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 이야기] 휴먼카인드, 감춰진 인간 '선한 본성' 찾는 희망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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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 이야기] 휴먼카인드, 감춰진 인간 '선한 본성' 찾는 희망의 연대기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1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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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선한 본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건 권력과 언론
연대와 협력이 인류를 발전하게 한 힘이었음을 믿어야

[강대호 칼럼니스트] 인간의 본성은 과연 이기적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책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전쟁과 재난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어김없이 ‘선한 본성’에 압도되어 왔다고” 답한다.

출간 후 대형 서점 인문 부문 베스트셀러를 계속 지키고 있는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라는 책에서 그 대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엘리트 지배 권력과 언론에 의해 은폐되었던 인간의 선한 모습과 그 근원을 찾아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을 깨길 바란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 연대와 협력을 이뤄낼 것이고, 이것이 불평등과 혐오, 불신의 덫에 빠진 인류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휴먼카인드. 사진 =출판사 인플루엔셜 제공
휴먼카인드. 사진 =출판사 인플루엔셜 제공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네덜란드의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다. 위트레흐트 대학교와 UCLA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고, 박사 학위 대신 저널리스트의 길을 택했다. 유럽의 혁신적 대안 언론으로 꼽히는 ‘드 코레스폰던트(De Correspondent)’의 창립 멤버이자 전속 기자로 활동 중이다.

그는 ‘휴먼카인드’에서 인류의 보편적 속성이자,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바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매일 끔찍한 폭력과 인간의 이기로 가득 찬 뉴스를 접한다. 인종과 종교가 원인이 된 전쟁과 테러, 그리고 혐오로 벌어지는 각종 범죄, 이런 모습들이 어쩌면 우리 인간들이 악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원인이야 어떻든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우리 인간들이 악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대표적 재난 상황인 제1,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타이타닉호 침몰,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에서 어김없이 사람들은 죽음을 불사하며 타인과 약자를 도와온 사실들을 밝힌다.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군중심리’와 공황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선한 본성’에 압도당한다는 사실을 역사나 현실이 증명한다는 것이다.

파리대왕과 이스터섬, 실증연구와 현장답사로 오해를 풀다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하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하르 브레흐만.

뤼트하르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 서두에서 “인간 본성은 과연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불평등, 혐오, 불신과 같은 모든 비극의 기원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심리학, 진화생물학, 생물학, 인류학, 철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방대한 사료들을 뒤진 끝에 인간의 선한 본성에 관한 증거를 찾는다.

이 책의 묘미는 저자의 사료 실증연구와 적극적 현장탐사를 통해 이기적 인간 본성의 프레임을 만든 각종 문학작품과 인류학 연구에서 오류와 왜곡된 사실을 밝혀내는 탐구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브레흐만은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의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의 잔인한 생존기를 사람들에게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 믿는 사례로 자리 잡자 실제도 과연 그런지 사례를 찾아 나선다.

저자는 수개월의 문헌 조사와 탐문을 통해 실제 사례를 찾아낸다. 무인도에 고립되어 야만인으로 변해가는 소설 속 소년들과 달리 1965년 태평양 통가제도의 한 무인도에 15개월간 고립된 6명의 소년은 건강한 모습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고 생존에 성공했다.

소년들은 일을 공정하게 나눠서 했고 식량도 공평하게 나누어 먹었다. 다친 친구가 생기자 다른 소년들이 그 몫을 대신하기도 했다. 구조될 당시 소년들은 평화로운 모습의 초기 문명사회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에 브레흐만은 ‘파리대왕’은 소설 속 허구였음에도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 본성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과 믿음을 양산해 왔다고 지적한다. 계몽주의 시대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인간은 원래 악하다’고 보는 철학과 마키아벨리즘 등 오랫동안 인류사를 이끌었던 부정적 세계관도 함께 비판한다.

저자는 나아가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이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 등을 통해 벌목으로 황폐화된 섬, 서로를 잡아먹는 사람들의 섬으로 알려지고, 심지어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가 맞이하게 될 비극적 운명으로 비유되는 것에 의문을 갖는다.

그는 연구를 통해 이스터섬의 역사가 몇몇 학자의 왜곡된 저작물 때문에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발견한다. 또한, 왜곡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재러드 다이아몬드’처럼 저명한 학자들이 확대재생산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저자는 그런 오류들이 쌓여 인간 본성에 대한 오해를 고착시켰다고 주장한다.

브레흐만의 각종 원전에 대한 엄밀한 검토와 추리 과정 끝에 저자가 도달한 이스터섬의 진실에는 전쟁과 기아, 식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후변화와 같이 인류가 생존을 위한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한 이때, 저자는 이스터섬과 같은 숙명론적 혹은 비관론적 수사가 우리를 절망으로 마비시키는 노시보(nocebo, 부정적 믿음이 부정적 효과를 내는 결과. placebo의 반대 효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그리고 농업기술을 개발해 기근을 이겨낸 이스터섬 주민들의 실상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인간의 회복탄력성과 마르지 않는 희망의 힘을 믿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연대와 협력이 인류 발전의 힘

호모사피엔스가 더 큰 두뇌와 신체적 능력을 지닌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지구를 지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현 인류가 타인과 협력하고 공감하도록 진화해온 유일한 종으로서 모방을 통해 사회적 학습을 하는 ‘호모 퍼피(Homo Puppy)’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와 사회를 이루는 핵심 제도인 학교, 기업, 교도소 등은 인간이 악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설계되었으며, 이러한 부정적 사회화 과정은 개인과 사회의 내재적 동기를 약화시키는 동시에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불신은 엘리트 권력과 언론이 자신의 통제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며, 우리 스스로 권력의 통제 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협력과 연대로 이뤄온 호모 퍼피의 문명 속에서 부패한 권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이를 곧 냉소주의와 양극화, 배제와 이기심, 불평등과 관료주의를 지탱하게 하는 근본적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대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타고난 이기주의자라 가정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부추기는 정책을 옹호했다. 정치인들이 정치가 냉소적인 게임이라고 스스로 확신했을 때 그것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까? 지성과 이성을 활용해 새로운 제도를 설계할 수 있을까? (344~345쪽)

하지만 브레흐만은 암울하게만 보지 않는다. 지난 역사와 저자가 연구한 사례에서도 보듯이 인류는 선한 의지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는 것이다.

역사와 인류학 그리고 심리학의 주요 쟁점과 오류를 지적한 앞부분과 달리 책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자기개발서’ 흉내를 내며 책을 마무리한다. 독자들에게 위기를 이겨나갈 희망을 찾길 바라며 10가지 당부를 “삶에서 지켜야 할 열 가지 규칙”이라며.

뜬금없지만 ‘인간의 본성이 원래 착하다’는 저자의 선한 믿음과 ‘희망적인 미래를 건설하자’는 저자의 선한 의지와 절박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동안 인간이 악하다고 증명했던 사례들을 실증연구를 통해 반박하고 오류를 바로잡는다. 나도 저자의 주장이 옳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 세상에 어두운 장면들은 너무 많다. 저자의 주장처럼 권력과 언론이 자기들의 통제권을 행사하려고 네거티브 마케팅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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