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송 칼럼] 시대전환의 서막을 알린 4·7보궐선거와 청년 세대
상태바
[임무송 칼럼] 시대전환의 서막을 알린 4·7보궐선거와 청년 세대
  • 임무송 금강대학교 교수
  • 승인 2021.04.18 18: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촛불정권 ‘사람 중심, 노동 존중’, ‘기득권·노조 편들기’로 변질...세대간 불평등과 갈등
청년세대의 시대정신은 "일터에서부터 공정·투명성·세대교체"
디지털시대에 맞게 하루빨리 '공장제 산업화 시대의 노동체제' 혁신해야
임무송 금강대학교 교수
임무송 금강대학교 교수

[임무송 금강대학교 공공정책학부 교수] 여당의 참패로 끝난 4·7 보궐선거 결과는 민심이 정치권에 보내는 경고장이자 산업화·민주화 시대 종언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signal)이었다.

거대한 변화의 선두에는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엄(M)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청년들이 있었다. 특히 이남자와 이여자는 ‘청년=진보’라는 통념을 거부하고 투표를 통해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임을 엄중하게 선언했다. 정신분석학에서 ‘정체성(identity)’은 자신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Erik Erikson).

'공정DNA'로 무장한 MZ세대

인터넷 포털의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소유보다는 공유를, 상품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특징을 보이며,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가치나 특별한 메세지를 담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미닝아웃' 소비를 하기도 한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MZ세대의 정체성에는 ‘공정 DNA’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고 여야정청 모두 ‘청년들의 마음 얻기’ 경쟁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번 보선에서 청년 세대가 열어젖힌 시대 전환의 의미를 잘못 읽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도 나섰다. 4월 1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특단의 청년 일자리 대책’ 강구를 지시하자 정부와 여당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특단의 대책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4·7 재보궐선거 유세 마지막날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후보 유세장에서 청년들이 지지연설을 한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 유세 마지막날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후보 유세장에서 청년들이 지지연설을 한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라빚 늘리는 일자리 대증요법...노동에 '무능' 

청년고용 문제는 나라빚 추경으로 그린 디지털 뉴딜 알바자리 늘려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일자리 문제는 단기간에 반짝 아이디어로 풀 수 없는 구조적 난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하고 ‘두더지 잡기 게임’ 하듯이 현상만 좆아 대증요법을 반복하면 애먼 국민 세금만 날리고 정부 정책에 대한 냉소와 불신만 팽배해진다.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공공일자리로 고용지표를 분식하는 것도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좌회전 깜빡이 켜고 후진 기어를 당겨온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청년 일자리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4년간을 돌아 보라. 인천공항에서 가덕도까지 포퓰리즘 일색이고,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3월 고용동향만해도 13개월 만에 취업자 수가 늘었다지만 대부분 공공일자리 효과이고, 15~29세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4.3%)의 두 배도 넘는 10%, 청년 확장실업률은 25.4%에 달한다. 젊은이 네 명 중 한 명은 사실상 실업자라는 의미다.

대통령 현장방문 1호 사업장인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제로’가 선언된 지 4년, 전 행정부처와 공공기관들이 지난 정부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정규직 전환에 매달린 결과 2020년 12월 말 기준 19만 9538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되었다. 전환 속도를 줄이고, 이 가운데 절반만이라도 공개경쟁원칙을 지켰다면 청년채용이 줄어드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징은 고용률이 낮지만 실업률도 낮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청년고용 사정을 보면 고질적인 고실업으로 앓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을 닮아가고 있다. 2021년 4월,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성인들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 톱10에 공공기관이 5개나 포함되어 있다. 적자 공기업이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단이 글로벌 대기업보다 순위가 앞선다. 날이 갈수록 각종 공무원 채용시험에는 청년들이 구름같이 몰린다.

대한민국은 일자리전략과 노동정책에 실패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노동을 ‘무시’했고, 박근혜 정부는 노동에 ‘무지’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간 ‘무능’했다.   

