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한국 정치인들의 '사과' 언어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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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한국 정치인들의 '사과' 언어 비판
  •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 승인 2021.05.0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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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 민주당대표 '방명록 사과', 적정성 등에서 결여돼
오세훈 서울시장 '사과', 이론적인 면에서 충실한 사과로 평가
'정치인의 언어' 잣대로 보면 오시장 사과도 문제있어
전임시장 사건의 실체 명확치 않고, 본인의 '용산 참사'사건 사과안해
진정성 있는 정치인들의 발언, 한국 정치문화 발전시킬 것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4·7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인들이 전임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게 사과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국 정치 지형에서 어떤 사건을 두고 ‘사과 정치’가 유행처럼 번지는 느낌이다. 정치인들의 ‘사과’ 발언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그 정치적 성격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우리 사회의 정치 문화 발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과하는 문장의 적정성을 따져보기

‘사과’는 언어학 분야에서 화행(speech act) 현상으로 이해하고 분석한다. '화행'이란 말로서 행위를 하는 문장 발화를 뜻한다. 우리는 화자로서 사실 기술이나 의견 진술 등을 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진술문 뿐만이 아니라 말로써 특정 행위(사과, 거절, 약속, 경고 등)를 하기 위해 수행문(performative sentences)도 발화한다. 진술문은 참과 거짓으로 평가하는 반면 수행문은 발화의 적정성을 얼마나 충실히 지켰는지의 정도로 평가한다. 

오스틴(Austin)이라는 학자는 수행문 발화가 적절(felicitous)하기 위해서는 크게 4가지 적정 조건, 즉 1)명제내용조건(content condition), 2)준비조건(preparatory condition), 3)성실조건(sincerity condition), 4)본질조건(essential condition)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을 사과 화행에 적용해 보면 사과 화행이 적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과의 내용이 충실해야 하고, 사과의 맥락적 상황이 명확하고, 화자가 사과할 자격이 충분해야 하며, 화자가 마음속으로 진정한 사과의 마음을 갖추어야 하며, 후속 화행과 행동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어서 사과를 하기란 쉽지가 않다. 무릇 학문 분야에서 이론은 이상적 모델을 설정하는 역할을 하고 어떤 현상이 그것에서 얼마나 벗어났느냐를 분석함으로써 그 현상의 본질과 성격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제 이 이론적 배경을 기반으로 최근 있었던 윤호중 민주당 원내 대표와 오세훈 서울 시장의 사과 발언을 분석해 보자.

적정조건이 결여된 윤호중 민주당 대표 '사과'

윤호중 대표의 사과 발언은 4)는 물론이고 1)과 2)와 3)의 적정 조건 거의 모두에서 심각한 비판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본인은 정치인으로서 민주당의 잘못을 대신해 피해자에게 사과한다고 웅변하였지만, 순국선열 참배가 주목적 장소인 현충원에서 사과 화행을 한 것부터가 준비 조건을 심각히 위반했다고 본다. 장소의 부적절성과 더불어 피해자라고 쓴 청자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한 채 사과를 함으로써 사과의 맥락적 상황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현듯 사과 화행을 함으로써 준비 조건의 결여를 확연히 드러냈다. 

더구나 방명록에 쓴 한 줄의 문장으로 사과를 담아야 하는 근본적인 명제내용조건 충족의 한계까지 더해져서 사과의 진정성이 전달이 되기 힘든 화행이었다. 그의 사과 화행 직후 보도를 통해 나온 부산 오거돈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의 반응은 “내가 순국선열도 아닌데 왜 그런 곳에서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었다. 

이 반응 자체가 윤호중 대표의 사과 화행이 즉흥적으로 적정 조건을 거의 갖추지 못하고 이루어져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 정치성 발언에 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증명한다. 

