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지표금리 개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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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지표금리 개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1.04.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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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사라질 리보(LIBOR)금리...이제 관산(官算) 금리시대로
한국도 RFR을 지표금리로 최종 선정...3분기중 예탁결제원이 산출·공시 시작
코리보, 코픽스 등 즉흥적으로 만든 지표금리는 퇴출시켜야...장내 RP시장도 닫아야
한국은행은 예탁원에만 맡기지말고, RP 거래 통해 RFR 금리 결정과정에 개입해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경제용어의 하나가 LIBOR(London Interbank Offered Rate)다. 런던 소재 주요 금융기관들끼리 단기자금을 주고받을 때 적용하는 금리를 말한다. 그것을 취직준비생들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LIBOR는 런던을 떠나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을 때도 LIBOR가 차입금리의 기준이 되었다. LIBOR를 이용한 파생금융상품들도 즐비하다. 그 거래규모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0배가 넘는다.

그렇게 중요한 LIBOR가 안락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이 LIBOR 대체금리 개발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글에서는 그 배경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융위원회가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초기에는 한국은행과 함께 공조하는 듯 했으나 최근에는 한은만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 지표금리의 정리나 관련 시장 정비 등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검토에서 배제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통과의례로 끝나기 쉽다.

LIBOR는 무정부주의의 산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화가 명실상부한 기축통화로 등극했다. 그러나 동구 공산권 국가들이 자신들의 달러자산을 미국에서 굴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국이 아닌 런던에서 자금을 굴렸다. 1970년대에는 산유국들이 오일 머니가 런던으로 쏟아졌다. 그렇게 해서 런던은 미국 밖에서 떠돌아다니는 달러 즉, 유로달러(eurodollar)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국의 영역도, 영국의 영역도 아닌 런던 유로달러 시장은 그야말로 현대판 소도(蘇塗) 또는 도피성(city of refuge)이다. 거기서 결정되는 LIBOR는 국가의 주권보다 시장의 원리가 지배하는 무정부주의의 산물이다(eurodollar를 소문자로 쓰는 것에 주의하라. 여기서 euro는 특정 대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아닌 모든 곳’이라는 뜻이라서 소문자로 쓴다).

LIBOR가 무정부주의적 성격을 띠다보니 그것을 집계하는 주체도 민간이 맡는다. 과거에는 영국은행연합회(BBA)가 담당하다가 최근에는 국제 통신사인 톰슨 로이터스(Thomson Reuters)사가 매일 오전 11시 경 런던의 200여 개 조사대상 은행(panel banks)들에게 물어 산출한다. 조사대상 은행의 선정 기준은 없고, 일부 대형 은행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나친 자유방임이고, 돌아보니 그것이 문제였다.

LIBOR 스캔들과 나비효과

2007년 8월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가 지급정지를 선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조였다. 그로 인해 전 세계 금융시장이 일제히 경색되었지만, LIBOR는 비교적 안정을 보였다. 당시 외환시장에서 일어나는 실제 거래 속에 잠재된 금리(implied interest rate)보다 2% 포인트 이상 뚜렷하게 낮은 현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었다. 세상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월스트리트저널지(WSJ)의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미 재무부와 뉴욕 연준의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 결과 일부 대형 은행, 특히 유럽계 은행들이 담합해서 금리를 동결해 왔던 것이 밝혀졌다. 그 이유는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조달금리를 낮추려던 데 있었다. 사람들을 그것을 조작(rigging)이라고 불렀다.

