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지금은 ‘이해충돌방지법’ 제정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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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지금은 ‘이해충돌방지법’ 제정할 때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교수
  • 승인 2021.03.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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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직원 투기사태에 민심이반...정치권 뒤늦게 대책마련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국회의원들 반대로 입법 지연
재보궐선거 앞둔 국민전환용 안돼!....이해충돌방지법 반드시 통과시켜야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교수] 최근 코로나19와 집값폭등으로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민들을 더욱 힘들고 분노하게 만든 사건은 무엇일까? 당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사건과 그 파문이다. 

LH 일부 직원들의 투기성 부동산 매입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공직자들에 의해 공정이 파괴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상실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LH공사 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사익추구 목적의 부동산투기를 했다는 폭로와 정황들이 속속 언론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지난 10일 “개발을 담당하는 공공 기관 직원이나 공직자가 관련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신뢰를 바닥에서 무너뜨리는 용납할 수 없는 비리 행위”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1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 정부합동조사단 1차 발표에서 “국토교통부와 LH 임직원 본인 1만 4000여 명 중 투기의심자 20명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불법 투기이익을 반드시 환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월 16일 국회 앞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월 16일 국회 앞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들, 정치권 뒤늦은 대책마련에 '분노' 

4·7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도 부랴부랴 관련 후속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국회의원 300명 전수조사, 특별검사(특검), 국정조사(국조), 그리고 고위 공무원과 시군구청장 등 선출직 전수조사, 이해충돌방지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제 목에 방울 달기’가 가능할지가 관건이다.

민주당과 정부·청와대는 19일 오전 국회에서 당정청회의를 갖고 “부동산 재산등록 대상을 모든 공직자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LH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으로 ①투기 예방 ②적발 ③처벌 ④부당이익 환수 등 네 단계 대책으로 제시하면서 이번 달까지 구체적 방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청회의에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부동산 거래시 사전신고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부당이익이 있다면 취득이익의 3~5배 환수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LH직원들이 매입한 3기 신도시 토지 상당 부분이 농지로 드러난 만큼, 농지 투기방지를 위한 농지법 개정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 원내대표는 “농지 취득 심사를 강화하고, 농지 취득 이후 불법행위가 발견되면 즉각 처분 명령을 내리는 등 처벌도 강화하겠다. 부동산거래분석원과 같은 강력한 감독기구를 설치해서 시장모니터링과 불법단속 상시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렇듯, 여야가 앞다퉈 강수를 내놓고 있는 이유는 뭘까? 상대방이 내놓은 제안을 거부할 경우 괜한 의심을 받고 민심이 이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여야의 다급한 움직임을 보면 씁쓸하다. 왜냐면 다가오는 4월 7일 재보궐선거 국면전환용이 아닌가하는 회의감과 함께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무력감 그리고 정치권 불신감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이다. 다른 속담으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말도 있다. 고사성어로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도 있다. 이 말은 죽은 후에 약방문(약처방전)을 쓴다는 의미로 역시 비슷한 뜻이다.

정치권, LH사태 발생에 큰 책임있어

사실 이번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사태를 불러온 책임에서 정치권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국가적 참사로 키운 데에 절반이상의 책임이 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이번 사태는 공직자 직무 수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을 방지할 통제장치 부재로 벌어진 예견된 참사”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이 정치권의 무책임성을 비판하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태가 정치권이 공직자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재산을 증식하는 행태를 근절하고, 자신의 업무와 관련 있는 사적이해관계자를 신고·공개하도록 하는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에 소극적으로 임했기에 벌어진 일로, 정치권 모두의 책임으로 보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비판처럼, 의원들의 직무유기가 공직자들을 부동산 투기꾼으로 키운 측면이 크다. 지난 2013년 김영란법안에 이해충돌방지규정이 있었지만 정치권과 국회가 이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이해충돌방지법을 따로 입법화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그때마다 이를 외면했고 방치했으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지난해 박덕흠, 윤창현, 윤영찬, 추혜선, 손혜원, 전봉민 등등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의원의 이해충돌문제가 정치권의 논란으로 연일 오르내리며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그때마다 제식구 감싸기, 탈당으로 꼬리 자르기, 대안없는 정쟁으로 이해충돌문제를 근본적으로 막을 관련법 제정을 외면하며 실기했다. 김영란법이 국회에 처음 제출된 게 2013년이다.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통과됐다면 지난해 등장했던 여야 불문의 이해충돌 그리고 이번 LH사태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2019년 11월 건설업자 출신으로 그의 가족회사가 피감기관인 국토교통부, 서울시 산하기관으로부터 400억 원의 공사를 수주한 의혹으로 직권남용,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된 박덕흠 국민의 힘 의원.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19년 11월 직권남용,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된 박덕흠 국민의 힘 의원.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15년부터 국토교통위원이었던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은 건설업자 출신으로 그의 가족회사가 피감기관인 국토교통부, 서울시 산하기관으로부터 400억 원의 공사를 수주한 의혹으로 직권남용,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됐다. 삼성 경영권 승계 논란이 있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사외이사로서 이것에 찬성했고 그 뒤로도 이를 옹호했던 같은 당 윤창현 의원도 문제가 됐다. 윤 의원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정무위 소속이어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의당 비례대표를 지낸 추혜선 전 의원은 국회를 떠난 직후 LG유플러스 비상임 자문을 맡아 비판대상이 됐다. 국회에서 관련 상임위 활동까지 한 이력을 문제 삼아 정의당이 압박에 나서서 사임시켰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목포 투기’ 논란도 이해충돌 사례다. 같은 당 금태섭 의원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손 의원의 경우 이해충돌에 전형적으로 해당되는 사례라 그에 대해 규명이 돼야 하고 손 의원의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제때에 이해충돌방지법이 통과되었더라면 LH사태는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해충돌방지법에는 공직자들이 직무상 얻은 정보로  사익을 추구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해충돌문제를 사전에 신고하여 제척·회피하고,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하는 근거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이해충돌 고의성 있을때 징역 5년형

그동안 정치권이 이해충돌방지법을 직무유기한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 부패행위 차단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인식됐지만 국회의원은 업무 범위가 포괄적이므로 해당 직위의 모든 직무로부터 배제하지 않는 한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이젠 핑계로 보인다.

현재 국회의원의 이해충돌에 대한 수많은 의혹으로 국민들의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국회의원의 경우 다른 공직자에 비하여 막강한 입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법 도입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제는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야 한다.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는 만큼,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방지에 관한 완벽한 법적 장치를 완비할 순간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횡행해온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권력을 남용하는 각종 부조리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진국의 입법례를 볼 때, 이해충돌이란 “공익을 추구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지닌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할 때 자신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관련되어 공정한 직무수행이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말한다. 1962년 제정된 미국의 ‘뇌물 및 이해충돌방지법’은 이를 위반하면 고의성이 없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형을, 고의성이 있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정도로 강력하다. 캐나다, 영국, 프랑스도 각각 법적 장치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이번만큼은 이해충돌방지법이 오는 4·7 재보궐 선거를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기득권과 여야소속 따지지 말고 조속히 이해충돌방지법을 통과시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앞장서야 할 바로 그 때이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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