적정조건을 갖춘 듯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과

반면 오세훈 시장의 사과 화행은 피해자 당사자는 물론 진영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칭찬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일단 오 시장의 사과 화행 자체가 위의 4가지 적정 조건을 충실히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 내용이 충실하고 특히 피해자인 청자의 입장에 서서 위로의 말까지 추가함으로써 충분한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화자로서 새 시장으로서 전임 시장 때 일어난 잘못된 일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파함으로써 준비 조건의 적정성도 잘 드러냈다. 또한 피해자를 직접 대면으로 만나서 뜻을 전달함으로써 사과의 진정성을 충실히 전달하여 성실 조건도 갖추었다. 그리고 앞으로 성희롱과 성폭력 재발 방치 대책으로 원스트라이크아웃제 등을 즉시 도입하겠다는 약속 화행을 통해 본질조건도 갖추었다. 

그렇다면 오세훈 시장의 사과 화행은 칭찬일색의 것으로서 비판할 곳이 없는 것일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오세훈 시장이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그의 발언은 피해자에게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서울 시민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에게도 전달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확대된 청자인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특히 그의 지지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특히 2번과 3번의 적정 조건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우선 2번 준비 조건 관련, 오세훈 시장이 과연 이 사건에 대해서 사과할 충분한 자격과 권한이 있는지를 따질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다른 미투(me-too) 사건과는 달리 피해자가 본인의 입으로 구체적으로 증언하지 않았고 특히 박원순 시장의 죽음으로 수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근본적인 한계로 그 실체적 진실이 대중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서울 시장직의 위력이 어떤 식으로 압력으로 작용하였으며 그 뒤에는 어떤 시행정상 모순적 구조가 있었는지 등에 관한 사실 관계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후임 시장이 전임 시장을 대신해서 사과를 해야 하는 그 맥락적 상황이 명확하지 않고, 사과의 자격과 권한 관련 적정 조건의 설득력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온라인 취임식에서 박원순 전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쳐
오세훈 서울시장(왼쪽)이 온라인 취임식에서 박원순 전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쳐

오시장, 왜 자신의 사건에는 사과하지 않았을까

또한 3번 성실 조건을 의심할 정황도 있다. 오세훈 시장은 선거 전 유세 기간 중에도 용산 참사 사건이 공권력에 완강히 저항하는 철거민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시각을 드러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사실 용산 참사는 박원순 시장 성희롱 사건에 비해서 6명의 생명이 희생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훨씬 중한 사건이다. 더구나 본인 재직 시에 일어난 참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시장은 새 시장 취임 직후 ‘사과’ 정치의 최우선 행보로 이 중대한 사건에 대해 유족들에게 사과를 하는 대신, 전임 시장 관련 피해자에게 먼저 사과를 하는 선택을 했다. 

그의 이런 선택적 사과를 접하고 시민들은 오시장의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던지며 성실성 조건의 충족을 의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 일보다 남이 잘못한 것에 대해 더 큰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낀다는 자세를 먼저 보이며 하는 사과가 얼마나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을지 의문이 간다. 그의 발언을 화행의 적정성 자체보다는 선택적 정치 화행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사과 화행 자체의 전체적 진정성도 의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진정성 깔린 정치인의 언어문화, 한국 정치문화도 발전시켜

말하기 자체는 가볍고 쉽지만 말이 전하는 의미는 무겁고 비싸다. 화행의 경우 그것이 적정 조건을 충실히 갖추지 못한 이유로 일으키는 오해와 갈등은 그 대가가 혹독하다. 특히 정치인들은 말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흔히 정치인은 말을 잘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정치인이 말을 잘 한다는 의미가 박력 있게 큰 소리로 호소력 있는 웅변을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화행의 적정 조건을 충실히 지키면서 진정성 있게 말을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교훈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진영 논리를 떠나서 모든 정치인들은 마음속에 진정성을 깔고 적정 조건을 충족한 상태에서 공손하고 충실한 표현으로 모든 시민들에게 와 닿는 발언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정치인들의 언어문화가 성숙해진다면 우리의 정치문화도 발전할 것이다. 

● 필자인 이창봉 가톨릭대 영문과 교수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동 대학원 영어학 석사) 졸업 후 미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언어학 박사(세부전공: 화용론(Pragmatics)) 학위를 받았다. 주로 조건절(Conditionals) 연구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최근에는 은유(metaphor)를 통한 인간 본성 탐구와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 관련 주제 연구를 해왔다. 영어와 미국문화 관련 글과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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