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방역 모범국이었는데...메르켈은 왜 사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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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방역 모범국이었는데...메르켈은 왜 사과했을까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1.03.25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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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봉쇄 연장 조치 내놓은지 36시간만에 '없던 일로'
보건 전문가·재계 일제히 반발..."감염 위험 높이고 경제적 손실 상당"
메르켈 총리 "전적으로 내 실수...시민들에 용서를 구한다"
오락가락 정책에 메르켈 지지도 급락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4일(현지시간) 부활절 봉쇄조치 연장안을 철회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진=연합뉴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4일(현지시간) 부활절 봉쇄조치 연장안을 철회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이 실수와 잘못은 전적으로 내탓이다. 모든 시민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4일(이하 현지시간)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부활절 휴일을 연장하고 전국 봉쇄령을 내린지 불과 이틀만이다.

메르켈 총리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부활절 봉쇄 연장 조치는 모두 없던 일이 됐다.

한 때 방역 모범국으로 칭송을 받았던 독일이 이제는 오락가락 정책으로 비난을 받고, 급기야 메르켈 총리가 대국민 사과에 나서기까지 했다. 독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찬사 받던 메르켈의 보기드문 U턴...방역 모범국의 위기

앞서 지난 22일 메르켈 총리는 연방정부와 16개 주총리 회의에서 무려 21시간의 논의 끝에 내주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부활절 연휴를 기존 3일에서 5일로 연장키로 했다.

이같은 결정은 최근 독일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진 데 근거한 결정이었다. 

독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독일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1만5813명에 달했고, 특히 신규 감염자 중 절반 이상이 전염성이 더욱 강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일주일간 인구 10만명당 신규 확진자 수는 108명을 기록했다. 독일 정부는 일주일간 인구 10만명당 신규 확진자 수가 3일 연속 100명을 넘으면 '비상 브레이크'를 작동해 봉쇄조치를 강화키로 한 바 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이같은 결정은 극심한 반발에 직면했다. 이미 오랜 기간 봉쇄조치를 이어온 탓에 국민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한 탓이다.  

보건 전문가들과 재계 지도자들 역시 메르켈 총리의 결정에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부활절 연휴 봉쇄조치가 연장될 경우 식료품 가게와 슈퍼마켓 등은 제한된 시간에만 영업을 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은 더욱 높아지는 반면, 봉쇄에 따른 국민들의 경제적 손실도 상당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메르켈 총리는 결국 봉쇄조치 연장안을 내놓은지 불과 36시간만에 이를 '없던 일'로 했다. 한 때 방역 모범국을 이끌었던 독일의 수장으로서는 보기 드문 'U턴'을 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CNBC는 "유럽 대륙을 이끄는 지도자이자, 위기 때마다 안정적인 손을 내밀던 리더가 보기 드문 'U턴'을 했다"며 "이는 코로나19 초기 확산 당시 찬사를 받았던 독일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새로운 도전과 우려에 직면했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독일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신속한 코로나19 검사와 추적, 격리 등을 실시하면서 유럽 이웃국가들에 비해 코로나19 확산에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존스홉킨스 대학에 따르면 독일은 270만명의 누적 확진자와 7만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430만명의 확진자와 12만6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영국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철저한 방역과 동시에 백신 보급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독일 내 코로나19가 진정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예상외로 백신 보급은 지지부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몇주간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가 독일에서 확산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백신 접종 인구는 10% 미만"이라며 "독일 정부의 관료주의와, 유연성 부족이 이같은 일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독일의 경우 전체 인구의 9.5%가 1회 접종을 마쳤으며, 4.2%가 두번째 접종까지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54%가 최소 1회 접종을 마친 것으로 보고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부진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 역시 "독일 내 관료주의가 너무 만연해있고, 디지털화가 너무 부족하다"며 자국의 체계를 비판한 바 있다. 

독일 정부는 혼란스러운 정책 역시 백신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NYT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관련한 정책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독일 정부는 지난주 혈전 발생 위험 우려로 인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후, 유럽 보건당국의 '안전하다'는 평가 이후 접종 재개로 방향을 틀었다.

중단과 재개가 이어지면서 백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더욱 약해졌다는 것.

특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사용 연령도 처음에는 64세 이하의 성인으로 규정했다가, 몇주 만에 65세 이상으로 확대키로 한 점 역시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약화시켰다고 NYT는 설명했다. 

안드레아 뢰멜레 헤르티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해에는 진정한 리더십과 정기적인 의사소통의 완벽한 조합이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3차 확산 시기에는 의사소통의 일관성이 모두 잊혀지고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신뢰 낮춘 오락가락 정책에 메르켈 지지도도 급락 

이번 메르켈 총리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진 사과"였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지만,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인 세력은 약해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메르켈 총리의 이례적으로 솔직한 사과는 존경과 공감을 얻을 수 있겠지만, 향후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주간지 디자이트는 "메르켈 총리는 이제 자신도 생각해보지 않은 제안들을 밀어붙이는 아마추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일간지 타츠는 "이번 유턴을 통해 레임덕을 확인했다"며 "부활절 연휴를 연장하는 아이디어는 혼란스러웠고, 36시간만에 성급하게 거둬들인 것은 어수선하고 조잡해보였다"고 비판했다. 

메르켈 총리가 속한 여당 의원들이 마스크 납품을 중개하고 수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이른바 '마스크 스캔들'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마저 오락가락 정책을 내놓자 지지도는 크게 낮아졌다.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지난 2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한 때 40%를 넘어섰던 여당의 지지율은 지난 24일 발표된 자료에서 26%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에서 백신 보급 속도가 느려 좌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메르켈 총리의 당 소속 의원들이 마스크 구매와 관련해 엄청난 수수료를 챙겼다는 폭로로 분노가 치솟아있는 시기에 이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FT는 "야당 의원들은 왜 '봉쇄'라는 난해한 주제에 대해서는 몇시간씩 논쟁을 이어가면서 백신 접종이나 코로나19 검사를 서두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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