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미국의 교통위반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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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미국의 교통위반 스티커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1.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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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보든, 보지 않든 교통 질서를 지키는 습관부터 가져야”

[조병수 프리랜서] 여름방학기간에 뉴욕문화원에서 인턴을 하게 된 둘째 딸 뒷바라지를 한다고 아내가 미국으로 건너가있던 2010년 7월의 어느 날,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세상이 많이 좋아진 덕분에 밤과 낮이 엇갈리는 외국에 있어도 인터넷전화를 이용해서 아침저녁으로 안부와 일상사를 전하며 지내고 있던 터지만, 평상시보다 조금 이른 시간인지라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아보았더니, 아침 잠이 덜 깬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일이 생겼다’고 했다.

“엄마가 아침에 친구네 아이들 학교에 태워다 주려고 나갔는데, 미국 경찰한테 걸려서 난리야.”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침에 아내의 친구대신에 그 댁 아이들을 등교시켜주고 오다가, 자동차전용도로 진출로에서 나오다가 경찰에게 단속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딸이 쓰던 차를 운전하던 아내가 ‘우선멈춤’ 정지선에서 완전히 정차하지 않고 속도만 줄여서 우회전하다가, 갑자기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거리고 사이렌을 울리면서 따라붙으니 많이 놀랬던 모양이었다.

경찰관에게 한국면허증과 국제면허증을 보여주었으나, '여권을 보자'고 하는데 지니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전에 그곳에 주재원의 가족으로 살 때는 신분증으로 면허증만 있으면 되었으니까 국제면허와 한국면허증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던 아내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차량등록증을 보자’고 하니까, 그것이 차 안에 들어있던 보험카드와 같은 서류철 뒤에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그 경찰은 그냥 스티커를 적어 내려갔다고 한다.

‘잠깐이지만 정지선에서 정지했고. 자동차전용도로 아래로 다가오는 차들이 안보여서 살펴보며 서서히 나아갔다’고 설명해도, 미국경찰이 스티커를 발부할 때 늘 듣게되는 ‘이의가 있으면 법정(court)에 가서 이야기 하라’는 말만 돌아왔고, 스티커를 여러 장 쓰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상황이 꼬여가는 것을 알아차린 아내가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통역 겸 차량등록증을 어디 넣어두었는지 경찰관에게 얘기하라고 휴대폰을 건넸던 것 같다.

딸이 그곳 경찰관과 통화하는 이야기들이 인터넷전화로 통해 이쪽으로 그대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차량등록증은 보험카드와 같은 서류철에 넣어 두었으니 확인해봐라. Photo ID(사진 있는 신분증)도 국제면허 등이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우선멈춤위반 건 외에는 괜찮지요?’라고 확인하는 딸의 말이 들리고, 잠시 후에는 그쪽과의 전화를 끊으면서 ‘자꾸 차량등록증을 늦게 보여줬다고 이야기한다’고 전해주었다.

곧이어 집으로 들어선 아내가 딸을 보자 말자 ‘눈물을 흘리며 방바닥에 주저 앉는데, 손에는 교통위반 스티커가 세 장이나 들려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멈춤 표지에서 제대로 안 멈추었다고 한 장, 외국면허인데 여권을 소지하지 않았다고 한 장, 차량등록증이 없다고 또 한 장, 이렇게 세 장이나 스티커를 받으니 충격이 컸을 만 했다. 더구나 속 시원히 상황설명도 못한데다가 미국경찰에게 잘못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노릇이라 대책 없이 그 스티커들을 들고 오자니, 아등바등하며 애들 뒷바라지하던 아내로서는 속이 엄청 따가웠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에 발급받았던 국제면허증을 다시 살펴보니까, 표지 뒷면에 있는 유의사항에 ‘외국에서 국제운전면허증으로 운전할 경우, 한국면허증과 여권을 함께 지참하지 않으면 무면허운전으로 처벌될 수 있으니 반드시 한국면허증과 여권을 함께 소지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전에 그곳에 살 때는 뉴저지 주 운전면허를 발급받아서 신분증으로 통용했으니, 미국에서만은 면허증만 있어도 되는 줄로 쉽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미리 그런 경고문구를 챙겨서 주의를 환기시키지 못한 것이 나의 불찰이었다.

▲ /사진=조병수 프리랜서

어쨌거나 스티커를 세 장이나 받아왔으니 억울하기도 하고 벌금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잠깐 체류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냥 벌금만 내면 속은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선멈춤위반을 제외하고는 어차피 법원에 가야 한다니까 세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가서 선처를 부탁하는 것이 나을 것 같긴 했다.

미국에서 지내다 보면 현장에서 인정사정 없이 스티커를 발부하고는 ‘이의 있으면 법원으로···’라는 것이 너무 행정편의주의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필요한 현실적인 대안 일 것이고, ‘법정에 서면 그래도 판사가 조금이나마 벌금도 경감해 주고 벌점도 유리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그곳에 사는 동포들로부터 종종 들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저지 주 운전자 매뉴얼에 보면, ‘외국면허를 소지한 단기체류자(visitor)는 유효한 외국운전면허와 영어로 번역된 국제운전면허를 가지고 운전해야 된다’고만 되어있었다. 여권의 소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전혀 없는데 무슨 근거로 법규위반코드가 ‘무면허’로 되는 것인지 항의해 볼 여지는 있다고도 생각되었다.

마음이 급해진 아내는 하루 만에 법원에 전화해서 참석 가능한 법정 개정시간까지 받아버렸다. 그렇게 타국 땅에서 판사에게 하소연하는 아내의 노력으로, 3백불이 넘던 벌금이 50불로 깎였다니 다행이긴하지만, 이런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것은, 남이 보든 안보던 기본질서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위반행위가 있었다는 곳 주변을 살펴보았더니, 진출로의 정지선에서 자동차전용도로 밑을 지나오는 차가 잘 안 보이기는 하겠으나, 아무래도 한국에서의 운전습관대로 완전정차(full stop)를 하지 않고 움직이다가 생긴 일이 분명해 보였다.

여러 해를 미국에서 살았던 나도 몇 년 만에 다시 미국에 가서 운전을 할 때엔, 나도 모르게 정지선에 바짝 붙어서 있거나 선을 넘어서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실소를 금치 못한 적이 있다. 옆의 차들이 정지선 앞에서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점잖게 서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그 ‘조급함’에 쑥스러워할 정도로 습관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 /사진=조병수 프리랜서

그런 일을 겪은 지 몇 년이 흐른 후, 귀국한 둘째 딸의 직장이 있는 인천 송도로 옮겨와서 살고 있다. 바다를 메운 땅에 인적도 드물던 거리를 많은 사람들이 나다니고, 여기저기 고층아파트들과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휑하던 거리에 자동차가 붐비고, 널찍한 큰길을 제한속도 60km를 지키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을 정도로 내닫고 있다.

눅눅한 날씨와 황사에 싸인 희뿌연 하늘을 빼면 제법 괜찮은 도시인 이곳에 산지도 벌써 2년이 넘는데, 아직도 횡단보도를 지나려면 겁이 난다. 교차로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파란색 보행신호가 떨어져도 전혀 개의치 않고 달려오는 우회전차량들을 조심스레 살피며 길을 건너야 한다. 국제도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보행신호를 보고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차가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건넌다.

 

이를 지켜볼 때마다 지난 날 미국에서 ‘완전정지 미이행’을 단속하던 경찰의 역할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범죄와 무질서의 온상이던 뉴욕 시를 경범죄와 도로교통법위반부터 단속하여 바로잡아 나갔다는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이제는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될 일들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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