입한 홍차를 트렁크에 가득 채워 오곤 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가격차이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홍차가격이 비싸지 않음으로 큰돈은 아니지만 어쩌면 작은 수준의 밀수를 하는 것인지로 모른다. 

● 홍차전문가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 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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