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복의 세계잡학사전] 드골 장군과 '웃는 소' 디자인에 얽힌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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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복의 세계잡학사전] 드골 장군과 '웃는 소' 디자인에 얽힌 비밀
  • 위민복 외교부 외무사무관
  • 승인 2021.05.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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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유명 치즈브랜드 '바슈 끼리(래핑 카우)' 이야기
탄생에서부터 유사상표와 다툼까지
샤를 드골 사후에 밝혀진 브랜드 디자인의 비밀
디자인 뚜껑을 뜯으면 샤를드골이 나타난다!
바슈끼리 로고. 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Lavachequirit
바슈끼리 로고. 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Lavachequirit
위민복 외교부 외무사무관
위민복 외교부 외무사무관

[위민복 외교부 외무사무관] 아이들의 간식으로 혹은 어른들이 포도주와 곁들이는 치즈 안주로 유명한 상표가 있다. 바로 '래핑 카우(laughing cow)'다. 이 제품은 원래 프랑스산으로 프랑스어로 '바슈끼리(Vache qui rit)', 말 그대로 '웃는 소'다. 이 제품은 나온지는 거의 100년 됐다.

이 브랜드가 처음 만들어진 때는 1921년이지만 거의 아이콘이 된 '웃는 소' 그림 자체는 제1차 세계대전 때 태어났다. 웃는 소 치즈를 만드는 회사인 그룹 벨(Groupe Bel)을 만든 레옹 벨(Léon Bel, 1878-1957)이 웃는 소를 디자인한 벤자망 라비에르(Benjamin Rabier, 1864-1939)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전쟁중 보급부대 트럭에 그려진 그림 

그런데 이 부대는 좀 특이한 부대였다. 신선육 공급대(Ravitaillement en Viande Fraîche, RVF)라고 하여 육류 수송부대였던 것이다. 이 부대는 각 분대가 운용하는 트럭마다 전용의 동물 그림을 그려 넣으라 시켰다. 심지어 (전쟁 와중에!) 최고의 동물 마스코트 경연대회도 개최했다.

벤자망 라비에르. 출처 : https://fr.wikipedia.org/wiki/BenjaminRabier
벤자망 라비에르. 출처 : https://fr.wikipedia.org/wiki/BenjaminRabier

이 경연대회를 위해, 그리고 부대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라비에르는 커다란 '웃는 소' 한 마리를 그렸고, 이 웃는 소를 '바슈퀴리/Wachkyrie'라 불렀다. 북유럽 신화에서 저승사자를 의미하는 독일의 발퀴레(Walküre)를 떠올리게 하는 작명이었다. 당시 독일군은 군 수송 트럭에 발퀴레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경연대회에서 웃는 소 디자인이 당연히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이걸 기억하고 있던 레옹 벨은 나중에 가공 치즈 사업을 시작할 때 이 소 그림을 다시 사용하고자 했다. 처음에 자기가 그려봤으나 신통치 않자 원래의 트럭에 그림을 그렸던 라비에르에게 정식으로 디자인을 의뢰했고, 해당 디자인의 권리를 1000 프랑에 샀다. 라비에르는 아래 경험을 떠올렸다고 한다.

"소를 웃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한 번은 농장에 소와 송아지를 같이 빌려왔거든. 더 어리니까 송아지가 먼저 웃지 않을까 싶어서 노력했건만, 먼저 웃는 건 어미 소였어. 내가 송아지랑 노는 게 보기 좋았던 거지." 

'웃는 소' 디자인을 둘러싼 지재권 전쟁들 
 
이 당시 레옹 벨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도 확실히 있었던 모양이다. 웃는 소 그림의 트레이드 마크를 등록하는 한편 라비에르가 디자인한 웃는 소 모양의 그림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여기저기서 웃는 소의 권리를 사들이기 시작한다.

당시 트럭에 달았던 그림. 출처 : https://heraldie.blogspot.com/2013/05/la-guerre-des-vaches.html
당시 트럭에 달았던 그림. 출처 : https://heraldie.blogspot.com/2013/05/la-guerre-des-vaches.html

하지만 강력한 라이벌은 로렌 지방의 생-위베르에 있었다. 라비에르가 '생-위베르의 까망베르(Camembert St-Hubert)' 치즈 그림도 그렸던 것. 하지만 판매고에 있어 레옹 벨의 웃는 소를 생-위베르는 이기지 못했고, 결국 1948년 상표에 대한 권리를 레옹 벨에게 양도했고. 1956년에는 아예 인수당하게 된다.  
 
이렇게 레옹 벨이 웃는 소를 사들였던 이유는 그 파급력을 미리 예상해서였을 수도 있다. 실제로 유사 상표는 우후죽순 나왔고, 그중 제일 논란이 됐던 것은 바로 '심각한 소/La vache sérieuse'였다(1925년). 하지만 소송 끝에 '심각한 소'는 1959년 판매정지된다.