뉴욕 연준의 조사결과
뉴욕 연준의 조사결과

조작의 결과는 매서웠다. 금리담합을 주도한 버클레이즈은행에 대해서는 미국의 상품선물위원회(CFTC)가 2억 달러, 법무부가 1.6억 달러, 영국의 금융감독원청(FSS)이 2.9억 파운드의 벌금을 각각 부과했다. 도이체방크, 로얄스코틀랜드은행, JP모건, 라보방크(네덜란드) 등 금리 담합에 가담했던 다른 은행들에게도 각국 감독당국이 엄청난 벌금을 부과했다. 때마침 월스트리트 점거운동(Occupy Wall Street)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때라서 민심은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 선진국들은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1980년대까지는 각국 정책당국이 여수신 금리를 직접 통제하는 ‘관치(官治)금리(Regulation Q)’의 시대였다. 그러면서도 LIBOR의 영향으로 시장금리의 조사와 발표는 민간에게 맡겼다. EURIBOR(유럽), TIBOR(일본), HIBOR(중국), SIBOR(싱가폴), STIBOR(스웨덴) 등이 그 예다. 그런데 LIBOR 스캔들을 겪고 난 뒤 큰 허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2013년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는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무위험금리(risk-free rate)의 산출이 방치되어 왔다고 판단하고, 이의 개발·산출·공표에 정책당국이 개입할 것을 결정했다. 바야흐로 ‘관산(官算)금리’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2019년 8월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20여개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회의체(대체지표개발 작업반)를 구성했다. 그리고 2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쳐 지난 2월 말 국채·통안증권을 담보로 한 RP거래의 금리 즉, RFR(risk-free rate)을 지표금리로 최종 선정했다. 금년 3분기 중 한국예탁결제원이 RFR의 산출·공시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금은 나머지 기술적인 문제를 두고 후속작업이 진행 중이다.

영국의 민간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정보를 돌리면 만들었던 리보 금리 체계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앞으로는 정부가 관여한 지표금리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
영국의 민간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정보를 돌리면 만들었던 리보 금리 체계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앞으로는 정부가 관여한 지표금리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

관제성 지표금리는 정리해야

그런데 우리나라의 계획에는 한계가 있다. 주요국의 움직임과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다. 바로 기존 ‘관제(官制)’ 지표금리의 정리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CD 유통수익률(금융투자협회 공시)이 자생적으로 지표금리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금융감독 당국의 예대금리 감시 등으로 CD 발행량이 들쑥날쑥하다보니 CD 유통수익률이 금융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2004년 7월에는 한은이 코리보(KORIBOR)를, 2010년 1월에는 금융위가 코픽스(COFIX)를 각각 만들었다. 현재 두 지표금리의 산출과 공시는 모두 전국은행연합회에게 맡겼다. 연합회가 매일(KORIBOR) 또는 매월(COFIX) 공시한다.

조만간 등장할 RFR은 세 번째 관제 지표금리다. 별도의 조치가 없으면 이것 역시 코리보와 코픽스의 전철을 밟기 쉽다. 잠깐 주목을 받다가 관심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RFR의 대표성과 활용도를 높이려면, 기존 관제 지표금리의 퇴출계획을 함께 검토하고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지표금리가 하나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화지표나 물가지수도 여러 종류가 있고, 각각의 특장이 있다. 그래서 자생력만 갖추면, 여러 개의 지표금리가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관제 지표금리들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져서 신뢰성과 자생력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코리보는 어차피 사라질 운명이라고 보인다. 원조 격인 LIBOR가 금년 말로 사라질 예정인데, 한국만 KORIBOR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금융위가 만든 코픽스다. 코픽스는 은행들의 조달금리를 가중평균한 것인데, 그것을 은행연합회가 매월 산출하는 것은 어색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매월 회원사들의 제조단가를 뒷조사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는 이유와 근거를 찾기 어렵다.

코픽스는 이론적으로도 터무니없는 개념이다. 은행의 가장 대표적인 조달수단은 예금이고, 예금은 다수의 점포를 통해 소매방식으로 수입된다. 그래서 예금금리에는 은행의 임대료 등 고정비용(fixed cost)과 인건비, 광고비 등 비금융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결국 코픽스는 가격 결정의 기준이 되는 한계비용(marginal cost)과 거리가 멀다. 

