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코로나 방역: 한국의 집단주의와 미국의 개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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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가 본 한국 사회와 문화] 코로나 방역: 한국의 집단주의와 미국의 개인주의
  •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 승인 2021.04.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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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역 전쟁, 한국은 집단주의 강점 발휘...미국, 개인주의로 참담한 결과
한국 '눈치보기' 문화에 새로운 해석해볼만..."마스크 안쓰면 눈총"이 방역에 효과
미국은 '강한 개인' 드러내는 자유주의 문화...마스크 착용, '약한 개인'으로 비쳐짐 
한국 민주주의, 가족주의적 집단주의와 눈치 문화의 강점 승화시켜야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강타한 지 거의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2021년 3월 31일) 전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누적 확진자는 약 1억 3천 명에 이르며 이들 중 미국의 확진자는 3백만 명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미국의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약 4%에 이르는데 전 세계 확진자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처참한 상황이다. 미국의 누적 사망자는 약 56만 명을 넘었으며 전 세계 부동의 1위이다. 한국은 인구대비 확진자 비율과 사망자 발생률이 미국의 100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과 한국이 왜 이렇게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을까?

전쟁과도 같은 상황....'리더십과 팔로우십'

코로나 방역을 흔히 전쟁에 은유하곤 한다.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1) 방역 시스템과 공공 의료 제도와 인프라 구축 2)대통령의 리더십(leadership)과 정부 관료들과 방역 전문가들의 충실한 역할 3)국민들의 성숙한 팔로워십(followership)과 방역 노력과 협조가 필요하다. 1번과 2번은 한국과 미국 미디어에서 이미 분석이 많이 이루어져 있으므로 필자는 언어문화학자의 시각에서 3번을 주목해서 분석하고 그 시사점을 논의해 보려고 한다. 

무릇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도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공동체가 보이는 행동의 이면에는 구성원들의 보이지 않는 저변의 의식과 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은 전형적인 집단주의 성향의 사회다. 집단주의의 장점은 집단의 화목과 공동 목표 추구를 위해서 개인의 개성과 이익 추구를 지양해 강한 단결력과 추진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코로나 방역 전쟁에서 한국 사람들은 이 집단주의적 성향을 승화시켜서 강점을 발휘했다. 반면 미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회다. 미국은 지도자의 무능과 지도력 부재로 개인주의의 성향이 더욱 부정적으로 작용해 참담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지난해 대구지역에 집단감염사태가 발발했을때 군인장병들이 방역작전을 펼쳤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3월 대구지역에 집단감염사태가 발발했을때 군인장병들이 방역작전을 펼쳤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인의 '눈치보기', 새로운 평가 받을만

한국이라는 공동체 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눈치’를 보며 산다. 눈치는 전체 집단의 화목과 단합을 위해서 그 분위기를 읽는 능력을 뜻하는데, 집단주의 성향의 당연한 결과이다. 한국 사람들은 독자적 자아(independent-self)보다 관계적 자아(relational-self)를 훨씬 중시여기는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단 속에서 남의 표정을 살피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읽는 능력, 즉 눈치가 발달하게 된다.

과거에 한국이 못살고 사대주의의 폐해로 민족적 및 국가적 자존감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눈치를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만 인식했다. 지나친 눈치로 개인을 존중하지 못하고 개성을 발휘할 수 없는 비민주적인 풍토를 만들기에 한국 문화를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문화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방역 전쟁 경험은 이 눈치 문화를 다시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코로나 방역 전쟁 수행 중 개성을 내세우며 마스크도 안 쓰고 그냥 친구들과 술자리에 가고 싶어도 눈치가 보이기에 자신을 자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전통 시장 등 공공 장소에서 한국 사람들이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란다. 

한국에서는 집단 속에서 개인을 누르는 겸손과 눈치가 미덕이지만 미국에서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집단 속에서 한 개인의 차별성과 우수성을 드러내는 자신감 표출이 미덕이다. 미국 사람들은 마스크를 터부(taboo)시하는 특유의 문화 탓도 있지만 ”나는 다르다(I'm different)"라는 자기 과시 욕구가 강해서 마스크를 쓰면 자신의 약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인은 '강한 개인' 드러내기가 자연스러워

우리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러스로 매일 자국민 수천 명이 죽어가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기자 회견장에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며 혼자 강한 척 온갖 거만을 떠는 것이 이해가 안 가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그의 그런 행동을 ’강한 개인‘의 모습으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재선 전략으로 개인주의와 자유를 신봉하며 경제적 부의 증진을 맹신하는 자신을 지지하는 백인우월주의 극우 세력들의 호감과 지지를 얻으려 했다.

이를 위해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봉쇄 정책이 심해질 것이라고 위협하고 계속 바이러스 경시 풍조를 살포하며 분열을 조장했다. 결국 리더십이 붕괴되고 미국 사회 전체가 극단적인 분열과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고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희생되는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성향의 차이는 질병에 대한 저변 인식에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 미디어들은 미국사람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전염병이나 감염병이 유행할 때도 병에 걸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이런 시각을 갖게 된 데에는 병에 걸리는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상태에 놓인 노예나 가난한 이민자들이라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한국에서 전염병이나 감염병에 걸렸을 때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책임이 아니라 함께 노력해서 싸울 대상으로 보는 인식과 대비된다. ‘병에 걸리면 소문을 내라’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서는 누가 병에 걸리면 공동체의 일로 생각하고 좋은 치료방법도 함께 찾고 서로 돕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이런 전통과 문화의 바탕에는 집단주의의 건강성 즉 집단을 아끼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어른들의 독려에 마스크를 불태우는 미국 아이다호주의 아이들. 사진= 연합뉴스
어른들의 독려에 마스크를 불태우고 있는 미국 아이다호주의 아이들 최근 모습. 사진= 연합뉴스

한국에서는 '병에 걸리면 소문내라'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성향의 차이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위기 대처 의식에 있어서도 두 나라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미국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초연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러나 미국인들 인식의 저변에는 최근 미국 현대사의 사회환경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미국의 한 언론인은 미국 사회에서 총기 사고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많이 죽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모습은 한국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생기면 모든 국민들이 한 가족처럼 애도하고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사회 분위기와 크게 대비된다. 한국이 오랜 침략과 핍박의 역사 속에서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함께 위기를 극복해 온 저력에는 바로 모든 국민을 한 가족으로 생각하는 가족주의와 국가적 위기 속에서 모든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집단적 연민이 깔려 있다. 

이번 코로나 방역 경험은 우리가 미국을 무조건 숭상하는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제 서구적 자유주의를 무조건적으로 숭상하던 시대는 갔다.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이고 세계 6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화 선진국이다. 특히 이번 코로나 방역 전쟁 경험을 통해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와 눈치 문화는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올곧은 민주주의와 결합할 때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집단주의의 치명적 약점인 개인 파괴를 막고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체제와 환경을 창조한다. 이 깨달음은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바탕으로 한국 특유의 가족주의적 집단주의와 눈치 문화의 강점을 승화시킨 사회문화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

●필자인 이창봉 가톨릭대 영문과 교수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동 대학원 영어학 석사) 졸업 후 미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언어학 박사(세부전공: 화용론(Pragmatics)) 학위를 받았다. 주로 조건절(Conditionals) 연구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최근에는 은유(metaphor)를 통한 인간 본성 탐구와 언어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 관련 주제 연구를 해왔다. 영어와 미국문화 관련 글과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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