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씨티그룹이 한국 소비자금융시장을 떠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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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씨티그룹이 한국 소비자금융시장을 떠나는 진짜 이유
  • 필명 회색코뿔소
  • 승인 2021.04.27 16:5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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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그룹, 한때 모든 대륙에 소비자금융 진출한 유일한 은행
각국의 엄격한 인허가 따내고 진출...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대단'
2006년부터 소비자금융시장서 철수 시작...미·캐나다외 4개국만 남겨
로컬시장서 경쟁력 떨어지고 우위 못지켜..."철수 결정"
소비자금융 철수 대신 중국· 홍콩·싱가폴에 대규모 투자나서 '눈길'

[필명 회색코뿔소] 지난 4월 15일 한국씨티은행의 본사인 미국 씨티그룹은 한국,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13개 국가에서 소비자금융에 대한 출구전략 추진을 공식화하였습니다. 씨티그룹은 그동안 이들 국가에서 개인을 상대로 전통 은행업인 예금과 대출은 물론, 신용카드와 자산관리(투자상품판매) 사업을 펼쳤고, 전체 소비자금융 사업은 씨티그룹 이익의 5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은행 전략의 포기?

‘Citi Never Sleeps’라는 광고 캠페인처럼 씨티그룹의 글로벌 소비자금융은 2006년 초까지 전세계 50여개 국가에 진출하였고, 전세계 주요 도시 어디에서나 동일한 신용카드와 ATM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은행이었습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전성기 시절 씨티은행은 아프리카를 포함, 모든 대륙에 진출한 유일한 소비자금융 사업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대단한 이유는 은행업과 카드업을 포함하는 소비자금융은 모든 국가에서 핵심산업으로 분류되어 엄격한 인허가 요건과 정부 규제를 따라야 하고, 시스템인프라, 지점망 및 인력 등 상당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동일한 사업모델을 각국에 모두 적용하는, 흔히 말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방식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씨티그룹의 소비자금융 진출 현황. 자료= 블룸버그
씨티그룹의 소비자금융 진출 현황. 자료= 블룸버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티그룹은 90년대부터 남미, 동유럽, 중동, 아시아 등 이머징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사업을 확대하였고, 이 중 아시아-태평양지역은 씨티그룹의 전략적 요충지로 거의 모든 나라에 진출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06년부터 남미와 유럽(영국 제외)의 모든 국가에서 소비자금융을 철수하였고, 올해 2021년 아시아 10개국(한국, 중국,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태국, 베트남)과 유럽 2개국(러시아, 폴란드), 중동 1개국(바레인) 등 총 13국가에서 철수하면서, 이제 씨티그룹의 소비자금융은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하면 4개 국가(영국, 홍콩, 싱가포르, UAE)만 남게 될 예정입니다. 

Citi DNA의 포기?

씨티그룹은 1998년 씨티코프(Citicorp)와 트래블러스(Travelers)의 합병을 통해 '금융빅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설립되었습니다. 씨티코프는 1914년 미국금융기관 최초로 해외에 은행을 설립하였고 1929년부터 전세계 최대 상업은행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트래블러스 역시 제조업에서 시작해 지속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보험업과 증권업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씨티그룹은 이후에도 적극적인 사업확장과 해외진출로 2000년대 초반 전세계 은행 중 시가총액 1위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씨티그룹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에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특히 기업금융과 투자은행 업무에 특화된 금융사에 비해 상업은행 색채가 강했던 씨티그룹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결국 미연방정부 구제금융까지 받아야 되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이후 주요 계열사 매각(2008년 다이너스클럽카드, 2012년 스미스바니증권)과 해외사업 축소를 통한 구조조정을 지속하게 됩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확장 전략의 포기를 Citi DNA의 포기로 볼 수 있을까요? 

경쟁우위와 성장성에 집중

씨티그룹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발표가 나온 후 많은 뉴스들이 한국의 과도한 규제, 외국사에 대한 차별과 경직된 노동시장 등 국내 이슈를 많이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부분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문제의 핵심은 씨티그룹의 전략이 과거의 ‘글로벌 은행’ 전략에서 경쟁우위가 있는 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작년 9월 씨티그룹의 새로운 CEO로 취임하고 이번 출구전략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제인 프레이져 회장의 말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13개 국가의 소비자금융은 모두 훌륭하지만 (현지로컬은행과) 경쟁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씨티는 해당 국가들에서 소비자금융의 가장 뛰어난 사업자가 아니다.” "While these are excellent franchises we don't have the scale we need to compete, We decided we simply aren't the best owners of them over the long term."

프레이져 회장이 소비자금융의 가장 오래된 지점이었던 아르헨티나에서 철수를 결정하고 이후 2014년 일본, 2015년 그리스, 2016년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럼비아, 체코 등에서도 철수하면서 내세운 전략 역시 ‘지속적으로 경쟁력있는 사업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철수 전략 역시 동일선상에서 그룹 차원의 전략적 판단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씨티그룹은 지난 4월15일 전세계 13개국 소비자금융시장에 대한 출구전략을 발표했다. 사진= 연합뉴스

소비자금융의 미래

오프라인 기반의 많은 은행들이 여전히 고비용-저효율 사업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통 은행들의 비용은 매년 3~5% 증가하는데 비해, 금융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익은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국내 은행들도 수수료 수입 자체는 증가하고 있지만 수수료율(마진)은 정책당국의 가이드라인이나 업계 경쟁 등에 따라 하락하고 있습니다. 신용카드 수수료, 펀드 판매보수 등에 대한 당국의 개입이나 은행 이체수수료 면제비중 확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핀테크기업과 인터넷은행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금융채널과의 경쟁에서 오프라인 기반의 전통 은행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핀테크기업과 인터넷은행(증권)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완전히 새로운 금융거래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경쟁에서 뒤처진 전통 은행들은 소비자금융에서도 심각한 수익마진의 압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씨티그룹의 철수 사례는 은행업 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과거 동일한 대량생산-대량소비 사업모델로 전세계에 진출했던 다국적기업들이 최근 빠르게 변화하고 세분화되는 소비자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 현지 기업들에 뒤처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철수를 결정한 13개국 씨티은행의 출구전략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뿐 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에서도 로컬은행과의 인수합병, 부분매각, 폐업 등 다양한 방식이 논의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씨티은행이 해당 국가에서 최대 외국계은행의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에 각국 금융당국, 기존 고객 및 씨티뱅커라 불리는 직원들과 치열한 논쟁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씨티그룹은 이번 소비자금융 철수전략을 알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 투자계획도 발표하였습니다. 소비자금융이 철수하는 중국에서는 증권/선물거래, 주식/채권발행 주간사 업무가 가능한 라이선스를 신규 신청하기로 결정하면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였고, 초부유층(Unltra HNW)과 유니콘 기업 창업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아시아에서는 싱가폴과 홍콩의 프라이빗뱅킹을 강화하며 약 3500명 인력의 충원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향후 5년, 10년 후 씨티그룹의 이번 결정과 새로운 전략 방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필자인 회색코뿔소(필명)는 수년전까지 씨티은행을 다녔다. 20년이상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직 금융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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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완규 2021-04-29 07:20:18
실제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날카로운 분석
매우 유용한 정보입니다...

문상용 2021-04-27 19:32:43
국내 언론과는 다른 시각이 돋보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씨티은행의 운명이 어찌될 지 궁금해 지네요

문상용 2021-04-27 19:27:38
국내 언론과는 분석이 다른 자새한 분석이 돋보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문상용 2021-04-27 19:27:25
국내 언론과는 분석이 다른 자새한 분석이 돋보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