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는 ‘최저가’ 외치는데 밥상물가는 '역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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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는 ‘최저가’ 외치는데 밥상물가는 '역대급'
  • 김리현 기자
  • 승인 2021.05.07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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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2% 넘게 올라…3년8개월만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특히 심해져

이마트·롯데마트 등 식품 최저가 출혈경쟁
이커머스·편의점도 ‘신선식품 최저가’ 참여
정작 소비자는 ‘10원 떼기 경쟁’으로 피로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 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2% 넘게 오른 가운데, 유통업체들은 식품 최저가 경쟁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통업체들이 최저가 경쟁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지난 달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2%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리현 기자] 7일 오전 11시. 서울시 마포구 한 대형마트에선 장바구니를 들고 신선식품을 고르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다들 가격과 용량을 꼼꼼히 따져보며 채소, 계란 등을 구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채소 코너를 유심히 살피다가는 결국 발걸음을 돌리는 고객들이 적지 않았다. 바로 치솟은 물가 때문이다. 아이와 장을 보러 나온 한 30대 주부는 “집에서 밥 먹을 일도 많은데 채소값이 예전보다 너무 많이 올라버려 배달이 저렴할 지경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형마트를 필두로 식품 최저가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살림에 도움이 되냐고 묻자 “기사는 봤지만 전혀 못 느끼고 있고, 할인 품목도 한정적이라 그닥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밥상물가’ 폭등…체감은 이미 인플레이션

이날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 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2.3%나 올랐다. 이는 3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물가 상승률이 2%대에 진입한 것도 2018년 11월(2.0%)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지난 4월 물가가 특히나 많이 올랐다는 뜻이다.

‘물가상승률 2%’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로, 1년 이상 이 기준을 넘는다면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통화정책 전환을 불러올 수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0.1%) 이후 줄곧 0%대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지난 1월(0.6%), 2월(1.1%), 3월(1.5%)로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지난달(2.3%)을 기록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 폭을 키우고 있다.

소비자들을 더욱 한숨 쉬게 만드는 건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되는 농축수산물 등 신선식품의 물가 상승이다. 농산물은 17.9%, 축산물은 11.3%, 수산물은 0.6% 상승률을 보였으며, 농축수산물은 13.1% 상승해 지난 1월(10.0%) 이후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오름세를 이어갔다. 

특히 ‘파테크(집에서 파를 길러 먹는 게 재테크)’, ‘금(金)파’ 등 신조어까지 낳은 파 가격은 270% 올랐다. 주 식재료인 오이(23.9%), 양파(17.5%), 마늘(52.9%), 쌀(13.2%)은 물론 저녁 식탁 단골 식자재인 두부(6.1%), 달걀(36.9%), 돼지고기(10.9%), 국산 쇠고기(10.6%)까지 대부분 두 자릿수 오름세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이 농축수산물 등 식료품을 구매하는 비중이 늘었는데, 해당 부문 가격이 급격히 오른 탓에 체감물가 상승률이 공식 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상황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체감물가 상승률은 0.66%로,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0.54%)보다 0.12%포인트 높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제 물가와 체감 물가가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특히 국민 소득이 줄어든 상태라 물가로부터 느끼는 생활고는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보는 수요가 비교적 많은 맘카페 등 커뮤니티에는 물가에 관한 성토글과 함께 최저가 마케팅에 대한 비판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네티즌은 “오랜만에 마트 갔다가 너무 놀랐다”며 “콩두부 두 모에 5000원이고 팽이버섯도 원래 3개 묶음에 1000원이었는데 50%는 오른 것 같아서 사먹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아직도 파 값이 5000원을 훌쩍 넘고 양파도 4000원이 넘어서 장보면 20만 원은 우습게 나온다”며 “할인 행사 기사가 많이 나서 신선식품 값이 좀 괜찮아질까 기대했는데 소비자는 못 느끼고 기업만 ‘최저가’라고 홍보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7일 이마트 마포공덕역점에는 매장 곳곳에 '최저가 보상제'와 관련한 안내문이 배치돼 있다. 사진=김리현 기자 rihyeon@opinionnews.co.kr
7일 이마트 마포공덕역점에는 매장 곳곳에 '최저가 보상제'와 관련한 안내문이 배치돼 있다. 사진=김리현 기자 rihyeon@opinionnews.co.kr

유통업계 ‘최저가’ 경쟁에 소비자는 '글쎄'

하지만 유통업계는 너도나도 ‘최저가’를 내걸며 할인 공세 중이다. 정작 소비자는 ‘10원 떼기’ 마케팅일 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대형마트 및 이커머스 업체들, 심지어 편의점 업체들까지 가세해 출혈 경쟁을 펼치고 있다. 

경쟁의 시작을 끊은 건 이마트다. 이마트는 2007년 이후 14년 만에 최저가 보상제를 도입했다. 자사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한 특정 500여 가지 물건에 대해 롯데마트몰, 홈플러스몰, 쿠팡과 비교했을 시 동일 용량 기준으로 더 저렴한 곳이 있으면 차액을 이마트앱 포인트인 ‘e머니’로 돌려주는 서비스다. 신라면, CJ햇반, 서울우유, 코카콜라 등 가공·생활용품 가운데 매출 상위 500개 품목이 대상이다. 

이마트의 공격에 롯데마트도 이마트가 제시한 500개 품목을 최저가로 판매하고, 자사 포인트 엘포인트 적립률도 5배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최근 온·오프라인의 유통 채널들이 다양한 가격 비교 정책으로 최저가를 표방하고 있다”며 “최저가 정책이라는 흐름에 합류해 고객이 믿을 수 있는 이상적인 가격 정책과 예상 가능한 혜택을 제공해 고객과의 신뢰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제살 깎기와 다름없는 최저가 정책을 다시 꺼내든 건 코로나19와 함께 이커머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오프라인 중심 매장의 대형마트의 경쟁력이 점점 사라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다. 
 
대형마트가 식품 영역 승기를 잡기 위해 기지개를 켜자 업계 중 새벽배송을 가장 먼저 시작한 마켓컬리도 부랴부랴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본 채소, 과일, 수산, 정육, 유제품과 쌀, 김 등 60여 가지 식품을 1년 내내 가장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EDLP(Every Day Low Price) 정책을 시행하기로 한 것. 

마켓컬리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주요 온라인 마트의 동일 제품을 매일 모니터링하며 가격대를 파악하고, 상품 판매 가격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이마트24, CU, GS25 등 편의점들도 신선식품을 유통업계 최저가로 제공하겠다며 나섰다. 

너도나도 최저가 마케팅에 뛰어든지 약 한 달가량 지났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글쎄’다. 물가는 사정없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가’만을 외치는 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마트와 마켓컬리, 롯데마트 등을 비교한 결과 흙대파 1단에 5000원~6000원 선으로, 평년(2480원) 대비 2배에서 많게는 3배까지 차이가 났다. 물론 농축수산물 가격의 고공행진은 긴 장마와 한파, 조류 인플루엔자(AI) 영향 때문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소비 심리를 불지피기 위해 ‘10원 경쟁’을 하는 것은 소비자의 피로도만 높아질 공산이 크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통업체들이 가격을 가지고 경쟁을 펼치려면 그 가격이 소비자가 인지할 수 있는 자극보다 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피로감만 느낀다”며 “유통업계들이 성공적으로 가격 전략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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