"웃음은 인간의 것, 심각함은 소의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이 '심각한 소' 치즈 상표는 결국 네슬레에 합병됐다가 현재는 락탈리스(Lactalis) 그룹에 넘어갔다. 락탈리스 그룹이 '웃는 소' 상표를 갖고 있는 그룹 벨의 지분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 관점에서 보면 둘이 결국 합쳐졌다고 볼 수 있겠다. 

심각한 소 유사상표(왼쪽)과 진품(오른쪽) 출처 : https://www.estrepublicain.fr/meurthe-et-moselle/2015/03/15/la-vache-qui-rit-de-st-hubert
심각한 소 유사상표(왼쪽)과 진품(오른쪽) 출처 : https://www.estrepublicain.fr/meurthe-et-moselle/2015/03/15/la-vache-qui-rit-de-st-hubert
당시 두 브랜드의 경쟁을 그린 신문기사. “두 암소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출처 : http://vache-grosjean.blogspot.com
당시 두 브랜드의 경쟁을 그린 신문기사. “두 암소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출처 : http://vache-grosjean.blogspot.com

여기서 드골 장군이 왜 나와?

물론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 잡지로 각광받고 있는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의 전신, '아라-끼리'도 이 '웃다(qui rit)'라는 어구에서 빌어와 만들었으니 '웃는 소'의 영향력을 짐작할만 하다. 이 잡지의 이름인 Hara-Kiri는 '할복'을 뜻하는 일본어 단어인 '하라키리(腹切り)'를 의도해 '배꼽잡게 웃다'를 표현한 일본어-불어의 합작 이름이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샤를리 에브도와 아라-키리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단지 아라-끼리의 제작자들이 샤를리 에브도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전신(前身)' 취급받는 것이다. 아라-끼리가 타격을 받았던 건 1970년 11월호 때문이었다.

당시 댄싱홀의 화재로 146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같은 시기에 일어난 드골의 사망에만 관심이 쏠린 걸 비판해 'Bal tragique à Colombey - 1 mort'라는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올렸던 것이다. '콜롱베에서 딱 한 명 사망한 비극적인 무도회'라는 의미의 헤드라인 제목이다. 프랑스 정부는 여기에 격노해 아라-끼리의 미성년자 판매 및 전시를 금지시킨 바 있다. 잡지사에 큰 피해가 가는 조치였다.

문제의 1970년 11월호 아라-끼리. 출처 : https://www.paris-bd.com/revue-84723-Hara-Kiri-hebdo-3-Hara-Kiri-hebdo-n°94-:-Bal-tragique-à-Colombey—1-mort
문제의 1970년 11월호 아라-끼리. 출처 : https://www.paris-bd.com/revue-84723-Hara-Kiri-hebdo-3-Hara-Kiri-hebdo-n°94-:-Bal-tragique-à-Colombey—1-mort

당시 프랑스에 언론의 자유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됐을까? 드디어 오늘의 주제로 넘어가 보자. 

바로 '웃는 소' 치즈의 뚜껑 디자인을 잘라보면,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장군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프랑스와 독일 합작 채널인 ARTE는 이를 만드는 방법을 영상으로까지 올려 놓았다. 도대체 이게 언제 발견된 것일까? 

출처= https://fr.forum.elvenar.com/index.php?threads/le-g%C3%A9nie-farceur.14061/post-841393
출처= https://fr.forum.elvenar.com/index.php?threads/le-g%C3%A9nie-farceur.14061/post-841393

역사학자 디안 드 빈몽(Diane de Vignemont)의 추측에 따르면 디자이너인 라비에르가 스스로 숨겨놓았다고 한다. 게다가 '웃는 소' 치즈의 뚜껑 디자인이 약간씩 바뀌었기 때문에 드골 장군의 옆 모습이 계속 약간 변해가면서 나오는 것도 재밌다. 이 치즈 디자인이 드골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아마 1990년쯤인 듯하다. 한 수집가가 드골의 아들(상원의원을 지낸 필립 드골/Philippe de Gaulle, 1921-2014)에게 보냈다고 한다.

드골 장군의 아들은 아마 크게 싫어하지는 않았나 보다. 아버지는 준장 계급으로 끝났지만 웃는 소는 그에게 별을 하나 더 줬다. (두껑 디자인을 보면 드골 이미지에 별이 두개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군 당시의 샤를 드골.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샤를드골
제2차 세계대전 종군 당시의 샤를 드골.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샤를드골
● 필자인 위민복은 외교부에서 주로 통상 분야에, 최근에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근무했다. 전공은 경제학이며 전공 공부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석사까지만 받았다. 평소에 잡다한 주제로 글을 많이 쓰고 있는데, 물론 성씨가 같아(?) 친숙한 '위키피디어'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지인들 사이에 '한국의 걸어다니는 위키피디아'로 불린다. 동 칼럼은 필자가 속한 기관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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