최정우 포스코회장이 MZ세대인 현장직 직원들과 간담회를 한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제공/연합뉴스
최정우 포스코회장이 MZ세대인 현장직 직원들과 간담회를 한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제공/연합뉴스

4·7 청년세대, 새로운 시대정신 '공정'을 외치다

‘촛불 정부’의 ‘사람 중심, 노동 존중’은 ‘기득권 세대 중심’, ‘노조 편들기’로 변질되고, 노동복지정책은 세대 간 불평등과 갈등의 중심에 서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정부의 대책 없는 정년연장만큼이나 일자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고용·임금·근로시간의 ‘노동정책 3종 세트’이다. 알바마저 줄여버린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중소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주52시간제, 절차적 정의를 내팽개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의 부작용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갈라파고스 과잉규제로 일자리 창출력을 옥죄면서 고용보조금과 공공일자리로 숫자 채우기, 방만한 현금복지와 급증하는 국가부채, 재정건전성은 아랑곳하지 않는 4대 사회보험 등 미래세대의 부담을 떠넘기는 정책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업주보다 건물주가 선망받고,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복지급여 받는 것이 유리해지면 기업가정신과 근로윤리 실종은 시간문제다. 경제발전의 동력인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과 복지병의 백신이 사라지는 것이다.

4·7 보선을 통해 나타난 청년들의 평가와 심판은 엄중했다. 유세 현장에서 취준생을 비롯한 청년들은 조금은 떨리지만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스마트폰 메모를 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이 중에 하나라도 지켜진 것이 있습니까?” 표심을 사려고 ‘빚내서 돈 풀기’, 미래세대 고민은 없이 부담만 떠넘기는 행태, 분열의 정치에 신물이 났다는 청년들의 외침에 웃으며 박수치던 정치인들도 내심 섬뜩했을 것이다.

기성세대에 분노한 신세대가 새로운 시대정신의 좌표를 요구하며 ‘4·7 세대’로의 진화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기득권 세력이 되어버린 386, 586 운동권 엘리트의 퇴조와 정치적 자의식을 깨달은 MZ세대의 부상이 내년 대선을 거치며 새로운 미래로 이끄는 정치 현상으로 자리 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화 시대' 이후의 시대정신은 뭔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업화’ 시대와 아버지 어머니의 ‘민주화’ 시대가 저물고 있다. 4월 7일 보궐선거 다음 날 아침, 온라인 수업에 참여한 제자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을 물었다. 몇몇 학생이 수줍은 듯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답했다. 공감, 연대, 안전, 공정, 자유...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단어에 담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라고 정리해보았다.

최근 네이버, SK하이닉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주류로 자리 잡은 전투적 노동운동과는 결을 달리하는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성과급 불만으로 시작되었지만 젊은 직원들이 오너 회장에게 ‘성과급 기준이 무엇이냐’며 투명성과 공정성을 요구한다. 기성 노조에 대해서도 ‘불공정 그 자체’라고 비판하며 독자노조를 설립한다. 일터에서부터 세대교체가 시대정신의 교체로 이어지고 있다.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ce)에게 일은 존재적 삶 그 자체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진화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참된 인간화는 누구나 자신의 ‘일’을 가지고 활동을 할 수 있을 때 온전히 구현될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AI가 인간노동을 대체하면서 중간수준 일자리는 사라지고 노동에 기반한 소득체계만으로는 더 이상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청년들의 외침은 바로 이러한 미래에 맞설 비전과 전략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공장제 산업화 시대의 노동체제를 디지털 시대에 맞게 혁신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출발선은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보장하고, 노력과 성과를 공정하게 보상하는 일자리 개혁이다. 청년들은 시대 전환을 거스르는 자는 누구든지 퇴장을 명할 ‘레드카드’를 꺼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모두 기억해야 할 것이다.

● 필자인 임무송 금강대학교 공공정책학부 교수(법학박사, 사회법)는행시 32회로 전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일자리정책 전문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