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부족' 車 반도체..."국산화만이 해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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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부족' 車 반도체..."국산화만이 해법 아니다"
  • 정세진 기자
  • 승인 2021.03.25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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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타임스 "4월 중 현대차그룹 생산차질 불가피"
홍남기 부총리, 내년까지 200억 투입 반도체 R&D 지원
일본,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율 높아도 수급부족 영향 받아
파워트레인용 MCU 등 전기차 시대에 불필요한 반도체도 있어
"수급 부족은 시장이 해결, 부품 공급선 다각화 등이 현실적 대안"
2022년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이 출시하는 모든 차량에 탑재될 예정인 엔비디아 칩. 현대차그룹 제공
2022년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이 출시하는 모든 차량에 탑재될 예정인 엔비디아 칩.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인해 최대 올해 3분기까지 완성차 생산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를 추진하기로 밝힌 가운데 이 같은 투자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는 최근 반도체 기술개발에 직접 나서 차량용 반도체 자립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내년까지 200억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기술개발(R&D)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차량용 반도체를 국산화한다는 정부 계획이 성공 가능성도 낮지만 성공한다 해도 전기차 시대에 변화하는 기술수요 등을 감안할 때 시장성 역시 보장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우선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비중을 늘리는 정부 정책이 현재와 같은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예방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국내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원인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 기업) 공급 부족”이라며 “지난해 초중반까지만 해도 파운드리 업체의 평균 가동률이 70% 중반대였는데 당시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이 주문량을 줄였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량용 반도체. 자료=삼성전자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 매출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9.6% 줄어든 380억달러(약 43조원)를 조금 웃돌 것으로 집계했다. 

완성차 판매량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차량용 반도체 기업이 파운드리에 주문량을 줄였다. 이 시기 스마트폰, PC 등 IT 제품용 반도체 생산이 늘면서 현재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에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생산 라인을 만드는데 최소 수조원의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도체 설계와 제조의 분업화는 필연적이다. 정부 계획대로 주요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에 성공해도 시장 수요를 잘못 예측하면 경우 또 파운드리 가동상황에 따라 다시 반도체 부족으로 완성차 생산 차질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3위 업체인 르네사스가 도요타, 닛산, 혼다 등에 반도체를 공급하지만 전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피해갈 수 없었다. 

차량용 반도체를 설계하는 넥스트칩은 영상 인식 관련 반도체를 설계한다. 사진=넥스트칩 홈페이지 캡처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기에 있는 자동차 시장을 고려하면 차량용 반도체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머뭇거리는 이유다.  

완성차 한 대에는 200~300여개의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이중 완성차 업체들이 극심한 부족을 겪고 있는 반도체 중 하나가 바로 내연기관 엔진 구동을 제어하는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용 마이크로컨트롤러(MCU)다. 

차량 주행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엔진 곁에서 고온에 장기간 노출된 상태에서도 정상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내구성과 안정성을 요구한다. 

문제는 높은 안전 기준탓에 국산화가 쉽지도 않지만 어렵게 국산화해도 양산할 쯤에는 전기차가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내 팹리스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차량 모델을 설계 하기전에 어떤 반도체를 쓸지 미리 정하는데, 차량 설계를 끝낸 후에 안전 검증을 거쳐 양산까지는 보통 4년이 걸린다”며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차량용 반도체 하나를 만드는데 최소 200억원 이상 필요한 상황에서 선제 투자 비용 회수까지는 7~8년이 걸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현재 쇼티지(공급부족)의 핵심인 파워트레인용 MCU를 만드는 우리 기업은 없다”며 “엔진 대신 모터를 쓰는 전기차에는 엔진용 MCU는 필요하지 않고 자율주행용이나 배터리 관련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기적 관점에서 반도체 국산화 대신 인수 합병 또는 공급선 다양화로 현재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쉽고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를 국산화하려는 노력보다 상대적으로 시장성이 확실한 자율주행이나 배터리관련 반도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현재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은 시장이 결국 해결할 것”이라며 “디스플레이, 섀시 동작 제어 등 기술 난이도가 낮은 제품 개발에 집중하는 대신 완성차 업계의 부품 공급선 다각화 등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4일(현지시간) "현대차가 지난해 반도체 재고를 많이 확보해 둔 덕에 현재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그러나 4월부터는 생산이 중단될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의 GM은 반도체 부족으로 중형픽업트럭 생산을 중단한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올해 초부터 폭스바겐, 포드, 도요타, 혼다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량 감소나 공장 폐쇄를 단행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반도체 수급에 여유가 있었던 현대차그룹마저 생산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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