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재산보다 소득 중시하는 금융여신 관행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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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재산보다 소득 중시하는 금융여신 관행을 만들자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1.05.1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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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도 '경제력 기준' 논의·금융위 DSR 채택...바람직한 '소득' 중시
정작 한국은행· 상업은행, 담보력만 평가....실물경제와 괴리돼
이슬람 금융 '수쿠크', 미래 사업성에 베팅...글로벌 금융위기 빗껴가
담보대신 현금흐름 평가해 여신 제공하는 금융관행 만들어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이재명 경기지사가 제안한 ‘재산비례 벌금제’를 둘러싸고 ‘거짓말’이니 ‘국어 독해력 문제’니 하며 험한 말이 오간다. 전 세계적으로 공정에 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때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중요한 문제가 정치적 논쟁으로만 비화되어서 안타깝다.

벌이든, 상이든 그 부담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수도 어떤 가난한 과부가 동전 두 닢을 헌금하자 생활비 전부에 해당하는 그녀의 헌금이 어느 누구의 헌금보다도 많다고 칭찬했다. 

그렇지만 경제력에 비례하여 벌을 준다면,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부자의 노역이 가난한 사람의 노역보다 가치가 더 높다면, 당장 ‘황제 노역’ 시비가 생긴다. 몇 년 전 어떤 재벌이 50일간의 노역으로 254억 원의 벌금을 대신함으로써 그의 하루 일당이 5억 원을 넘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야를 떠나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이재명 지사가 용기 있게 그 뚜껑을 열었다. 윤희숙 국민의 힘 의원은 경제학자답게 소득과 재산의 차이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재산(금보유량)보다 소득(생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광 받는 '소득' 기준 경제력 평가방식  

애덤 스미스의 지적을 수용한 것은 금융위원회다. ‘영끌 대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어나자 금융위는 마침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라는 새로운 규제방식을 도입키로 했다. DSR은 차입하려는 사람이 어떤 담보나 재산을 갖고 있느냐(재산)가 아닌, 얼마나 버느냐(소득)를 갖고 대출 한도를 제한한다. 기존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나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 확실하다.

재산보다 소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움직임은 감독당국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 사이에서도 있다. 자본이 부족하더라도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에게 대출해주는 ‘기술금융’이 그 예다. 기술력과 성장가능성을 근거로 미래의 현금흐름 즉, 소득을 추정한 뒤 그것을 담보로 삼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 초기 머천트뱅크(merchant bank)들이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보고 투자했던 것과 비슷하다.

머천트뱅크의 전통은 이슬람 세계에서 아주 잘 유지되고 있다. 기독교 사회에서는 이자수취 금지원칙이 16세기초 사라졌지만, 이슬람 세계에서는 여전히 샤리아(shariah) 즉, 이자의 수취를 금지한다. 그래서 확정이자를 지급하는 대신 금융기관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투자)하고 그 배당금을 지급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쿠크(sukuk)는 정확하게 말해서 이슬람의 채권이 아니라 수익증권에 해당한다. 수익증권의 발행자인 이슬람 금융기관들은 현재의 담보가치보다 미래의 사업성을 평가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 사회에서도 수쿠크에 해당하는 금융상품이 있었다. 르네상스 시절 부자들을 상대로 취급했던 ‘재량예금(discretionary deposit)’이 그것이다. 자금을 예치한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금액은, 자금운용의 결과에 따라 매년 바뀌었다. 그래서 ‘재량’이라는 말을 강조했고, 이는 이자수취를 금지하는 교회법을 빠져나가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재량예금이 확정금리부 수신상품 즉, 예금으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사업성 대신 '담보'...여신 관행이 바뀌다 

금융기관들이 예금을 취급하는 순간 미래의 불확실성보다는 현재의 금리수준에 집중하게 된다. 그 결정적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확산된 공개시장조작이다. 그 전에는 금융기관들이 어음을 할인하면서 어느 정도 리스크를 취했다. 실물경제와도 깊은 연관을 맺었다. 

그런데 원금손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국채를 대상으로 한 공개시장조작이 보편화되면서 실물경제가 아닌 금리수준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게다가 기업이 아닌 가계 대출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담보대출이 보편화되었는데, 이는 차입자의 담보 즉, 재산에 집중하는 여신관행을 만들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식 공개시장조작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며 상업은행들의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각하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한국은행은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회사채 직매입이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엉뚱한 법조문을 내세우며 영리기업을 향한 여신확대에 부정적인 반응으로 보였다. 반면,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국채 매입에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돈을 풀더라도 자금회수의 불확실성은 조금이라도 부담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결국 자금회수의 불확실성은 산업은행이 부담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최종대부자’는 어느 기관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여신활동에서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것은 상업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생산, 구매, 투자, 소비 등 실물경제 활동과 연계되어 발행되는 어음을 할인하여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은행들의 주된 일이었다. 반면 담보대출로 실행될 수밖에 없는 가계대출 비중은 상당히 낮았다.

은행들이 어음을 할인할 때는 발행기업의 재무와 사업 현황을 면밀하게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을 신용평가회사나 기술평가기관에게 맡긴다. 그 대신 은행들은 부동산 담보대출 방식으로 돈을 풀면서 담보가치 변동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 결과 실물경제와 절연되었다. 지금의 은행들은 증권회사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일러스트= 연합뉴스
일러스트= 연합뉴스

'소득' 중시하듯, 금융권도 현금흐름 중시해야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의 상업은행들과 한국은행은 소득(생산, 실물경제)보다 재산(담보, 금융시장)에 의존하여 자금을 운용한다.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개척할 때 제시했던 교훈과 반대다. 르네상스 초기의 기독교 사회와 현재의 이슬람 세계의 금융관행과도 반대다. 그것을 바로 잡아야 상업은행의 여신활동이 실물경제와 연계성이 높아진다. 통화정책의 효율성도 개선된다.

결론은 이것이다. 장차 벌금을 매길 때 소득을 감안하자는 아이디어에 관해서는 이재명 지사와 윤희숙 의원 모두 동의한다. 소득이라는 기준은 그만큼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통화정책과 상업은행의 여신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재산 즉 담보물의 가치에만 집착하지 말고, 미래의 소득 즉 현금흐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실물경제와의 연계성을 높아진다. 그것이 한국은행과 상업은행들의 존재이유를 드높이는 길이다.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으려는 기관은, 존재감마저 잃게 된다.

참고로 이슬람 금융기관들은 수쿠크를 통해서 항상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피해갔다. 금융기관과 실물경제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금융버블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비이슬람 국가들이 깊이 되새겨 볼 문제다. 리스크를 피하고 안전한 길을 가려고 할수록, 더 리스크에 빠진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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