정부가 여러 차례 코픽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으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정부는 코픽스를 만든 직후 코픽스를 자화자찬했다. 기존의 CD 유통수익률보다 낮아 서민들의 부담이 줄어드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당연한 현상이다. 평균 조달금리(COFIX)는 시장금리(CD 유통수익률)보다 낮되, 느리게 움직이는 속성이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변동금리부 대출에서 평균 조달금리를 지표금리로 삼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금융위는 외국의 사례를 별로 살피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코픽스를 고안했다고 보인다.

RP시장의 정리도 함께 검토해야

금융위가 돌아봐야 할 것은 또 있다. 새로운 지표금리 RFR은 한국예탁결제원이 산출·공시할 예정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이미 2012년 7월부터 RP 거래금리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여기서 RP거래라 함은, 증권사의 중개로 장외시장에서 체결되는 거래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1년 한국거래소 안에 ‘장내 RP시장’ 개장을 허가했다. 이 시장은 개장되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RP거래는 전형적인 단기 자금거래이며, 증권거래소가 RP거래를 주선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시장법과 상충되기도 한다. RP거래 자체는 유가증권이 아니라서 상장할 수도 없으며, 상장되지 않은 금융상품의 거래를 체결하는 것은 한국거래소 설립 목적에 위배된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RP시장의 활성화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우며 ‘장내 RP시장’을 우격다짐 식으로 허가했다.

그때 금융위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예로 들었다. 스위스는 증권거래소(SIX)가 RP거래 플랫폼(CO:RE)을 운영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플랫폼은 법률적으로 증권거래소의 자회사(SIX Repo Ltd)이고,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금융상품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힘들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장외 중개회사가 전용 플랫폼을 통해서 RP거래를 중개할 뿐, 장내 RP시장은 없다. 한마디로 금융위는 헛다리를 짚었던 것이다.

장내 RP시장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도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그런 마당에 금융위는 ‘장외 RP시장’에서 형성되는 금리를 우리나라의 대표적 무위험금리의 지표로 삼으려고 한다. 자가당착이다. 차제에 ‘장내 RP시장’을 정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것은 RFR 선정을 주도해 온 한은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요,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금융위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은행 역할과 기여방안 연구도 필요

한국은행이 할 일도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새로운 지표금리의 선정·산출·공시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미 연준은 지표금리가 통화정책의 효율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밝히면서 2018년 4월부터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 즉, 국채를 담보로 한 하루짜리 실제 RP 거래금리를 산출·공개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영국은 SONIA(Sterling Overnight Interbank Average rate), 일본은 TONA(Tokyo Overnight Average rate), EU는 ESTER(European Short Term Rate), 중국은 DR(Depository Institutions RP rate)를 무위험 지표금리로 삼고 중앙은행들이 산출·공시할 계획이다.

이에 비하면 한은은 무위험 지표금리 산출과 공시에서 역할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지표금리 선정 논의를 주도해 왔지만, RFR의 산출과 공시는 앞으로 한국예탁결제원이 담당한다. 한은이 빠져나가면서 RFR은  민간기관들끼리 알아서 생산하고 발표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외국의 움직임과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한은은 RFR의 산출과 공시에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 한은의 공개시장운영이란 다름 아닌 장외에서 독자적인 RP 시장을 운영하는 것이고, 한은의 RP 금리는 다른 장외시장에서 형성되는 RFR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화신용정책의 효율성 차원에서 한은은 RFR을 피상적으로 살피지 말고 한국예탁결제원의 산출과정까지 깊숙이 파악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금융위와 협력해 그 법적 장치까지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한은이 RFR 형성에 기여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통안증권의 일부를 1일~3개월물 RP거래로 전환하고 매일 또는 매주 정례 RP거래 입찰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금융기관 간 단기 RP 거래에서 한은의 RP 금리가 중요한 참고지표가 된다. 현재 덴마크가 그렇게 하고 있다. 요컨대 RFR은 한은의 관찰 대상일 뿐만 아니라 통화신용정책의 집행 결과라는 말이다. 금융시장을 향한 한은의 기여에는 제한이 없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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