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소유에 저당잡힌 삶과 거리두기 ‘노매드랜드’
상태바
[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소유에 저당잡힌 삶과 거리두기 ‘노매드랜드’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5.03 16: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열풍에 휩싸인 시대에 여전히 초연한 척 동참하고 있지 않지만 마음 한켠에는 이래도 되는걸까 하는 불안함이 늘 자리하고 있다. 분명 그렇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타인의 ‘소유’가 나의 게으름 또는 무지함으로 여겨져 한없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영끌’이 트렌드가 돼버린 불행한 곳에서 그것에 역행하는 삶을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야 간신히 가질 수 있는 사회에서 그래도 ‘영혼만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이 가당키나 할까. 그거야말로 현실성 없는 교과서적인 발언일 뿐.

‘무소유의 삶’이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대한민국에서 오늘도 ‘소유를 위한’ 각종 숫자들에 노예가 돼버린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삶이란 얼마나 초조하고 불행한가. 가진 자가 된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근원적인 질문 따위 사치일 뿐, 지금은 철학자를 원치 않는 시대다. 

휴머니즘으로 연대한 사람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보다 답답함에 그저 숨 쉬고 싶어 찾은 영화다. ‘현대판 유목민’이라는 작품의 수식어가 주는, 일견 ‘자유로운 삶’에 대한 관망보다 ‘갖지 못한 자’들의 부유(浮遊)하는 삶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했다. 

영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길 위의 인생이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주인공인 펀(프란시스 맥도먼드)과 몇 명의 배우들 외에는 실제로 노매드들이 출연했으니 극영화이기는 하지만 꽤 현실감이 높다. 그래서 한편으론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은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굳이 기승전결로 나눌 필요 없는 내러티브는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이 길 위에서 계속되는 여정을 그린다. 남편과 사별한 펀은 그와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한 길 위의 삶에서 자신을 발견해 간다. 그런 까닭에 함께 하자는 제안에도 정착이 주는 안정감 대신 누군가의 ‘집’이 아닌 ‘길’ 택한다. 

펀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불안함과 제 몸 하나 제대로 누이기 어려운 공간의 압박을 견뎌야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외롭지 않다. 짧은 만남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경계하지 않는다. 함께 노래하고, 위로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돕는다. 보잘 것 없는 작은 것조차 가진 것을 기꺼이 베풀 줄 안다.

차가운 세상에서 그들이 연대할 수 있는 건 이렇듯 온기가 가득한 ‘휴머니즘’ 덕분이다. 길 위로 내몰렸지만 마음을 닫진 않았다. 세상에 대한 불만도 하소연도 하지 않는다. 노매드들은 가난하지만 비루하지 않다. 그들에게 동정과 연민은 필요치 않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세계의 주류가 된 비주류 영화

카메라는 길을 따라 가며 미국 서부 지역의 광활한 풍광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길이 생활의 터전이 돼버린 이들을 그리고 있지만 자연은 ‘로드무비’의 훌륭한 배경이 되며 생활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함께 흐르는 ‘루도비코 에이나디’의 서정적인 음악 역시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탁월하다. 극한으로 치닫는 감정선이 없다는 건 배우에게 어떤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있어 상당히 어려운 일일텐데 그녀는 매우 섬세하게 ‘펀’의 심리 묘사를 해낸다. 마치 주름살 하나하나가 각각의 감정을 담고 있는 듯 말이다.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이 그렇듯 그녀를 통해 배우의 주름진 얼굴이 얼마나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해내는데 필요한 요소인지 스크린은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작품을 관통하는 안정적인 긴 호흡은 왜 ‘펀’이 맥도먼드여야만 하는지를 답해준다. 

‘노매드랜드’는 비주류의 삶을 다뤄 세계가 주목하는 주류 영화가 됐다. 여기에는 ‘클로이자오 감독’의 정서적 경험도 녹아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할리우드에서 주류로 편입하기 힘든 아시아계 출신의 이방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노매드’에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소외계층인 노매드와 노인들의 삶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들을 안쓰럽게 여기거나 사회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리지 않았다. 영화는 또 길을 떠나는 펀을 따라가며 끝이 난다. 그들은 그렇게 계속해서 길 위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 뿐이다.

작품을 보는 내내 사유(思惟)가 멈춰버렸던 일상에 신선한 호흡이 깃든 것 같다. 무언가 영끌하려던 욕심을 내려놓은 것만으로도 지쳐 있었던 영혼에 쉼을 찾아준 느낌이다. 

내게 감히 노매드의 삶을 택할 용기는 없다. 하지만 현실을 그리고 있는 영화를 통해 ‘소유’에 저당잡힌 또 다른 현실에서 한동안은 한 발짝 물러선 채로 있을 것 같다. 노매드랜드, 그것만으로도 족한 영화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