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나빌레라, 발레 배우는 할아버지가 그려내는 현대의 노인상(老人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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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나빌레라, 발레 배우는 할아버지가 그려내는 현대의 노인상(老人像)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01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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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엔가 이런 노인이 진짜 있다면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드라마
박인환의 '덕출' 연기, 연예 미디어들마다 호평 일색
관록과 현명함, 인자함 보여주는 노인 많이 만났으면 소망도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합니다. 제작자나 당사자의 뜻과 다른 '오진' 같은 비평일 수도 있어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어떤 드라마에 평범하지 않은 노인이 나왔다. 칠순을 넘기자 오랜 꿈이었던 발레를 배우려 하는 노인이다. 평범하지 않지만 존경스러운 면이 있다. 마음속에 지녀만 왔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가 존경스러운 거다. 

tvN 드라마 ‘나빌레라’를 말하는 거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인기를 발판으로 했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제작하고 방영하는 제작사와 방송국의 용기를 칭찬하고 싶다. 노인이 극을 끌고 가는 드라마는 많이 있었지만 ‘나빌레라’처럼 전형적이지 않은 노인은 처음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노인은 주변부 인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부모나 조부모 혹은 회사의 회장님 등 젊은 주인공의 배경으로서 소모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나빌레라’는 어릴 때부터 발레라는 꿈을 놓지 않은 건 물론 용기를 내어 발레교습소 문까지 여는 용감하고 적극적인 노인을 그리고 있다. 

tvN 드라마 ‘나빌레라’ 포스터. 출처= tvN
tvN 드라마 ‘나빌레라’ 포스터. 출처= tvN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루던 노인의 모습은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하더라도 젊은 사람 시점에서 바라보는 관습적인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오말순(나문희 분)이 대표적이다. 홀로 된 몸으로 아들을 교수로 키워낸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녀지만 사실은 가정 분란의 원인을 제공한 주책없는 할머니일 뿐이다. 

회한에 찬 그녀를 구해주는 건 영화적 마법으로 젊은 여인 오두리(심은경 분)로 변하고부터다. 젊고 매력적인 여인이 된 오두리, 사실 오말순은 젊어진 몸으로 새로운 인생을 경험한다. 

무척 재미있고 감동까지 주는 영화이지만 사실 노인들이 젊음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배경에 깔고 있다. 노인은 나이가 들면 자녀들에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부족한 인간으로 그린다. 또한, 미성숙하기에 다시 젊어지고 나서야 인생을 제대로 관조할 수 있게 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장수상회’의 성칠(박근형 분)도 상징적이다. 성칠은 가족을 위해 평생 열심히 일한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 모습이다. 다만 나이가 들고 치매가 들었다. 성칠의 아내인 금님(윤여정 분) 역시 가족을 위해 헌신한 한국의 어머니 모습이다. 다만 나이가 들고 중병이 들었다.

성칠과 금님에게는 자기 자신보다는 항상 가족이 우선이었다. 무엇을 위해 평생을 그렇게 달려왔는지 영화는 단편적으로밖에 그리지 않는다. 그 외에도 이순재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로망’이나 ‘덕구’에도 가족에 헌신적인 노인이 나오고, 나이가 들어 많이 아픈 노인이 나온다.

그런데 나빌레라에 나오는 심덕출(박인환 분)은 자기 속으로만 간직했던 목소리를 가족과 타인이 듣도록 외친다. “발레를 배워야겠어.” 그리고 실천한다.

tvN 드라마 ‘나빌레라’의 한 장면. 출처= tvN 드라마 ‘나빌레라’ 캡처
tvN 드라마 ‘나빌레라’의 한 장면. 출처= tvN 드라마 ‘나빌레라’ 캡처

왜 하필 발레였을까

우편배달부로 퇴직한 덕출에게 발레는 객석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꿈이었다. 감상만 해도 좋을 텐데 그는 칠순이 넘어서 직접 배우려고 한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를 발레교습소 사람들은 처음에는 난감해하지만 서서히 덕출의 진심을 받아들인다. 

발레는 평소 쓰는 근육이 아닌 다른 근육을 써야 하고 관절의 저항도 견뎌야 한다. 무엇보다 중력을 이겨야 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발레는 평범하지 않은 노인의 꿈을 표현하기에 좋은 소재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드라마 ‘나빌레라’는 발레를 배우는 심덕출이라는 캐릭터를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를 잘 버무려내는 할아버지로 묘사한다. 

우선, 덕출은 더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끝내 실천해내는 관록의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남주인공이자 덕출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이채록(송강 분)의 매니저를 맡은 덕출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어진 일들을 수행한다. 그런데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현명한 노인으로 그려진다. 

또한,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에게 서서히 공감을 얻으며 신뢰를 쌓아가는 인자한 할아버지로 나온다.

‘관록’, ‘현명함’ 그리고 ‘인자함’은 한때 우리 기억 속 웃어른이 가졌던, 혹은 이 사회가 최고 선배 세대에게 기대한 덕목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뉴스 미디어에 비치는 노인들은 과거 지향적이고, 폭력적이며,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모습으로 비칠 때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노인들이 더 많겠지만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동떨어진 노인들이 많다는 걸 반영한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나빌레라’는 발레라는 꿈을 이루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공감까지 얻는 심덕출을 통해 어쩌면 우리 사회가 바라는 노인상(老人像)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덕출은 발레교습소를 찾아가 말한다. “난 한 번도 해보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제야,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고요. 그래서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발레를 반대하는 부인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죽기 전에 한번 날아오르고 싶어.”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이루지 못할 꿈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 ‘나빌레라’와 덕출(박인환 분)의 연기를 다루는 연예 미디어가 많다. 호평 일색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관록과 현명함, 그리고 인자함을 보여주는 노인들을, 또한 긍정적인 영향을 우리 사회에 전하는 노인들을 많이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건 아닐까. 나부터라도 그렇게 늙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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